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서울 변두리에서 네일숍을 혼자 꾸리는 김모씨가 올해 초 사업자등록을 냈다고 하자.
종업원은 없다.
매출이라야 월세 내고 재료비 빼면 빠듯하다.
그래도 국가 통계에서 김씨는 어엿한 '기업 한 개'다.
그것도 올해 새로 생긴 '신생기업 1개'로 잡힌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22일 내놓은 2025년 기업생멸행정통계(잠정)를 보면, 지난해 매출이 있거나 상용근로자를 둔 국내 영리기업은 774만 8천개다.
전년보다 10만 6천개(1.4%) 늘었다.
이 가운데 종사자가 김씨처럼 1명뿐인 기업이 621만 7천개로 80.2%, 개인사업자가 683만 8천개로 88.3%를 차지한다.
올해 새로 활동을 시작한 신생기업은 90만 8천개, 활동기업 대비 신생률은 11.7%였다. 2024년 중 활동을 접은 소멸기업은 76만 9천개, 소멸률은 10.1%다.
이 통계는 국세청 사업자등록·부가가치세·법인세 자료를 엮어 만든다.
작성 기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럽연합 통계청(유로스타트)이 함께 만든 '기업생멸통계 매뉴얼'을 따른다고 보도자료는 밝혔다.
틀은 국제 기준이다.
문제는 그 틀이 딛고 선 바닥이 나라마다 다르다는 데 있다.

혼자 네일숍 연 김씨도 '기업 한 개'로 잡힌다
한국 통계의 바닥은 사업자등록이다.
매출이 있거나 상용근로자가 있으면 기업으로 센다.
한 사람이 사업자등록을 여러 개 냈으면 각각을 별개 개인기업으로 본다.
농사짓는 농림어업도, 학원도, 동네 의원도 다 들어온다.
그래서 '기업'이라 부르지만 상당수는 간판 하나, 사람 하나짜리다.
종사자 1인 기업이 열에 여덟이라는 숫자가 그 성격을 말해준다.
이 방식의 장점은 분명하다.
아주 작은 자영업까지 빠짐없이 그물에 걸린다.
뒤에서 보겠지만, 미국이나 일본의 대표 지표는 이만큼 촘촘하지 않다.
유로스타트는 '사업자등록'이 아니라 통계용 기업명부에서 센다
유럽은 어떨까.
유로스타트가 이달 1일 공표한 2024년 기업생멸 통계를 보면, 한 해 동안 유럽연합에서 새로 태어난 기업은 350만개, 소멸한 기업은 310만개다.
탄생률 10.4%, 소멸률 9.2%.
숫자만 보면 한국의 신생률 11.7%, 소멸률 10.1%와 꽤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유럽의 '기업'은 통계기관이 관리하는 기업명부에서 온다.
부가가치세·사회보장 자료를 바탕으로 '생산요소의 결합'이 새로 생겼는지를 따진다.
합병·분할·업종 변경으로 생긴 등장은 탄생에서 뺀다.
죽음도 2년 안에 되살아나면 소멸로 치지 않는다.
집계 대상도 '비즈니스 경제'로 묶이는 산업에 한정돼, 한국처럼 농림어업까지 전부 담지는 않는다.
비슷해 보이는 두 비율이 같은 모집단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뜻이다.
미국은 '월급 주는 회사'만 세고, 1인 사업자는 따로 뺀다
미국의 대표 지표인 인구조사국 기업역동성통계(BDS)는 결이 또 다르다.
이 통계는 급여를 지급하는 고용기업만 센다.
종업원 없이 혼자 하는 사업체, 곧 김씨 같은 경우는 여기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 1인 사업체는 '비고용 사업체 통계'라는 별도 자료에서 따로 집계된다.
미국 전체 사업체의 대다수가 이 비고용 사업체라는 연구가 적지 않다.
바꿔 말하면 미국이 흔히 말하는 창업률·폐업률은 '직원을 둔 회사'들의 이야기지, 한국 통계의 621만 1인 기업 같은 세계를 담은 숫자가 아니다.
시차도 있다.
가장 최근 공표된 BDS가 2023년 자료다.
행정자료를 쌓아 뒤에 확정하는 구조라 2년 안팎 늦게 나온다.
한국이 잠정치로나마 2025년을 말하는 것과는 출발부터 다르다.

