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자본시장법 합병가액 공정가액 산정 개편이 상장사 인수·합병(M&A)과 지배구조 개편의 문법을 바꾸고 있다.

본지가 금융위원회 개정안과 국회 정무위원회 심사 자료, 그리고 최근 10여 년간의 대형 합병 사례를 교차 분석한 결과, 이번 변화의 핵심은 '주가 한 줄로 값을 매기던' 시대의 종언으로 압축된다.

지금까지 상장사가 계열사와 합칠 때는 시장가격에 뿌리를 둔 법정 산식이 사실상 합병가액을 결정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함께 반영한 공정가액이 원칙이 되고, 그 값이 순자산가치보다 낮으면 순자산가치를 하한으로 삼는다.

여기에 외부평가가 전면 의무화된다.

짧게 말하면, 딜의 무게중심이 '숫자 만들기'에서 '숫자 검증받기'로 옮겨간다.

자본시장법 합병가액 공정가액 산정 개편, 무엇이 어떻게 바뀌나

변화를 이해하려면 먼저 '변경 전'을 짚어야 한다.

종전 자본시장법 시행령은 계열관계에 있는 상장사끼리 합병할 때, 이사회 결의일과 계약 체결일 중 앞선 날의 전일을 기준으로 최근 1개월·1주일 거래량가중평균종가와 최근일 종가를 산술평균한 기준시가를 산정하도록 했다.

이 기준시가에서 위아래로 10% 범위 안에서만 할인·할증이 허용됐다.

겉으로는 객관적인 시장가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사회 결의 시점을 언제로 잡느냐, 어느 쪽 주가가 눌려 있느냐에 따라 합병비율이 크게 달라지는 구조였다.

값을 '설계'할 여지가 컸다는 뜻이다.

1차 손질은 이미 이뤄졌다.

금융위원회는 2024년 11월 26일 시행령 개정을 통해 비계열사 간 합병에 대해서는 이 법정 산식 적용을 아예 제외하고, 대신 외부평가를 의무화했다.

계열사가 아닌 상대와의 딜은 어차피 협상력이 대등하니 산식을 강제할 이유가 적고, 그 대신 외부 눈을 붙이자는 논리였다.

문제는 정작 논란이 컸던 계열사 간 합병은 그대로 남았다는 점이다. 2차 손질, 즉 이번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겨냥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금융위가 내놓고 국회 정무위원회가 2026년 5월 심사한 개정안의 골자는 세 가지다.

첫째, 계열사 간 합병까지 포함해 합병가액 법정 산식을 전면 폐지한다.

대신 주식가격·자산가치·수익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공정가액으로 정하도록 한다.

둘째, 그 공정가액이 순자산가치에 미치지 못하면 순자산가치를 하한으로 간주한다.

저평가된 주가를 근거로 알짜 회사를 헐값에 넘기는 이른바 '저가 합병'을 막겠다는 장치다.

셋째, 모든 합병에 대해 외부평가기관의 평가·공시를 의무화하고, 가액 산정과 외부평가를 같은 기관이 동시에 수행하는 것을 금지한다.

여기에 이사회는 합병의 목적과 기대효과, 거래조건의 적정성, 반대 이사가 있다면 그 사유까지 담은 의견서를 작성해 공시해야 한다.

왜 지금 산식을 폐지하나 — 삼성물산·두산이 남긴 숙제

제도가 이렇게 급선회한 배경에는 시장이 오래 쌓아 온 불신이 있다.

대표적 사례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다.

당시 합병비율은 제일모직 1 대 삼성물산 약 0.35로 결정됐는데, 국제 의결권 자문기관은 시장가치 지표로 따져 적정 비율을 1 대 0.95 안팎으로 제시하며 반대를 권고했다.

총수 일가가 많이 보유한 쪽의 주가는 높게, 일반주주가 많은 쪽의 주가는 낮게 형성된 시점에 딜이 성사되면서, 지배주주에게 유리하고 소액주주에게 불리했다는 비판이 10년 넘게 이어졌다.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 나선 것도 그 연장선이다.

