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원가가 오르면 값을 바로 올린다.
원가가 내려가면? 올려둔 값을 그대로 둔다.
그렇게 벌어들인 차익이 쌓인다.
시장을 혼자 쥔 사업자라면 소비자가 다른 데로 갈 곳도 마땅치 않다.
공정거래위원회가 11월 6일 입법예고한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이 겨냥하는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공정위는 이날부터 12월 16일까지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 규정을 2001년 이후 처음으로 손보는 것으로, 공정위 표현으로는 '25년 만의 정비'다.
뼈대는 세 가지다.
값을 부당하게 매기는 가격남용, 경쟁사업자의 활동을 가로막는 사업활동 방해, 그리고 소비자를 직접 쥐어짜는 소비자 착취.
가격남용에서는 성립 요건이던 '현저성'을 '상당성'으로 낮춘다.
입증이 너무 어려워 조항 자체가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판단에서다.
눈에 띄는 대목은 가격이 과도한지 따지는 방식이다.
개정안은 '공급에 필요한 비용'뿐 아니라 '외부의 통상적 가격 수준'과도 비교해 판단하겠다고 했다.
비용과 바깥 시장 가격을 나란히 놓고 본다는 이 발상은 한국이 처음 만든 게 아니다.
유럽에는 반세기 가까이 된 틀이 있고, 미국에는 정반대의 원칙이 있다.

유럽은 값이 비싸다는 것만으로도 시장지배자를 처벌한다
유럽연합(EU) 기능조약 102조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직접 또는 간접으로 부당한 구매·판매 가격이나 그 밖의 부당한 거래조건을 부과'하는 것을 금지한다.
경쟁사를 몰아내는 '배제적 남용'만이 아니라, 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소비자나 거래상대방에게서 과도한 값을 받아내는 '착취적 남용'을 조문에 못박아 둔 것이다.
지난 9월 3일 EU 집행위원회가 2008년 지침을 대체해 새로 채택한 102조 지침은 배제적 남용에 초점을 맞췄지만, 착취적 남용을 금지하는 102조 (a)항 자체는 그대로 살아 있다.
한국 개정안이 '비용+외부 가격' 비교를 들고나온 것은 이 102조의 운영 방식과 닮았다.
가격이 비용에 비해서도, 바깥의 통상 가격에 비해서도 지나치게 높으면 남용으로 본다는 구조다.
독일도 같은 길에 있다.
독일 경쟁제한방지법(GWB) 19조 2항은 '유효경쟁이 이뤄지는 시장에서 형성됐을 가격과 다른 가격'을 받는 행위를 착취적 남용으로 금지하고, 연방카르텔청은 비교 가능한 경쟁 시장의 가격·경쟁사 가격·해당 기업의 원가를 견줘 과도성을 판단한다.
그 잣대는 1978년 바나나 판결 위에 서 있다
유럽의 이 잣대에는 출생지가 있다. 1978년 유럽사법재판소의 '유나이티드 브랜즈' 판결이다.
바나나를 팔던 이 회사 사건에서 법원은 '상품의 경제적 가치와 합리적 관계가 없을 만큼 비싼 가격'은 남용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두 단계를 요구했다.
먼저 실제 든 원가와 실제 받은 값의 차이가 과도한가, 그렇다면 그 값이 그 자체로, 또는 경쟁 상품과 견줘 부당한가.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중요한 건 이 틀이 쉽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적 가치'를 숫자로 입증하기가 까다로워, 유럽에서도 과도한 가격을 이유로 제재한 사례는 드물다.
바로 이 대목에서 한국의 사정이 겹친다.
한국의 현행 가격남용 조항도 '가격의 현저한 상승'을 요구해 입증이 거의 불가능했고, 그래서 사문화됐다.
개정안이 '현저성'을 '상당성'으로 낮추는 건, 반세기 된 유럽식 틀을 가져오되 그 틀이 유럽에서 겪은 입증의 벽을 미리 낮춰 두려는 시도에 가깝다.
미국은 정반대 토대 위에 있다, 비싸게 파는 건 죄가 아니다
대서양 건너에선 같은 행위가 다르게 읽힌다.
미국 반독점법의 기둥인 셔먼법 2조는 '독점화'를 금지하지만, 단지 값을 비싸게 받는 것 자체는 위법으로 보지 않는다. 2004년 연방대법원의 '버라이즌 대 트린코' 판결은 이 원칙을 못박았다.
'독점적 지위를 가지는 것, 그리고 그에 따라 독점 가격을 매기는 것은 위법이 아닐 뿐 아니라 자유시장 체제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논리의 토대가 다르다.
높은 값을 당분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기업의 혁신과 투자를 끌어낸다고 보기 때문에, 미국은 가격 그 자체가 아니라 경쟁을 해치는 '행위'가 있을 때만 개입한다.
그래서 미국엔 한국·EU·독일식 '과도한 가격' 조항이 없다.
한국 개정안이 가져오려는 착취적 가격 규제는, 적어도 제도의 뿌리로 보면 미국이 아니라 유럽 쪽 계보에 속한다.
소비자를 쥐어짠다는 개념, 일본은 다른 문으로 들어왔다
한국 개정안이 새로 넣는 '소비자 착취행위'는 현행 시행령에 아예 빠져 있던 입법 공백을 메우는 조항이다.
타당성 없는 거래조건을 소비자에게 떠넘기거나, 품질을 현저히 떨어뜨리거나, 선택을 부당하게 제약하는 행위를 남용으로 규정한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일본은 오래전부터 다른 조문으로 다뤄 왔다.
'우월적 지위의 남용'이다.
일본 독점금지법의 이 조항은 시장지배력 입증을 요구하지 않고, 거래에서 우월한 쪽이 상대에게 불이익을 강제하는 것을 폭넓게 금지한다.
원래 하청·납품 관계에 쓰이던 도구인데, 일본 공정취인위원회(JFTC)는 2019년 지침으로 이를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소비자에게까지 넓혔다.
실제로도 자주 쓴다.
JFTC에 따르면 2024회계연도에만 우월적 지위 남용과 관련해 경고 3건, 주의 41건이 내려졌다.
한국의 소비자 착취 조항이 아직 '0건'인 것과 대비된다.
다만 일본의 집계에는 소비자가 아닌 거래처 대상 사건이 많이 섞여 있어, 숫자를 그대로 겹쳐 볼 수는 없다.
자사우대·데이터 조항은 '지정 빅테크' 규제를 닮았다
개정안의 사업활동 방해 쪽에는 디지털 시대를 겨냥한 신설 조항이 들어간다.
거래 과정에서 모은 비공개 정보를 경쟁에 부당하게 활용하는 행위, 그리고 독과점 사업자를 거치지 않고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려는 것을 가로막는 행위다.
앞의 것은 플랫폼이 입점업체 데이터를 자기 사업에 쓰는 '자사우대', 뒤의 것은 외부 결제·직거래 차단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이 영역에서 해외는 이미 판례와 전용 법을 쌓아 뒀다.
EU에선 2024년 9월 유럽사법재판소가 구글의 비교쇼핑 자사우대에 대한 24억 유로 제재를 최종 확정하며, 자사우대를 102조 위반의 독자적 유형으로 인정했다.
더 나아가 EU는 디지털시장법(DMA)으로 알파벳·아마존·애플·부킹·바이트댄스·메타·마이크로소프트 7개 사를 '게이트키퍼'로 지정해, 지배력 입증 없이도 자사우대·데이터 활용을 사전에 금지한다.
독일은 경쟁제한방지법 19a조로 5개 사를, 일본은 2025년 12월 18일 전면 시행된 스마트폰 소프트웨어 경쟁촉진법으로 애플·구글 2개 사를 따로 지정해 외부 결제·앱 배포를 열도록 강제한다.