일본 개업률 3.8%의 비밀은 '고용보험 사업소'
일본으로 가면 숫자가 확 낮아진다.
올 4월 각의에서 확정된 2026년판 중소기업백서를 보면, 2024년도 일본의 개업률은 3.8%, 폐업률은 3.7%다.
한국 신생률 11.7%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 격차의 상당 부분은 '어디서 세느냐'에서 온다.
일본의 대표 개·폐업률은 후생노동성 고용보험 사업연보에 기댄다.
그해 고용보험 관계가 새로 성립한 사업소 수를, 전년도 말 적용 사업소 수로 나눈 값이다.
고용보험에 든다는 건 사람을 썼다는 뜻이다.
즉 일본의 이 지표도 미국처럼 '사람을 고용한 사업소'가 바닥이다.
혼자 하는 가게는 대개 빠진다.
매출만 있어도 기업으로 세는 한국과 출발선이 다르다.
한국 '고성장기업'은 매출·고용 둘 다 20%, 유럽은 고용 10%
고성장기업과 가젤기업으로 가면 토대 차이가 정의 자체에서 드러난다.
한국 통계는 상용근로자 10인 이상 기업 가운데 최근 3년간 매출액과 상용근로자가 '각각' 연평균 20% 이상 늘어난 기업을 20% 이상 고성장기업으로 본다. 2025년 기준 4,534개로, 전년보다 855개 줄었다.
이 중 창업 4~5년차인 가젤기업은 1,146개다.
OECD-유로스타트 매뉴얼의 원래 정의는 고용 또는 매출 '한 가지'가 연평균 20% 이상이면 고성장기업이다.
유로스타트가 지금 실제로 쓰는 기준은 더 낮아, 상용근로자가 3년간 연평균 10% 이상 늘면 고성장기업으로 잡는다.
역시 10인 이상이 출발 조건이고, 설립 4~5년 된 곳이 가젤이다.
그러니 한국의 고성장기업 숫자는 유럽 숫자보다 훨씬 좁은 그물로 걸러낸 결과다.
매출도 늘고 고용도 늘어야 하며, 문턱도 20%로 높다.
덜 잡히는 게 당연하다.
이것을 두고 한국 창업 생태계가 유럽보다 역동성이 떨어진다고 바로 말하기는 어렵다.
거꾸로, 매출과 고용이 함께 뛴 기업만 골라낸다는 점에서 한국의 고성장기업은 '질'을 더 깐깐하게 본 수치라고 읽을 여지도 있다.

숫자를 나란히 놓기 전에 물어야 할 것
한국 통계가 국제 매뉴얼을 따른다는 사실 자체는 흠이 아니다.
오히려 세금·고용 행정자료를 촘촘히 엮어 1인 자영업까지 담아내는 한국 방식은, 고용기업만 보는 미국·일본 지표보다 바닥을 넓게 본다.
생존율도 꾸준히 쌓아 왔다. 2023년 신생기업의 1년 생존율은 63.9%, 2019년 신생기업의 5년 생존율은 36.5%였다.
다만 이 숫자들을 해외 수치 옆에 그대로 붙여 '한국은 높다, 낮다'고 말하는 순간 저마다 다른 바닥이 지워진다.
부가세 명부 위의 유럽, 급여대장 위의 미국, 고용보험 위의 일본, 사업자등록 위의 한국은 같은 단어로 서로 다른 것을 센다.
소멸기업과 소멸률의 2025년 수치는 2026년 매출·고용이 확인돼야 나온다.
상세 통계표는 올 12월 국가통계포털에 실릴 예정이다.
그때 정부가 함께 답해야 할 질문이 하나 더 있다.
국제 비교표에 한국 숫자를 올릴 때, 바닥이 다르다는 각주를 어디까지 달 것인가.
취재에 참고한 자료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기업생멸행정통계(잠정) 결과' 보도자료(2026년 10월 22일 배포)에서 한국의 활동·신생·소멸기업 수와 비율, 생존율, 고성장·가젤기업 정의와 수치를 옮겼다.
유럽 수치는 유로스타트 뉴스 'EU에서 2024년 350만개 새 기업 탄생'(2026년 10월 1일)과 '고성장기업 통계' 설명 페이지, 그리고 OECD-유로스타트 '기업생멸통계 매뉴얼(2007년판)'에서 확인했다.
미국은 인구조사국 기업역동성통계(BDS) 프로그램 안내(최신 2023년 자료)와 비고용 사업체 관련 연구를, 일본은 2026년판 중소기업백서 제1부 '개업·도산·휴폐업' 절(2026년 4월 각의 결정)과 고용보험 사업연보 기반 정의를 참고했다.
나라마다 기업의 단위(사업자등록·기업명부·고용사업소), 포함 대상(1인·무고용 기업 포함 여부), 기준 연도가 달라, 탄생률·개업률을 한 줄에 놓고 단순 비교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