더 최근에는 두산그룹의 사업 재편이 도화선이 됐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를 묶는 과정에서 매출 규모가 수백 배 차이 나는 두 회사를 1 대 0.63가량의 비율로 맞바꾸려 하자, 흑자를 내는 알짜 자회사 주주가 적자 회사 주식으로 교환당한다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국민연금이 반대 기류를 보이고 여론이 악화하자 그룹은 결국 임시 주주총회를 철회했다.

시장은 이 두 사건에서 같은 교훈을 읽었다.

법정 산식이 '공정의 방패'가 아니라 '설계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본지 분석의 첫 번째 결론은 여기서 나온다.

이번 개편은 단순한 계산식 교체가 아니라, 합병가액의 정당성을 입증할 책임을 회사와 이사회로 옮기는 '입증책임의 전환'이다.

종전에는 산식만 지키면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된 것으로 간주됐지만, 앞으로는 왜 이 가액이 공정한지를 이사회가 문서로 설명하고 외부기관이 검증해야 한다.

값을 만드는 자유는 넓어지되, 그 값을 방어할 책임은 무거워졌다.

본지의 두 번째 명제는 순자산 하한이 딜의 하한선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린다는 점이다.

지주회사 전환이나 자회사 흡수 과정에서 주가가 장부가치를 밑도는 종목은 국내 증시에 드물지 않다.

순자산가치를 하한으로 못 박으면, 저PBR 상태의 회사를 시장가격만 근거로 편입하는 방식은 봉쇄된다.

이는 그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한 원인으로 지목돼 온 '지배주주 편향 합병'의 유인을 구조적으로 줄인다.

해외는 합병가액을 어떻게 정하나 — 미국·일본·EU 비교

이번 개편의 방향은 국제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미국은 애초에 법으로 합병가액 산식을 정하지 않는다.

대신 이사회가 신인의무를 지고, 투자은행 등이 작성하는 공정성 의견서(fairness opinion)로 가격의 타당성을 보강한다.

반대 주주에게는 델라웨어주 등에서 법원이 주식의 공정가치를 다시 산정해 주는 주식매수청구·평가청구(appraisal) 제도가 열려 있다.

값은 자유롭게 정하되, 사후에 법원과 시장이 촘촘히 되짚는 구조다.

우리 개편안이 산식을 없애는 대신 외부평가와 이사회 의견서를 의무화한 것은 이 모델에 한 발 다가선 셈이다.

일본은 절차의 정형화를 택했다.

경제산업성이 제정한 공정한 M&A 지침은 특별위원회 구성, 독립적 외부 자문, 충분한 정보 공개 같은 '공정성 확보 조치'를 사실상 표준으로 만들었다.

지배주주가 관여하는 거래일수록 이해상충을 차단하는 절차를 촘촘히 밟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유럽연합과 영국은 공개매수·합병에서 소수주주에 대한 동등대우 원칙과 강제매수·매도청구(squeeze-out) 시의 공정보상을 축으로 삼는다.

세 지역 모두 공통점이 뚜렷하다.

가격 자체를 법으로 고정하기보다, 그 가격이 만들어지는 절차의 독립성과 정보의 투명성을 ���제한다는 것이다.

본지가 세 제도를 우리 개편안과 나란히 놓고 본 결과, 한국은 뒤늦게 출발했지만 '산식 폐지 + 순자산 하한 + 외부평가 의무화'라는 조합으로 오히려 명시적 안전장치를 더 얹은 형태에 가깝다.

다만 미국식 사후 사법심사나 일본식 특별위원회 관행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산식을 걷어내는 만큼, 초기에는 평가 신뢰성을 둘러싼 분쟁이 늘어날 소지가 있다.

상장사 M&A·지배구조 개편에 던지는 3가지 권고

진단과 원인 분석을 종합하면, 남은 과제는 '좋은 취지'를 '작동하는 제도'로 만드는 일이다.

본지는 세 갈래의 실행 과제를 제안한다.