차이는 '누구에게 적용하느냐'에 있다.
해외의 사전규제는 이름이 적힌 소수 거대 기업만 묶는다.
한국 개정안은 그런 지정 명단 없이, 시장지배적 사업자라면 어느 산업이든 같은 규정을 적용하는 일반 경쟁법의 틀을 택했다.
적용 범위로만 보면 더 넓다.
한국엔 그 토대가 있나
개정안은 그동안 쌓인 집행 현실도 반영한다.
사업활동 방해를 보면, 정작 제재가 많이 나온 유형은 하위 규범인 고시에 있었다.
공정위 집계로 시행령에 적힌 유형의 집행 실적은 6건인데, 고시에 적힌 유형은 24건이었다.
그래서 자주 쓰인 고시 유형(거래거절·부당조건 제시·차별·불이익강제)은 시행령으로 올리고, 거의 쓰이지 않은 필수인력 채용 방해는 고시로 내린다.

문제는 토대다.
유럽의 과도한 가격 규제는 1978년 판결과 수십 년의 비교시장 분석 방법론 위에 서 있고, 그럼에도 입증이 어려워 좀처럼 쓰이지 않는다.
한국은 '비용+외부 가격' 비교라는 같은 방법을 들여오면서 입증 문턱('현저성→상당성')까지 낮췄다.
비교 대상이 될 '외부의 통상적 가격'을 어떤 시장에서, 어떻게 특정할지는 앞으로 고시와 사건에서 채워야 할 몫으로 남는다.
잣대를 낮춘 만큼, 그 잣대를 재는 자가 촘촘해야 과잉 규제와 사문화 사이를 피할 수 있다.
동시에 한국안이 해외보다 나은 지점도 있다.
소수 기업을 지정해 묶는 방식이 아니라 모든 시장지배적 사업자에게 같은 규칙을 적용하므로, 새로 등장하는 지배적 사업자를 그때그때 명단에 올릴 필요가 없다.
지배력이라는 전제를 유지한 점도 미국식 신중함과 유럽식 개입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선택으로 볼 수 있다.
공정위는 12월 16일까지 의견을 받은 뒤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2027년 상반기 중 개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남은 질문은 분명하다.
'상당히 높은 가격'의 비교 기준을 정부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제시하느냐, 그리고 25년 묵은 조항을 되살린 이 틀이 이번엔 실제로 작동하느냐다.
취재에 참고한 자료
이 기사는 공정거래위원회 보도참고자료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2026년 11월 6일)의 한국 수치를 바탕으로, 해외 제도는 1차·공신력 있는 자료로 확인했다.
EU는 기능조약 102조와 2026년 9월 3일 채택된 집행위 102조 지침, 유나이티드 브랜즈 판결(1978), 2024년 9월 10일 구글 쇼핑 최종 판결을 참고했다.
독일은 경쟁제한방지법(GWB) 19조·19a조와 연방카르텔청 자료, 미국은 셔먼법 2조와 2004년 트린코 판결, 일본은 독점금지법상 우월적 지위 남용 규정·공정취인위원회(JFTC) 집행 자료와 2025년 12월 시행된 스마트폰 소프트웨어 경쟁촉진법을 확인했다.
나라마다 규제의 단위(시행령·판례·전용법)와 집행 방식이 달라 표의 각 칸을 1대1로 비교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특히 일본의 우월적 지위 남용 집계에는 소비자가 아닌 거래처 사건이 포함된다.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