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EDIEN] 1895년 말, 격동의 시기 안동에서 일어난 의병 봉기의 논의와 준비 과정을 담은 문서인 ‘안동의소파록’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경상북도호국보훈재단은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이 소장 중인 이 유물이 15일자로 국가등록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고 밝혔다.
안동의소파록은 제1차 안동의진의 지휘부 46명과 27개 직임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어, 안동 의병의 조직 형태와 인적 구성, 운영 체계를 파악할 수 있는 핵심 자료로 평가받는다. 이 문서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 공포에 저항하며 안동 지역 유림을 중심으로 결성된 안동의진의 초기 활동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기록에 따르면, 1895년 음력 12월부터 의병 봉기를 위한 논의가 본격화되었으며, 1896년 1월 17일 봉정사에서 의병을 일으키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어 1월 20일 안동부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봉화 유곡의 권세연이 대장으로 추대되었다. 권세연은 '경상도안동창의대장 권세연격'이라는 격문을 발표하며 각 지역 유림과 의병의 안동 집결을 촉구했다. 같은 날 밤 안동관찰사 김석중이 안동을 떠나자, 안동의진은 1월 21일 의병 부대를 편성하고 주요 지휘부를 구성했다.
이때 정해진 지휘 체계와 직임, 참여자 명단을 담은 문서가 바로 안동의소파록이다. 문서에는 대장 권세연, 부장 곽종석을 비롯해 참모, 내방장, 외방장, 좌·우익장, 전봉장, 돌격장, 유격장, 석격장, 척후장, 초모장 등 총 27개 직책에 46명의 인물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외에도 도서기 류정호 등 5명, 서기 이운구 등 8명, 정제유사 김주병 등 3명, 종사관 이중삼 등 3명, 그리고 출령·중군·관량·관재·행부상도총·직일 등의 직책에 류헌호 등 여러 인물이 배치되었다.
안동의소파록에 기록된 참여자 46명 가운데 상당수가 정재학파에 속해 있었다는 점은 호남계열 유림이 제1차 안동의진 결성과 운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을 시사한다. 이는 당시 안동 지역의 학맥과 향촌사회의 인적 관계망이 의병 조직의 기반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이 유물은 전 강원대학교 국사학과 박한설 교수가 수집·보관하다가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의 설립 취지와 연구·보존 목적에 공감하여 기증한 것이다. 기념관은 이후 유물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며 안동 의병의 조직과 활동을 밝히는 연구 자료로 활용해 왔다.
안동의소파록은 작성 주체와 시기, 문서의 성격이 명확하고 원형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특히 제1차 안동의진의 지휘부 직책과 참여자 명단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유일한 자료로서, 안동 의병의 조직 형태, 인적 구성, 지휘 체계, 운영 방식을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초기 조직과 이후 개편된 조직을 비교함으로써 안동의진의 변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으며, 다른 지역 을미의병의 지휘 편제와 조직 체계를 추정하고 비교 연구하는 데 중요한 기준을 제공한다.
한희원 경상북도호국보훈재단 대표이사는 “안동의소파록은 안동 의병이 어떠한 인적 기반과 조직 체계를 갖추고 국권 수호에 나섰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기록”이라며, “이번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은 안동을 비롯한 경북 의병사의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국가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재단은 안동의소파록을 안정적으로 보존하고 심층적인 조사와 연구를 지속하는 한편, 전시와 교육 콘텐츠로 적극 활용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경북 지역 독립운동 자료를 지속적으로 발굴·수집하여 선열들의 의병 정신과 나라사랑 정신을 국민과 미래세대에 널리 알리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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