
[PEDIEN] 경기도와 파주시는 오는 10월 12일부터 11월 29일까지 파주 지역의 비무장지대 일원에서 현대미술 전시 ‘DMZ OPEN 전시: 스테이징’을 공동으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DMZ OPEN 페스티벌’의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로,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14명의 작가가 참여하며 총 26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는 민간인 통제선 내에 위치한 캠프그리브스와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진행된다.
전시의 제목인 ‘스테이징’은 프랑스의 과학기술학자인 브뤼노 라투르가 제시한 개념에서 차용되었다. ‘스테이징’은 단순히 ‘무대 연출’이라는 의미를 넘어, 특정 존재나 사실이 특정한 조건과 관계망 속에서 비로소 드러나고 인식되는 과정을 뜻한다. 라투르는 파스퇴르의 발효균 연구를 예로 들며, 미생물이 실험실 환경, 관찰 장치, 연구자의 개입, 기록 방식 등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만 인식 가능한 존재가 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분단과 전쟁의 시간이 중첩되고 인간과 비인간, 사물과 환경 등 다양한 존재들이 복합적으로 얽힌 DMZ를 하나의 무대로 전환하여, 그 안에서 공존해 온 다층적인 존재와 조건들을 드러내고자 기획되었다.
이번 전시를 총괄 기획한 김선정 큐레이터는 “‘DMZ OPEN 전시: 스테이징’은 DMZ를 단순한 작품 전시 공간이 아닌, 인간과 비인간, 사물과 환경, 역사와 현재가 서로 관계를 맺고 드러나는 역동적인 무대로 전환하려는 시도”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DMZ를 분단과 갈등의 상징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수많은 존재들이 서로를 마주하고 관계를 맺는 살아있는 장소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전시에는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다수 포함된다. 박찬경 작가는 1997년 첫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작품을 재제작한 “블랙박스: 냉전 이미지의 기억”을 통해 냉전 시대의 이미지를 탐구한다. 데니스 베르치는 한국전쟁 이후 DMZ에 파견된 스위스 중립국감독위원회 장교들이 1953년부터 1980년까지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중립’이라는 시선을 되짚는 “스테이트 픽션. 겉으로만 중립적인”을 선보인다. 애비게일 라파엘 콜린스는 미국 영화·방송 산업과 미군 간의 관계를 8년간 추적한 실험 다큐멘터리 “블랙아웃”을 통해 그 이면을 파헤친다.
또한, 전쟁과 분단의 시간이 개인의 삶에 남긴 깊은 흔적을 탐색하는 작업들도 소개된다. 윤수연 작가는 미국 42개 주를 횡단하며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의 삶을 기록한 “홈커밍” 연작을 통해 전쟁의 후유증을 조명한다. 오형근 작가는 한국의 젊은 군인 초상을 담은 “부조리 극” 연작으로 분단 체제가 갖는 역설적인 상황을 드러낸다. 정가희 작가는 일제강점기와 냉전을 경험한 외할머니의 뇌파를 3D 프린팅 백자에 담아낸 “할머니/가보”를 선보이며, 선무 작가는 북한 선전화의 형식을 빌려 남북한 청소년들이 함께 어울리는 평화로운 풍경을 그린 “봄놀이”를 통해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신작들도 관람객을 맞이한다. 자닌 랜더슨은 소설가 이현, 사운드 아티스트 레이첼 시어러와 협업한 영상 작품 “비무장화하는 이끼”에서 철원 민통선 안의 벙커, 방공호, 초소 등 군사 시설을 뒤덮으며 자라난 이끼의 시점으로 전쟁 이후에도 지속되는 생명과 시간의 흐름을 상상한다. 안규철 작가는 다리, 등받이, 좌판이 제거된 아홉 개의 의자를 통해 부재와 정전의 긴장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이예은 작가는 통일촌 주민들이 기증한 일상적인 물건들을 쌓아 올려 만든 탑을 사진으로 기록했으며, 이요나 작가는 신호등, 가로등 등 이동을 상징하는 사물들을 닫힌 스테인리스 구조물 안에 배치한 “대기실”이라는 작품을 통해 분단으로 인해 단절된 이동의 현실을 드러낸다.
이 밖에도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아브라함 크루즈비예가스는 DMZ를 오가는 여정에서 수집한 인쇄물들을 UN을 상징하는 푸른색으로 덮어 뒤집어 놓은 대형 벽면 작업을 선보인다. 연진영 작가는 군대 화장실을 배경으로 ‘룩스맥싱’ 문화와 군대가 만들어내는 남성성을 다룬 설치 작업을 전시한다. 최진욱 작가는 2024년 겨울 이후의 광장 풍경과 임진각 망배단 앞 관람객들의 뒷모습 등 DMZ와 동시대의 풍경을 담은 회화 신작을 공개한다.
전시와 더불어 다채로운 연계 프로그램 ‘전시플러스’도 운영된다. ‘DMZ의 작은 주민들’ 프로그램은 경기도 DMZ 일원에 서식하거나 도래하는 멸종위기 야생생물인 삵, 수달, 두루미를 소개한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마음이 모여 터를 잡아요’ 프로그램에서는 참여 작가 이예은의 작품을 함께 재해석하는 시간을 갖는다.
‘선을 열어 삶을 잇다’를 주제로 DMZ의 가치를 확산하는 ‘DMZ OPEN 페스티벌’은 10월부터 11월 말까지 파주, 고양 등 DMZ 일원에서 계속된다. 이번 ‘DMZ OPEN 전시: 스테이징’ 외에도 평화의 메시지를 음악으로 전달하는 DMZ OPEN 국제음악제, 생태와 평화를 주제로 심도 있는 논의를 나누는 DMZ OPEN 에코피스포럼 등 풍성한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다.
박현석 경기도 평화협력국장은 “DMZ는 지난 70년간 서로를 겨눈 총칼과 철책의 냉혹함 속에서도 지구상 가장 때 묻지 않은 생태계가 숨 쉬며 인류 전체의 위대한 자산으로 성장해왔다”며, “분단이 막아선 자리에 문화와 예술, 그리고 연대의 힘을 채워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손배찬 파주시장은 “예술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고, 익숙했던 공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파주의 역사적 공간인 캠프그리브스와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펼쳐질 이번 전시를 통해 DMZ에 새겨진 역사와 생명의 흔적을 깊이 돌아보고, 평화와 공존의 가능성을 함께 상상해보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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