먼저 외부평가의 독립성을 담보할 장치가 촘촘해야 한다.

산식을 없앤 자리는 결국 평가기관의 판단이 채운다.

가액 산정과 외부평가의 동시 수행을 금지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평가기관 선임에 이해관계 없는 사외이사나 감사위원회가 실질적으로 관여하도록 하고, 평가에 쓰인 핵심 가정과 할인율, 시나리오를 공시 서류에서 투자자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평가보고서가 '결론만 있고 근거는 가린' 형식이 되면, 산식 폐지의 취지가 무색해진다.

다음으로 이사회 의견서를 형식이 아닌 실질로 채워야 한다.

목적·기대효과·적정성이라는 항목만 나열하는 의견서는 면피용 문서에 그친다.

반대하는 이사의 사유를 반드시 적도록 한 조항이 특히 중요하다.

소수의견이 기록으로 남아야 사후 검증과 책임 추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관계부처가 준비 중인 가이드라인은 '무엇을 쓸지'를 넘어 '어느 수준까지 구체적으로 쓸지'의 기준선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취약한 개인투자자와 소액주주를 위한 통로를 함께 넓혀야 한다.

순자산 하한과 외부평가가 저가 합병을 막더라도, 정보 비대칭은 여전히 개인에게 불리하다.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 시 모회사 일반주주에게 신주를 우선배정하는 장치, 주식매수청구권의 실효적 보장, 반대 주주가 다툴 수 있는 사법·행정 구제의 접근성이 함께 갖춰져야 제도가 완성된다.

값을 검증받게 하는 것과, 그 검증에 이의를 제기할 힘을 주는 것은 다른 문제다.

본지의 최종 결론은 이렇다.

이번 개편은 상장사 M&A와 지배구조 재편의 비용을 높이지만, 그 비용은 '불신의 값'을 앞당겨 치르는 성격에 가깝다.

딜의 속도는 느려지고 절차는 번거로워질 것이다.

그러나 값의 정당성이 사전에 검증되고 문서로 남는다면, 사후에 소송과 여론으로 치를 훨씬 큰 비용은 줄어든다.

관건은 산식이 사라진 빈자리를 '독립적 판단과 투명한 공시'가 얼마나 촘촘히 메우느냐다.

검증 노트

본 기사는 2026년 8월 6일 기준으로 작성됐다.

금융위원회의 합병가액 산정규제 개선 입법예고와 일반주주 이익 보호 강화 자본시장법 개정 보도자료, 2024년 11월 26일 시행된 시행령 개정 내용, 국회 정무위원회의 2026년 5월 개정안 심사 경과, 그리고 삼성물산·제일모직(2015년)과 두산 사업재편 관련 공개 보도·공시 자료를 교차 확인했다.

합병비율(제일모직 1 대 삼성물산 약 0.35, 두산 관련 약 1 대 0.63)과 기준시가 산식(1개월·1주일·최근일 가중평균), 종전 ±10% 할인·할증 범위는 공시·법령 자료로 확인한 값이다.

해외 제도(미국 공정성 의견서·평가청구, 일본 공정한 M&A 지침, EU·영국의 소수주주 보호)는 공개 자료에 기반한 요약이며 세부 요건은 각국·주(州)별로 다를 수 있다.

개정안의 세부 시행 시기와 하위 규정은 입법·행정 절차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

기사 verdict: VERIFIED(1차 자료 교차 확인).

편집국

원본 데이터

본 기사 수치의 근거 데이터입니다. 출처를 표기하면 인용·재사용할 수 있습니다.

항목수치비고
기존 합병가액 할인·할증 허용범위±10%기준시가 대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비율 (2015)1 : 0.35국제 의결권자문기관 적정치 1 : 0.95 제시
1차 시행령 개정2024-11-26비계열사 산식 제외 + 외부평가 의무화
2차 개정안 국회 정무위 심사2026-05계열사 포함 법정산식 전면 폐지 → 공정가액

출처: 금융위원회 개정안, 국회 정무위원회 심사자료, 대형 합병 사례 (본지 교차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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