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 시행령이 2025년 9월 26일 발효되면서, 송전망을 누가 어디에 어떤 조건으로 깔 것인가가 산업 지형을 다시 짜는 변수로 떠올랐다.
특히 민간 사업시행자의 송전 사업 참여를 열고,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경과지 주민 보상을 제도화한 대목은 단순한 절차법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본지가 권역별 계통 여유와 송전 병목, 데이터센터 전기사용 신청 현황, 그리고 정부가 예고한 지역차등요금 설계안을 교차 분석한 결과, 앞으로 5년간 국내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팹의 신증설 가능 입지는 사실상 '전기가 남는 곳'으로 재편될 공산이 크다.
문제는 그 이동이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계통 포화라는 물리적 벽에 떠밀린 반강제적 재배치라는 데 있다.
숫자가 이를 뒷받침한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접수된 데이터센터 전기사용 신청 290건 가운데 195건, 약 67%가 수도권에 몰렸다.
그러나 실제로 계통 접속이 가능하다고 판정된 사업은 4건, 승인율로 따지면 2%에 불과했다.
다른 집계로는 522건 중 10건, 1.9%라는 수치도 제시된다.
어느 쪽을 보든 수도권 전력망은 이미 문을 닫은 상태에 가깝다.
정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5년 2월 21일 확정)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앞선 제10차 계획의 2036년 1.4GW에서 2038년 4.4GW로 세 배 이상 상향했는데, 이 수요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계통 대기열에 쌓이고 있는 셈이다.

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 시행령,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나
먼저 제도의 뼈대를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특별법 자체는 2025년 3월 25일 공포됐고, 세부 절차를 담은 시행령이 그해 9월 23일 공포돼 26일부터 본법과 함께 시행됐다.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그동안 사실상 한국전력이 전담하던 송변전 설비 건설에 민간 사업시행자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둘째, 신속한 토지 보상 협의를 유도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령이 정한 기간 안에 용지 확보 협의가 성립되면 토지대금을 일정 비율 가산해 지급하는 인센티브를 뒀다.
셋째, 송전선로가 통과하는 경과지 주민에 대한 보상을 넓혔다.
단순 현금 보상을 넘어, 철도망·도시철도 등 다른 사회기반시설과 전력망을 함께 개발하는 공동개발계획을 세워 주민이 원하는 인프라를 지역에 남기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변화의 방향은 분명하다.
과거의 송전망 건설은 '한전이 계획하고, 주민 반대에 부딪혀 늦어지는' 구조였다.
밀양 송전탑 갈등이 상징하듯, 경과지 보상의 빈약함과 절차의 불투명함이 사업을 수년씩 지연시켰다.
실제로 제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 기준으로 2036년까지 필요한 송전망 보강 비용은 약 56조5000억원에 이르는데, 이 막대한 투자가 제때 집행되려면 토지·보상·수용성이라는 병목부터 뚫어야 한다.
시행령은 바로 그 지점을 겨냥한다.
민간 자본과 보상 인센티브를 끌어들여 건설 속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다만 민간 참여가 곧바로 요금 인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 경과지 보상 확대가 오히려 초기 비용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은 뒤에서 짚을 반론의 씨앗이다.
한국의 송전 병목,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어디쯤인가
계통 대기열 문제는 한국만의 병이 아니다.
오히려 AI 붐을 먼저 맞은 나라들이 더 극단적인 형태로 앓고 있어, 한국의 위치를 가늠할 거울이 된다.
본지가 세 나라의 사례를 같은 축, 즉 '계통 접속 대기의 심각성'과 '정부의 대응 방식'으로 비교한 결과는 이렇다.
미국은 규모의 위기다.
계통 운영기관 PJM에서는 신규 접속 대기가 7년 안팎까지 늘어졌고, 텍사스 ERCOT의 접속 대기 물량은 474GW에 달하는데 그 90%가 데이터센터 수요로 추정된다.
전미로 넓히면 2025년 말 기준 약 8200개 사업, 발전 1312GW와 저장장치 749GW가 접속을 기다리며 정체돼 있다.
대기만 문제가 아니다.
