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시청



[PEDIEN]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왕정동 산15-11번지 일원에서 조선 전기 최고급 백자를 생산했던 가마터가 대거 확인됐다. 국가유산청의 허가를 받아 고고문화유산연구원이 2024년부터 진행해 온 남원 왕정동 도요지 학술발굴조사 결과, 조선 전기 백자 가마터 11기와 폐기장 6기, 수혈 6기 등이 새롭게 밝혀졌다.

조사 지역은 사적으로 지정된 만복사지 뒤편 복음산의 남사면에 자리하고 있으며, 2024년 시굴조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졌다. 2025년에는 학술 지표조사를 병행하며 라이더 분석을 통해 가마터의 범위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올해는 기 시굴조사에서 미조사 구간과 북측 확장조사가 집중적으로 진행됐다.

발굴된 가마터 11기는 모두 반지하식의 무기단식 등요 구조를 띠고 있으며, 2호 가마 1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울기는 15도를 이룬다. 바닥부만 남아있는 상태인 가마도 있었으나, 일부는 상태가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어 주목받았다. 특히 바닥에서 갑발이 정연하게 배치된 모습이 확인되었는데, 갑발은 4열의 배치를 이루고 있으며 수평을 맞추기 위한 원판형 받침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갑발 위에는 도지미, 기물, 갑발 순으로 쌓아 구워내는 방식이 적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갑발의 재질은 대부분 도기였으나, 일부는 백토를 이용해 제작하거나 백자를 사용한 사례도 발견되어 당시의 기술 수준을 짐작게 했다. 이번 조사를 통해 출토된 유물은 분청사기, 백자편 소량과 함께 갑발, 도지미 등이 주를 이뤘다.

가마 유구는 지방요에서는 보기 드문 '갑번요' 구조로 확인되었으며, 이는 최고급 자기를 생산했던 가마임을 시사한다. 요업의 중심 시기는 발굴된 가마 구조와 출토 유물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15세기 초·중엽으로 판단된다. 이는 조선 전기 김종직의 시문집인 ‘점필재집’에 기록된 내용과도 일치하는 결과다. ‘점필재집’은 1495년 문집, 1497년 시집이 간행되었으며, 김종직의 아버지 김숙자가 고령 현감으로 부임했을 당시 고령과 광주, 남원의 백자 제작 공인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남원 왕정동 도요지가 조선 전기 왕실에 공납할 백자를 생산했던 지방요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관영 요업이 확립되기 이전, 공납자기 제작 지방 가마의 구조와 생산품을 실물로 확인하고 문헌 기록의 실체를 규명했다는 점에서 이번 발굴은 학술적 가치와 중요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받는다.

이에 남원시는 도요지에 대한 지속적인 학술조사를 이어나가는 한편, 체계적인 관리 방안을 모색하고 문화유산 지정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지역사회와 학계 전문가를 초청하여 현장 공개 행사를 개최하는 등 도요지의 가치를 널리 알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