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EDIEN] 지난 26일, 고 윤동주 시인에게 대한민국 문화예술 분야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면서, 그의 문학을 후대에 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정병욱 선생과 그가 머물렀던 광양 망덕포구의 정병욱 가옥이 다시금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일제강점기 민족의 아픔과 저항 정신을 시에 담았던 윤동주의 작품이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친필 시고를 목숨처럼 지켜낸 벗 정병욱 선생의 굳건한 신념과 깊은 우정이 있었다. 이번 훈장 추서는 윤동주 시인의 문학적 업적뿐만 아니라, 그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광양의 문학적 위상을 재확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윤동주 시인과 정병욱 선생의 인연은 연희전문학교 시절 문학을 향한 열정으로 시작되었다. 엄혹했던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두 사람은 문학적 교감을 이어갔다. 1941년 겨울, 졸업을 앞둔 윤동주는 자신의 시 열여덟 편을 엮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의 시집 세 부를 직접 만들었다. 이 중 한 권은 2년 후배이자 평생의 벗이 된 정병욱에게 건네졌다.
그러나 당시 우리말과 글이 억압받던 현실 속에서 시집 출간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후 학도병으로 징집된 정병욱은 자신이 보관하던 시고를 고향인 광양의 어머니에게 맡기며 소중히 간직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윤동주 시인이 이양하 교수 등에게 건넸던 다른 시고들은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정병욱 선생이 지켜낸 원고는 광복 후인 1948년 1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빛을 보며 윤동주 시인의 문학을 널리 알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 친구의 헌신적인 노력이 시인의 문학이 후대에 이어지는 길이 된 것이다.
정병욱 선생은 자신의 호를 윤동주 시인의 ‘흰 그림자’에서 따온 ‘백영’으로 삼을 정도로 친구와 그의 문학에 깊은 애정을 쏟았다. 그는 회고록 ‘잊지 못할 윤동주 형’에서 “내 평생 가장 보람 있는 일은 동주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린 일”이라고 회고하며, 친구의 문학을 지켜낸 것에 대한 깊은 자부심을 드러냈다.
1925년 양조장을 겸한 주택으로 지어진 정병욱 가옥은 윤동주 시인의 유고가 보존된 역사적인 현장이다. 명주 보자기에 싸인 시고는 이 집의 마룻바닥 아래 항아리 속에 고이 보존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정병욱 가옥은 2007년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이라는 명칭으로 국가등록문화유산 제341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가옥 내부에는 당시 시고를 항아리에 담아 마룻바닥 아래 숨겨두었던 모습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어, 방문객들은 한 편의 시가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냈던 순간을 직접 마주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시집 출간이 좌절된 시대에 소중한 문학적 유산을 지켜낸 이 집은 보존과 전승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광양만의 고유한 문화적 자산이다.
망덕포구에는 정병욱 가옥을 중심으로 약 1.2km에 달하는 문학길 ‘별빛나길’이 조성되어 있다. 이 길은 윤동주 시인의 시와 두 사람의 우정을 주제로 하며, 두 친구의 우정을 형상화한 조형물, ‘별 헤는 밤’과 ‘쉽게 씌어진 시’를 새긴 데크 난간, ‘서시’를 비추는 옹벽, ‘자화상’을 활용한 거울 조형물 등이 시와 포구의 아름다운 풍경을 엮어 하나의 산책길을 완성한다. 길의 끝에는 윤동주 시인의 시 31편이 새겨진 시비가 세워진 ‘윤동주 시 정원’이 자리하고 있어, 방문객들은 작품을 직접 읽으며 문학의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다.
광양시는 이러한 문학적 자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정병욱 가옥 인근에 ‘윤동주·정병욱 문학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 문학관은 윤동주 시인의 작품이 보존되어 세상에 전해지기까지의 과정과 정병욱 선생의 삶을 함께 조명하는 공간으로, 2027년 착공하여 2029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학관이 건립되면 정병욱 가옥, 별빛나길, 윤동주 시 정원을 연계한 문학 여행의 기반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성현 광양시장은 “윤동주 시인의 문학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데에는 작품을 지켜낸 정병욱 선생의 신념과 우정이 있었다”며, “한 편의 시가 세대를 넘어 읽히듯, 두 분의 문학적 인연도 미래 세대에 온전히 전해지도록 그 가치를 보존하고 알리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병욱 가옥을 비롯한 망덕포구의 문학 자산을 바탕으로 문학과 섬진강의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광양만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는 여행 기반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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