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경기도 반월공단에서 자동차 부품을 깎는 2차 협력업체 사장 김모씨를 떠올려 보자.

지난해 구리값이 한 달 새 크게 뛰었다.

원청에 단가를 올려달라 했지만 1년 전 맺은 계약서에 묶여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올해 정부가 그의 거래를 들여다본다.

김씨가 원청과 맺은 계약서에 '원재료값이 오르면 납품대금도 따라 올린다'는 조항, 이른바 납품대금 연동제가 제대로 들어가 있는지가 조사 항목 가운데 하나다.

중소벤처기업부는 19일 '2026년 수탁·위탁거래 정기 실태조사'를 시작했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에 따른 법정 조사다.

위탁기업 3,000곳과 그와 거래하는 수탁기업 1만 2,000곳, 모두 1만 5,000개사가 대상이다.

올해는 들여다보는 거래 기간을 종전 상반기 6개월에서 한 해 전체로 늘렸다.

유통·식품·건설처럼 하반기에 거래가 몰리는 업종이 조사에서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중기부는 설명했다.

점검 항목은 대부분 숫자와 기한이다.

물품을 받은 날부터 60일 안에 대금을 줬는지(상생협력법 제22조), 약정서를 발급했는지, 부당하게 깎지 않았는지, 그리고 원재료 연동 약정을 넣었는지다.

성격이 비슷한 규칙이 일본과 유럽에도 있다.

그런데 같은 규칙이라도 저마다 다른 토대 위에 서 있다.

한국이 올해 들여다보는 '60일'과 '연동제'

한국 규칙의 뼈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대금 지급 기한.

물품을 받은 날부터 60일을 넘기면 위탁기업은 연 15.5%의 지연이자를 물어야 한다.

이 이자율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고시로 정한 것으로 2015년 7월부터 유지되고 있다.

다른 하나가 납품대금 연동제다. 2023년 10월 시행됐다.

주요 원재료 비용이 납품대금의 10% 이상을 차지하면, 그 원재료 가격이 움직일 때 대금도 조정하도록 계약서에 적게 했다.

변동 기준은 두 회사가 10% 이내 범위에서 협의해 정한다.

빠져나갈 구멍도 법에 적혀 있다.

위탁기업이 소기업이거나, 납품대금 1억원 이하 소액 계약, 90일 이내 단기 계약은 연동 약정을 넣지 않아도 된다.

대신 이 예외를 노린 꼼수에는 최대 5,000만원 과태료가 걸려 있다.

원재료값까지 계약서에 적어 넣으라고 법으로 강제하는 나라는 흔치 않다.

여기서부터 다른 나라와 갈린다.

일본은 70년 된 하도급법을 올해 '취적법'으로 갈아끼웠다

일본의 하도급법(下請法)은 1956년부터 있었다.

그 법이 올해 1월 1일 이름까지 바꿔 '중소수탁거래적정화법', 줄여서 취적법(取適法)으로 다시 태어났다.

지급 기한은 물품을 받은 날부터 60일, 검수가 늦어도 60일 안이다.

가장 크게 바뀐 건 어음이다.

종전엔 어음으로 결제하면 대금을 손에 쥐기까지 최대 120일이 걸렸는데, 이번 개정으로 어음 결제가 금지됐다.

종이 어음·수표는 2027년 3월 말까지 없앤다.

수탁기업에 이체 수수료를 떠넘기는 것도 막았다.

한국의 연동제와 가장 닮은 대목은 가격 협의 규정이다.

수탁기업이 단가 협의를 요청했는데 응하지 않고 위탁기업이 일방적으로 대금을 정하면 위반이 된다.

다만 일본은 '원재료값에 자동으로 연동하라'가 아니라 '협의 요청에 응하라'는 과정만 강제한다. 60일을 넘기면 연 14.6%의 지연이자가 붙는다.

집행 토대가 한국과 다르다.

일본은 독립 경쟁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중소기업청과 함께 매년 대규모 서면조사를 돌린다. 2024년(레이와 5년도) 기준으로 모기업 8만 곳, 하청기업 33만 곳, 합쳐 41만 곳에 설문을 보냈다.

그해 새로 착수한 위반 의심 사건 8,232건 가운데 8,120건이 이 정기조사에서 걸러졌다.

두 기관이 기업 명부를 절반씩 나눠 맡는다. 70년 쌓인 집행 조직과, 모기업을 정점으로 한 계열(系列) 하청 구조가 이 규칙의 밑바탕이다.

한국이 쓰는 표본 실태조사 방식도 사실 이 일본식 서면조사와 닮은 꼴이다.

유럽연합은 'B2B 30일 상한'을 밀다가 2년 만에 접었다

유럽연합의 토대는 법원이다. 2011년 지불지연지침(2011/7/EU)이 기업 간 거래는 60일을 기본 상한으로, 공공기관은 30일로 정해 놓았다.

대금이 늦으면 기준금리에 8%포인트 이상을 더한 법정 이자가 자동으로 붙고, 공급자는 이를 법원에서 청구할 수 있다.

하청만 전담하는 조사 관료제는 없다.

