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EDIEN] 전북 남원시 지리산 자락에서 톱밥과 옻 냄새가 뒤섞인 공방 안. 여덟 살 김서연 양이 핀셋으로 쌀알만 한 자개 조각을 집어 검은 옻칠 목걸이 위에 올리자, 테이블 아래 엎드려 있던 반려견 '콩이'가 고개를 든다. “콩아, 이따 네 이름표도 만들어 줄게.” 아이의 말에 공방 안 어른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지난 1일, 이곳 옻칠목공체험관광협동조합 공방에서는 특별한 체험이 진행됐다. 반려견 동반 가족들이 남원에서 보낸 1박 2일 동안 자개를 붙인 옻칠 목걸이, 강아지 얼굴 컵받침, 그리고 우드버닝으로 개 이름을 새긴 나무 이름표 등을 직접 만들었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1500만 명을 넘어섰지만, 반려견과 함께 떠날 여행지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함께 갈 수 있는 장소도 적지만, 정작 반려견과 사람이 함께 주인공이 되는 프로그램은 더욱 드물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반려견 동반 여행의 아쉬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남원시농촌종합지원센터의 '팜투어 남원누비GO'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조수영 농촌관광 코디네이터는 “반려견 동반 여행의 진짜 어려움은 ‘갈 곳이 없다’가 아니라, ‘함께 할 프로그램이 없다’는 데 있다”고 프로그램 기획의 출발점을 설명했다.
남원누비GO는 이러한 빈자리를 지리산 자락의 농가와 공방, 숙소가 품앗이하듯 채웠다. 옻칠목공체험관광협동조합이 체험을, 해발 600m 들꽃다물농장이 저녁 지리산 흑돼지 바비큐 팜파티를, 순이네흙집 민박과 별헤는밤 펜션이 숙소를 제공하며 하나의 1박 2일 패키지로 묶었다.
이는 한 농가가 모든 것을 판매하는 방식이 아닌, 16개 경영체가 '남원누비고'라는 단일 브랜드로 협력하는 지역 단위 농촌관광사업의 성공적인 모델이다. 숙박·체험·식사가 연계된 패키지는 사업비 30% 지원을 통해 참가자는 30% 할인된 가격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으며, 경영체는 정가 수익을 보장받는 구조다. 이는 소비자에게는 낮아진 여행 문턱을, 농가에는 제값을 돌려주는 상생 모델로 평가받는다.
'어머니의 산'이라 불리는 지리산은 단순한 풍경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곳은 반려견에게도 편안한 여행지가 되어주는 땅이다. 산내면 중황마을의 '지리산순이네흙집'은 와이파이와 TV 대신 안내견 '초코'와 함께 손님을 맞이한다. 이곳에서는 반려견이 이웃 눈치를 볼 일 없이 자유롭게 산책로와 계곡을 오갈 수 있다.
뱀사골 어귀의 '별헤는밤펜션'은 1급수 달궁계곡까지 걸어서 3분 거리다. 반려견을 태우고 주차장을 헤맬 필요 없이, 목줄 하나만 들고 나가면 시원한 물가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한여름 오후, 공방 마당에서는 '마른하늘에 물벼락, 적셔버러'라는 이름의 쿨링 이벤트가 펼쳐진다. 우비를 입고 시소식 물통 아래 앉은 참가자가 가족이 던진 공으로 표적을 맞추면 시원한 물벼락이 쏟아진다. 운영진은 이 장치를 “기계가 아니라 기다림, 긴장, 폭발, 웃음이라는 감정의 순간을 주는 놀이기구”라고 설명한다. 예민한 반려견들은 지도사의 별도 돌봄 아래 그늘 쉼터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한다.
해가 기울면 참가자들은 해발 600m의 '지리산들꽃다물농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곳에서 지리산 흑돼지 삼겹살과 농장에서 직접 캔 고사리, 삼나물, 고랭지 감자와 옥수수 등으로 구성된 푸짐한 저녁 식사를 즐긴다. 반려견들은 자연스럽게 테이블 곁에서 식사를 기다린다.
이번 프로그램의 또 다른 백미는 국가공인 반려견지도사 등 7종의 자격을 보유한 류재은 행동지도사의 산책 교육과 1대1 행동 상담이다. 류 지도사는 “다른 개를 무서워하는 아이도 단계를 나눠 접근시키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개들 사이의 거리 조절이 이번 프로그램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전주에서 온 박모 씨 가족은 이 상담을 여행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콩이가 산책 때마다 짖어서 늘 미안하고 궁금했는데, 여행 와서 전문가에게 물어볼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놀러 와서 숙제까지 해결한 기분이에요.” 딸 서연 양의 손에는 콩이의 이름이 우드버닝으로 새겨진 나무 이름표가 들려 있었다. “콩이가 자기 이름 새기는 걸 옆에서 봤어요. 세상에 콩이 거는 이것밖에 없어요.”
광주에서 온 이모 씨는 흙집에서의 밤을 회상했다. “TV가 없으니 개랑 마당에 앉아 별만 봤어요. 도시에서는 개를 데리고 어딜 가도 늘 눈치를 봤는데, 여기서는 저 끝집까지 온 마을이 조용히 내버려 두더라고요.”
이처럼 '남원누비GO' 프로그램은 단순히 사진으로 남는 추억뿐 아니라, 천년을 가는 전통 공예 기법과 현대적인 가족 형태인 반려견이 한 공간에서 만나 탄생한 특별한 기념품을 선사한다. 옻칠 원목에 자개를 붙인 목걸이, 강아지 얼굴 컵받침, 그리고 반려견의 이름표는 여행의 의미를 더한다.
현재 이 프로그램은 선착순 8팀, 팀당 2인 이상으로 운영되며, 다음 회차 일정과 신청 방법은 남원누비고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돌아가는 차 뒷좌석에는 옻칠 자개 목걸이와 컵받침, 그리고 제 이름표를 목에 건 채 곤히 잠든 콩이가 함께했다. 사람들은 지리산을 '어머니의 산'이라 부른다. 올여름, 그 품은 네 발 달린 가족의 단잠까지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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