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EDIEN] 조선 후기 경상감영의 관료 수는 몇 명이었을까. 일제강점기 대구의 일본인 거주자는 얼마나 늘었을까. 과거 대구의 사회·경제적 변화상을 숫자와 통계로 보여주는 ‘대구사료총서’가 새롭게 발간됐다.
대구광역시는 이번에 ‘영영사례’, ‘경북요람’, ‘대구요람’의 번역본을 각각 대구사료총서 제5·6·7권으로 펴냈다. 이들 사료총서는 행정, 재정, 인구 등 각종 수치를 통해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대구의 옛 모습을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제5권 ‘영영사례’는 대구가 경상감영 소재지였던 시기의 행정 운영 사례와 재정 구조를 담고 있다. 현존하는 판본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존경각본’과 가장 늦은 시기의 ‘규장각본’을 함께 수록해 140여 년간의 운영 변화를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당시 경상감영의 관료 수가 132명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6권 ‘경북요람’은 1910년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위해 대구신문사가 제작한 안내서다. 당시 대구와 경상북도를 일본인의 이주와 농업 경영에 적합한 지역으로 소개하는 다양한 통계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
이어 제7권 ‘대구요람’은 10년 뒤인 1920년에 대구상업회의소가 발간한 책자로, 당시 대구의 경제, 특히 상공업계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자료는 10년 사이 대구의 일본인 거주자가 1910년 약 5702명에서 1920년 1만2603명으로 2.2배가량 증가했음을 보여주는 등 식민지 지배 심화에 따른 변화를 수치로 드러낸다.
다만, 대구시는 일제강점기 자료들이 일본의 식민지 경영과 자원 수탈을 위한 조사 결과물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료총서 번역 및 윤문에는 정병호 교수, 임덕선 원장, 최범순 교수, 정찬휘 씨 등이 참여했다. 황보란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앞으로도 지역사를 조명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발굴·번역하고 대구시사 편찬에 필요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축적해 나갈 계획”이라며 시민들의 관심을 당부했다.
대구시는 2016년부터 지역 고서 번역 사업을 꾸준히 이어왔으며, 이번에 발간된 사료총서는 전국 공공·대학 도서관 및 연구기관에 배부된다. 또한 대구시 홈페이지 ‘대구소개-역사-대구사료총서’ 메뉴에서 전자책으로도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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