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충남의 한 석탄화력발전소에서 20년 넘게 보일러 정비를 맡아 온 노동자를 떠올려 보자.

발전소가 2030년대 안에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가 현장에 돈다.

일자리가 사라지면 그다음은 무엇인가.

회사가 재취업을 알선해 줄지, 그 지역에 새 산업이 들어올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고용노동부가 10월 23일 행정예고한 '정의로운전환 특별지구' 고시 제정안은 바로 그런 지역을 미리 지정해 돕겠다는 제도다.

탄소중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일자리가 줄고 산업구조가 바뀔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을 '특구'로 묶어 선제 지원한다.

근거는 탄소중립기본법 제48조와 시행령 제49조.

지난 7월 마련한 산업전환 고용안정 기본계획과 이달 발표한 한국형 녹색대전환(K-GX) 전략의 후속 조치다.

의견은 11월 2일까지 받는다.

제도의 뼈대는 분명하다.

그런데 외국의 같은 성격 제도를 나란히 놓고 보면, 숫자 뒤에 서 있어야 할 토대 — 얼마의 돈을, 언제까지 쓸 것인가 — 가 아직 한국에선 잘 보이지 않는다.

한국 특구의 숫자는 2년, 시군구, 그리고 '당사자가 계획을 쓴다'

지정기간은 2년이다.

심의를 거쳐 2년 범위에서 한 차례 연장할 수 있고, 특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1년 범위에서 한 번 더 늘릴 수 있다.

최대 5년이다.

신청은 시·도지사가 시·군·구 단위로 고용노동부와 산업통상부에 각각 넣는다.

두 개 이상 시·군·구를 묶어 신청하는 것도 가능하다.

자체 계획을 20일 이상 공고한 뒤 신청서와 함께 낸다.

지정 요건은 필수와 선택으로 나뉜다.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 해당해야 한다는 것이 필수.

여기에 고용환경이 크게 바뀌었거나 바뀔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기업 경영환경 악화가 예상되거나 발생한 경우,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필요한 경우 가운데 하나 이상을 채워야 한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따로 있다.

노사와 주민이 '지원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전환계획을 함께 세우는 주체가 되도록 못박은 점이다.

의견수렴 대상에는 협력업체 노사까지 넓게 넣었다.

절차는 정의로운전환 지원센터가 받친다.

한국고용정보원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중앙 지원센터를 맡고, 지정 뒤에는 지방정부가 세우는 지역 지원센터가 이행을 돕는다.

최종 지정은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 심의를 거친다.

독일의 400억 유로는 '2038년'이라는 법정 시한에 묶여 있다

독일은 석탄지역구조강화법(StStG)으로 석탄지역에 최대 약 400억 유로를 2038년까지 투입하기로 했다.

약 140억 유로는 주정부에 주는 직접 재정지원이고, 약 260억 유로는 철도·도로·연구기관 설립 같은 연방 사업이다.

지원 대상 지역은 법에 군(Landkreis) 이름까지 적어 고정했다.

라우지츠, 라인란트, 중부독일 3대 갈탄지역이다.

이 400억 유로가 왜 2038년에 걸려 있나.

독일은 탈석탄법(KVBG)으로 '늦어도 2038년 말까지 석탄발전을 0기가와트로 끝낸다'는 종료 시점을 법 조문(제2조)에 박아 뒀기 때문이다.

라인란트 갈탄지역은 2022년 합의로 2030년까지 앞당겼다가, 최근 메르츠 정부에서 마지막 일부 설비를 2033년까지 예비전원으로 돌리는 쪽으로 속도를 다시 늦추고 있다.

그래도 2038년이라는 법정 종료 시한 자체는 그대로다.

끝나는 날짜가 법으로 정해져 있으니 그에 맞춰 약 18년짜리 재정 창구가 열려 있는 셈이다.

독일 제도의 토대는 '법정 시한'이다.

EU의 돈은 '지역전환계획'을 통과해야 비로소 나온다

EU 공정전환기금(JTF)은 규정 2021/1056에 따라 2021~2027년 예산주기에 약 175억 유로(2018년 가격 기준, 현재가로는 약 197억 유로)를 담았다.

기금·투자보증·공공대출 세 기둥을 합친 공정전환메커니즘 전체로는 약 550억 유로 동원을 목표로 한다.

돈이 나오는 전제가 있다.

회원국이 NUTS-3라는 통계지역 단위로 영토별 공정전환계획(TJTP)을 짜서 집행위원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계획이 승인되지 않으면 그 지역엔 기금이 집행되지 않는다.

계획의 시계는 2030년에 맞춰져 있다.

나라별 몫도 공식으로 계산한다.

탄소집약지역의 온실가스 배출량, 석탄·갈탄 분야 고용 같은 지표를 넣는다.

EU 제도의 토대는 둘이다.

여러 해를 한꺼번에 묶는 다년도예산(MFF), 그리고 통계지역과 계획 승인이라는 행정 틀이다.