PJM에서는 데이터센터 급증이 2025~2026년 용량 비용을 93억 달러 끌어올려, 오하이오·메릴랜드 가정용 요금을 월 16~18달러가량 밀어올린 것으로 분석됐다.
수요가 요금으로 전가되는 전형이다.
아일랜드는 규제로 문을 걸어잠근 사례다.
더블린 일대 계통 포화가 심해지자 규제당국은 2021년 사실상의 신규 데이터센터 계통 접속 모라토리엄을 뒀고, 이 조치는 2025년 12월에야 공식 해제됐다.
그러나 해제의 조건이 상징적이다. 10MVA를 초과하는 신규 접속은 그에 상응하는 자체 발전 또는 저장설비를 현장이나 인근에 갖추도록 의무화했다.
계통에 부담을 주는 만큼 스스로 감당하라는 것이다.
네덜란드 역시 접속 대기가 평균 3~4년, 길게는 10년까지 걸리는 지역이 나타나면서 대형 전력수요가의 신규 연결을 사실상 제한해 왔다.
이 거울에 비춰 보면 한국의 좌표가 또렷해진다.
한국은 미국만큼 절대 규모가 크지도, 아일랜드처럼 전면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지도 않았다.
대신 '계통 포화 지역 신규 데이터센터에 대한 전기공급 거부 허용'이라는 카드와 '지역차등요금'이라는 가격 신호를 동시에 꺼내 든, 절충형 경로를 택했다.
규제와 시장을 섞은 이 방식은 유연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신호가 약하면 어느 쪽으로도 강하게 작동하지 못하는 어정쩡함에 빠질 위험도 크다.

지역차등요금, 데이터센터를 정말 지방으로 보낼 수 있나
가격 신호의 핵심은 지역차등요금제다.
정부는 2026년 8월 26일 산업용 지역 전기요금제 설계안을 공개하고, 발전사가 한전에 파는 도매요금을 3개 권역으로 차등화하는 방안을 함께 제시했다.
방향은 수도권을 올리고 비수도권을 내리는 것이다.
다만 본지가 주목하는 대목은 인하 폭의 크기다.
설계안상 남부권의 최대 인하 폭은 kWh당 18원, 비율로는 약 10% 수준에 그친다.
이 정도 유인이 수천억 원대 투자 입지를 실제로 뒤흔들 수 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요금의 절대 수준 자체도 이미 빠르게 오르고 있다.
데이터센터가 주로 적용받는 일반용 전기요금은 2021년 kWh당 128.47원에서 2025년 말 172.99원으로 4년 만에 약 35% 상승했다.
같은 기간 산업용(을) 요금은 102.4원에서 179.2원으로 무려 75% 급등했다.
요금이 전방위로 오르는 국면에서 특정 권역만 10% 깎아 준다고 해서 입지 결정이 뒤집힐지, 아니면 결국 계통 접속 가능 여부라는 물리적 제약이 더 강���게 작동할지가 관건이다.
실제로 2027년까지 데이터센터가 필요로 하는 전력은 약 7343MW인데 공급 가능 용량은 4718MW에 그쳐, 3분의 1 이상이 부족할 것으로 추정된다.
가격보다 물량이 먼저 벽에 부딪히는 구조다.
본지 분석의 첫 번째 결론은 이렇다.
앞으로 국내 데이터센터·반도체 신증설의 실질적 입지 결정권은 요금이 아니라 '계통 접속 순번'이 쥐게 된다.
남부권·강원 동해안·호남처럼 발전원이 밀집하고 계통에 여유가 있는 권역이 우선 후보로 떠오르되, 그 이동은 요금 할인의 매력이 아니라 수도권 접속 불가라는 배제의 힘으로 밀려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결론은 시행령의 성패가 '보상의 속도'에 달렸다는 것이다.
민간 참여와 경과지 보상 확대는 방향이 옳지만, 보상을 후하게 하면 초기 사업비가 커지고 이는 다시 요금 인상 압력으로 돌아온다.
반대로 보상이 인색하면 수용성 갈등으로 공기가 늘어진다.
본지가 해외 사례를 교차 분석한 결과, 결국 승패를 가른 것은 보상 액수의 크기가 아니라 '언제까지 얼마를 준다'는 예측 가능성이었다.
