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오아포 일원 (경상남도 제공)



[PEDIEN] 경남 거제에 위치한 가배량진성이 단순한 지방 군사 시설이 아닌, 조선 전기 남해안 수군을 총괄했던 경상우수영의 본영이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조명됐다.

경남연구원은 최근 '경상우수영의 뿌리, 남해안 방어의 핵심기지 가배량진성의 역사적 위상 복원'이라는 제목의 정책브리프를 발간하고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그동안 임진왜란 이후 가배량진의 성곽으로 알려졌던 가배량진성의 역사적 실체를 조선 전기 경상우도 수군 본영 자리까지 거슬러 올라가 재해석한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현재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가배량진성은 조선 후기 가배량진이 옮겨오기 전, 조선 전기에는 '오아포'라 불리며 경상우수영 본영의 역할을 수행했다. 세종대 경상우수영이 설치된 이후 성종 19년에는 경상우수영성이 축조되었으며, 이곳은 경상우도 수군의 병선 28척과 군사 2,601명을 지휘·관리하던 대규모 진영이었다.

오아포는 남해 내해와 외해를 잇는 해상 교통의 요지이자, 풍랑을 피해 병선을 안전하게 정박시킬 수 있는 천혜의 항구였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 덕분에 조선 전기 남해안 수군 방어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가배량진성의 규모와 구조 역시 본영 성곽으로서의 위상을 뒷받침한다. 둘레 약 1,574m에 달하는 대규모 성곽에는 7기의 치성과 4개소의 성문, 외곽 해자가 갖춰져 있다. 최근 발굴조사에서는 치성 위에 설치된 망루의 기저부까지 확인되어, 성벽, 해자, 치성, 망루를 아우르는 복합적인 방어 시설의 면모를 보여준다.

통영을 중심으로 알려진 경상우수영의 역사적 뿌리가 조선 전기 오아포에 설치된 경상우수영에서 시작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임진왜란 이후 통제영과 경상우수영이 고성 두룡포로 이전하면서 오아포 본영의 기능은 사라졌지만, 이후 고성에 있던 가배량진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기존 경상우수영성은 가배량진성으로 전환되어 조선 말기까지 남해안 방어의 거점으로 활용됐다.

결과적으로 가배량진성은 조선 전기 경상우수영 본영과 조선 후기 가배량진의 역사가 한 성곽에 공존하는 독특한 유적이다. 이는 조선시대 남해안 수군 방어체계의 형성 과정과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군사유적으로서 높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이재명 경남연구원 조사연구위원은 “가배량진성은 약 470년에 걸쳐 남해안 수군 방어의 핵심 거점으로 기능한 역사적 가치를 새롭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향후 보존·관리 및 활용 과정에서 경상우수영 본영 성곽으로서의 역사적 성격을 적극 반영하고, 나아가 국가사적 승격 가능성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경남연구원 홈페이지 연구 카테고리 ‘브리프’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