다만 지금 기준으로 한 가지는 유동적이다.

집행위는 2025년 7월 2028~2034년 예산안을 내놓으면서 JTF를 독립 기금으로 잇지 않고 '국가·지역 파트너십계획'으로 통합하자고 제안했다.

아직 제안 단계이고 채택되지 않았다.

현행 JTF는 2027년까지 그대로 유효하다.

스페인은 공장이 닫히는 '그 자리'에 협약을 맺는다

스페인의 정의로운전환협약(Convenios de Transición Justa)은 석탄광과 화력·원전이 닫히는 특정 지역에 직접 꽂힌다.

국가, 광역(자치주), 기초지자체가 함께 협약을 맺는다.

지금까지 15개 협약이 체결됐고 197개 기초지자체, 8개 자치주를 덮는다.

운영 주체는 환경전환부 산하에 둔 정의로운전환연구소(ITJ)다. 2021년 법령(RD 179/2021)으로 설치된 상설 기관이다.

협약의 기본 기간은 2년, 최대 2년을 더 연장해 최대 4년이다.

한국의 '2년에 연장을 얹는' 구조와 닮았다.

다른 점은 그 위에 무엇이 받치고 있느냐다.

스페인은 상설 연구소와, 법으로 5년마다 갱신하도록 한 국가 전환전략을 깔아 뒀다.

지난해 12월부터 2026~2030년 새 전략을 설계하고 있다.

재원도 EU 공정전환기금 내 스페인 배정분 8.68억 유로, 국가 회복계획 전용분 3억 유로처럼 출처가 다른 돈을 구분해 쓴다.

한국 설계가 외국보다 앞선 자리도 있다

한국안을 깎아내릴 이유는 없다.

노사와 주민을 계획 '주체'로 명시하고, 의견수렴 대상에 협력업체 노사까지 넣은 범위는 EU나 스페인이 요구하는 사회적 대화보다 오히려 넓은 편이다.

전환 충격을 먼저 맞는 쪽이 하청 노동자라는 현장의 지적을 조문에 반영했다.

시·군·구를 묶어 신청할 수 있게 열어 둔 것도 생활권 단위로 움직일 여지를 준다.

제도의 문장만 놓고 보면 참여 설계는 성기지 않다.

한국이 아직 답하지 않은 것은 돈과 시한이다

독일의 2038년처럼, 한국에는 석탄발전을 '언제 0으로' 끝낸다는 단일한 법정 시점이 아직 없다.

폐지 일정은 전력수급기본계획으로 정한다. 9월 18일 공개토론회에서 윤곽이 나온 제12차 계획 초안은 2040년 전면 퇴출을 겨누되 일부를 안보전원으로 남기는 방향이다.

특구가 기대어야 할 '끝나는 날짜'가 아직 계획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재원은 더 비어 있다.

이번 고시안에는 특구에 얼마를 쓸지 확정 금액이 없다.

독일 400억 유로, EU 175억 유로, 스페인의 구분된 재원처럼 제도에 '묶인 돈'이 아직 붙어 있지 않다.

기후기금에서 정의로운전환 몫이 작다는 지적과 별도의 '정의로운전환기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지역에서 나오는 이유다.

지정기간 2년도 독일 18년, EU 7년에 견주면 짧다.

공장 하나 바꾸는 데도 몇 년이 걸리는 것이 산업전환이다.

고용노동부는 산업통상부와 공동고시로 11월 2일까지 의견을 받아 고시를 제정·시행하고, 지방정부 신청을 받아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 심의를 거쳐 특구를 지정할 계획이다.

남은 질문은 분명하다.

특구로 지정된 지역에 정부는 얼마를, 몇 년 동안 보장할 것인가.

외국 제도의 숫자를 참고하기 전에 한국이 먼저 세워야 할 토대다.

취재에 참고한 자료

한국 수치는 고용노동부 보도참고자료 '정의로운전환 특별지구 지정기준 행정예고'(2026년 10월 23일)에서 옮겼다.

석탄발전 폐지 일정은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개토론회 관련 보도(2026년 9월 18일)를, 재원 논의는 관련 지역 사설을 참고했다.

독일은 연방 법령정보(gesetze-im-internet.de)의 투자재정지원법(InvKG) 제1·2조와 탈석탄법(KVBG) 제2조, 연방경제부의 2024년 이행보고서, 연방망규제청 2026년 9월 1일 발표에서 확인했다.

EU는 규정 (EU) 2021/1056 원문과 집행위 공정전환메커니즘 페이지, 유럽의회 설명자료, 2025년 7월 2028~2034년 예산안 발표를 썼다.

스페인은 정의로운전환연구소(transicionjusta.gob.es)의 협약·기금 페이지와 관보(BOE)의 RD 179/2021을 확인했다.

나라마다 기준 단위(지정기간·협약기간·예산주기·법정 시한)와 재원 범위가 달라 숫자를 1대1로 비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