집행위원회는 2023년 9월, 기업 간 거래도 30일로 못 박는 규정안을 내놨다.

유럽의회는 2024년 4월 이 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회원국들이 모인 이사회에서 막혔다.

회원국 절반 가까이가 반대했고, 공급망금융 업계도 거세게 반발했다. 2026년 현재 이 안은 사실상 멈춰 섰다.

계약 자유를 중시하는 단일시장에서는 균일한 상한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 자체가 통과되지 못했다.

프랑스는 벌금 2백만 유로와 전자세금계산서로 조인다

같은 유럽연합 회원국이라도 프랑스는 행정의 손이 세다.

상법 L441-10조는 대금 지급을 기본 30일, 당사자가 합의하면 최대 60일(또는 45일 월말)로 묶는다.

어기면 경쟁·소비·사기단속총국(DGCCRF)이 최대 2백만 유로의 행정벌금을 매기고 회사 이름을 공개한다. 2026년 9월부터는 전자세금계산서가 단계적으로 들어와 송장 흐름마다 시점이 기록되면서 적발이 자동화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강한 행정국가와 실시간 데이터가 이 규칙의 토대다.

다만 원재료값을 대금에 자동 반영하라는 연동 의무는 프랑스에도 없다.

같은 '60일' 위에 한국만 '원재료값'을 한 겹 더 얹었다

네 나라 모두 대금 기한은 60일 언저리로 모인다.

한국과 일본이 60일, 유럽연합이 60일 상한, 프랑스가 60일 상한(기본 30일)이다.

숫자만 보면 닮았다.

그 위에 한국은 '원재료값을 계약서에 연동하라'는 의무를 하나 더 얹었다.

일본조차 자동 연동이 아니라 협의 응답 의무까지만 갔고, 유럽연합과 프랑스엔 그런 의무가 아예 없다.

베낀 게 아니라 한국이 더 멀리 나간 대목이다.

원청에서 1차, 2차, 3차로 내려가는 가파른 다단계 하청 구조에서 원자재값 급등이 맨 아래 약한 고리로 전가되던 문제를, 2021~2022년 원자재 파동을 겪은 뒤 정면으로 겨눈 설계다.

조사 기간은 늘렸는데, 상시 감시의 토대는 어디 있나

관건은 집행 토대다.

일본은 독립 경쟁당국이 매년 41만 곳 서면조사를 70년째 돌리고, 프랑스는 전자세금계산서로 송장을 실시간 들여다본다.

한국의 연동제는 더 센 의무를 걸어 두고, 적발은 1년에 한 번 1만 5,000곳 표본 조사에 기댄다.

올해 조사 기간을 6개월에서 12개월로 늘린 건 그 틈을 메우려는 보완이다.

물론 한국은 위탁기업 3,000곳을 무작위로 뽑아 그와 거래하는 수탁기업 1만 2,000곳을 교차 점검하는 방식이라, 전수에 가까운 일본 설문과 규모를 1대1로 견주긴 어렵다.

집행도 상생협력법은 중기부, 하도급법은 공정위로 갈려 있다.

한국안이 나은 점도 분명하다.

협의 의무에 그친 일본과 달리 연동이라는 결과 자체를 못 박았다는 것은, 협상력이 약한 수탁기업에는 더 유리할 수 있다.

다만 소기업·1억원·90일이라는 예외가 넓어 회피 유인도 함께 남는다.

이번 조사는 2026년 10월부터 2027년 9월까지 12개월간 진행된다. 1차 위탁기업 거래현황 조사가 올해 10~11월, 2차 수탁기업 설문과 위탁기업 자진개선이 올해 12월~내년 1월, 3차 법 위반 의심기업 현장조사가 2027년 3~4월, 위반기업 조치가 2027년 6월부터다.

수탁기업 피해금액을 전액 지급하는 등 자진 시정하면 현장조사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

중기부는 20일부터 30일까지 광주·대전·서울·대구·부산·경기 6개 권역에서 설명회를 연다.

남은 질문은 하나다. 1년에 한 번, 1만 5,000곳 표본으로 전 산업의 연동 계약 이행을 실제로 가려낼 수 있는가.

취재에 참고한 자료

한국 수치는 중소벤처기업부 보도자료 '2026년 수탁·위탁거래 정기 실태조사 실시'(2026년 10월 19일 조간)에서 옮겼고, 지연이자율(연 15.5%)과 연동제 예외·과태료는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와 상생협력법 시행령 관련 보도를 확인했다.

일본은 경제산업성 중소기업청의 취적법 개정 설명자료(2026년 1월 시행)와 공정거래위원회의 '레이와 5년도 하도급법 운용상황'(2024년 6월)을, 유럽연합은 지불지연지침(2011/7/EU)과 유럽의회 입법추적 자료(2026년 교착 상태 확인)를, 프랑스는 상법 L441-10조와 2026년 B2B 지급기한 해설을 참고했다.

나라마다 지급기한의 기산점(수령일·송장발행일), 조사 대상 집계 방식(표본 대 전수형), 지연이자 산정 기준이 달라 수치를 단순 비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