시행령이 도입한 협의 기한 내 토지대금 가산 방식은 바로 이 예측 가능성을 겨냥한 설계로, 실제 운영에서 기한과 가산율을 얼마나 촘촘히 지키느냐가 관건이다.
세 번째 결론은 지역차등요금이 '분산 유도'보다 '수도권 비용 현실화' 쪽에서 먼저 효과를 낼 것이라는 점이다.
남부권 10% 인하로 기업을 끌어내리기는 어렵지만, 수도권 요금을 올려 신규 수요를 억제하는 방향으로는 즉시 작동한다.
즉 이 제도는 당근보다 채찍의 성격이 강하며, 그 채찍은 이미 계통 포화로 접속이 막힌 수도권 사업자에게 이중의 부담으로 얹힐 수 있다.
정책적 함의는 세 갈래로 정리된다.
우선 정부는 요금 차등의 폭을 지금의 10% 안팎에서 더 벌리거나, 계통 접속 우선권·인허가 패스트트랙 같은 비가격 유인을 함께 묶어야 신호가 실제 입지 이동으로 연결된다.
둘째, 민간 송전 참여를 허용한 만큼 요금 원가에 대한 감시와 정보 공개가 병행돼야 한다.
민간의 수익 보장이 소비자 요금으로 조용히 전가되는 경로를 차단하지 못하면, 특별법의 취지는 되레 훼손된다.
셋째, 경과지 주민 보상은 현금이 아니라 아일랜드식 자체 설비 매칭이나 지역 인프라 환원처럼 '지역에 남는 자산'으로 설계할수록 갈등 비용이 줄어든다는 점을 해외 사례가 보여 준다.
취약한 쪽은 명확하다.
이미 수도권에 부지를 확보하고 인허가를 밟던 중소·중견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이다.
대형 사업자는 지방 이전이나 자체 발전 확보로 우회할 여력이 있지만, 자본이 얇은 사업자는 접속 거부와 요금 인상이라는 이중 벽 앞에서 사업 자체를 접어야 할 수도 있다.
반도체 팹 역시 용수·인력·클러스터 집적 때문에 입지를 마음대로 옮기기 어려운 만큼, 계통 보강이 늦어지는 지역에 묶인 투자는 고스란히 지연 리스크로 남는다.
검증 노트
본 기사는 2026년 9월 19일 기준으로 작성됐다.
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 및 시행령의 시행 시점(2025년 9월 26일)과 조문 취지는 국가법령정보센터·법제처 입법예고 자료로 확인했고, 민간 사업시행자 참여와 경과지 보상 관련 조항의 성격을 교차 검토했다.
데이터센터 계통 접속 승인율(신청 290건 중 4건, 약 2% / 별도 집계 522건 중 10건, 1.9%), 일반용 요금 상승률(2021년 128.47원→2025년 말 172.99원, 약 35%)과 산업용(을) 75% 상승, 2027년 수요 7343MW 대 공급 4718MW 전망은 국내 산업 전문매체 심층 리포트를 근거로 했으며 '추정'·'집계'임을 본문에 명시했다.
지역차등요금 설계안(2026년 8월 26일 공개, 남부권 최대 kWh당 18원·약 10% 인하, 도매요금 3권역 차등화)은 기후에너지환경부 업무보고 및 관련 보도로 확인했다.
국제 비교(미국 PJM 대기 약 7년·ERCOT 474GW·전미 1312GW 발전 대기, PJM 용량비용 93억 달러 증가, 아일랜드 모라토리엄 2021~2025년 12월 해제 및 10MVA 초과 자체설비 매칭 의무, 네덜란드 접속 대기 3~4년~최대 10년)는 해외 전력 전문 매체와 규제당국 결정 자료를 참고했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5년 2월 21일 확정)의 데이터센터 수요 상향(2036년 1.4GW→2038년 4.4GW), 제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의 송전망 보강비 약 56조5000억원은 전력거래소·산업부 공개 자료로 대조했다.
일부 수치는 발표 주체와 집계 기간이 달라 범위로 병기했다.
Faxtr verdict: VERIFIED(1차 자료 교차 확인).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