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외교 의전은 어땠을까…서울역사중점연구 제20권 발간 hwp (서울시 제공)



[PEDIEN] 조선시대 수도 한양에서 펼쳐졌던 국제 외교의 생생한 현장이 학술서로 재조명된다. 서울역사편찬원이 서울역사중점연구 제20권 를 발간하며 당시 외교 의전과 관련 기록들을 상세히 담아냈다.

이번 연구집은 총 5편의 논문으로 구성된다. 외국 사신의 방문과 접대, 외교 의례, 통역 인력 양성 등 조선시대 외교의 다채로운 면모를 심층적으로 검토한 결과물이다. 서울역사편찬원은 2016년부터 서울의 역사 중 아직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았거나 연구가 부족한 분야를 발굴해 학술 연구서 시리즈를 꾸준히 펴내고 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국가 간 외교는 주로 사신의 방문을 통해 이루어졌다. 외국 사신을 맞이하고 접대하는 절차와 의례는 외교 현안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한 핵심적인 수단이었다. 조선 정부 역시 사신 접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건국 초기부터 관련 절차를 규범화했다. 사신을 맞이하는 방식과 의례는 각종 등록과 의궤에 기록되어 엄격하게 시행되며 외교 질서를 유지했다.

조선의 외교 정책은 '사대교린'을 기본 기조로 삼았다. 이러한 기조 아래 중국 사신 접대는 국가적 사안으로 다루어졌으며, 사신 접대를 위한 임시 기구가 별도로 설치되고 한양의 모든 관아가 접대 업무에 동원되기도 했다. 또한 뛰어난 문장력을 가진 관리를 선발하여 중국 사신과 교류하게 하고, 이들이 주고받은 시문을 엮어 중국에 보내기도 했다.

'교린' 대상이었던 일본과 여진 사신에 대한 접대 역시 국왕의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외교 행사였다. 조선은 수도 한양에 외국 사신을 위한 전용 숙소를 마련하고 외교 의례를 제도화했다. 다만 일본 등 교린 관계 사신은 지방관이 국왕을 대신해 접대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으며, 국서를 지참한 경우에만 상경이 허락되었다.

조선 정부는 원활한 외교 활동을 위해 통역을 담당하는 역관 양성에도 힘썼다. 중국어뿐만 아니라 여진어, 일본어 등 당시 교류하던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학습하기 위한 역학서도 제작했다. 특히 중국의 지배 왕조가 명에서 청으로 교체되면서, 역학서에서도 명대 중국어를 공부하는 '한학'보다 청의 만주어를 공부하는 '청학'이 중시되는 변화가 나타나기도 했다.

외교 문서 관리 역시 조선 외교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중국 사신이 가져온 황제 명의 문서는 엄격한 의례에 따라 접수되었으며, 조선은 외교적 사안 발생 시 이전 문서와 전례를 검토하여 대응했다. 이를 위해 외교 문서를 관리하는 기관을 왕궁 가까이에 두고 왕궁 안에도 별도 보관 시설을 마련했다.

는 서울시청 지하 1층 '서울책방'과 온라인 서울책방에서 1만원에 구매할 수 있다. 또한 서울 소재 공공도서관과 서울역사편찬원 누리집에서 제공하는 전자책을 통해 누구나 무료로 열람 가능하다. 이상배 서울역사편찬원장은 "이번 연구집을 통해 사신을 매개로 한양에서 펼쳐진 조선시대 외교의 다양한 모습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폭넓은 역사 연구와 발간 사업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