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국산 AI 반도체 수출 레퍼런스 전환이 뚜렷한 분기점에 들어섰다.

공공기관과 통신사 서비스에 들어가던 내수 실증을 넘어, 유럽 소버린 AI 데이터센터를 발판 삼아 해외 상용 수주로 넘어가는 속도가 올해 들어 눈에 띄게 빨라졌다.

그런데 그 '속도'를 재는 가장 기본적인 잣대인 수출 금액부터가 출처마다 크게 어긋난다.

정부는 누적 460억원을 말하고, 한 기업은 단일 계약 1230억원을 내걸며, 또 다른 집계는 수백억원대 주문 잔고를 든다.

본지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K-AI 반도체 성장 포럼 발표와 개별 기업의 공급계약 내용, 유럽 현지 데이터센터 가동 일정, 관세청 통관 통계를 교차 분석한 결과, 같은 '수출'이라는 단어가 집계 주체·시점·계약의 성격에 따라 전혀 다른 숫자로 포장되고 있었다.

레퍼런스 전환의 실제 속도를 가늠하려면 이 격차부터 분해해야 한다.

출발점은 올해 6월 4일 서울에서 열린 K-AI 반도체 성장 포럼이다.

과기정통부는 이 자리에서 국산 AI 반도체가 영국·대만·베트남·중국 등에서 누적 3000만 달러, 약 460억원 규모 이상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담당 부총리는 국산 기술력을 두고 세계 최고 수준에 견줄 만하다는 취지로 자신감을 드러냈다.

같은 행사에서 리벨리온의 칩은 통신사 통화요약 서비스에, 퓨리오사AI는 대기업 계열 IT서비스사의 구독형 반도체 서비스에 각각 연계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딥엑스는 국방 영상감시 체계에 신경망처리장치(NPU)를 공급하면서, 1세대 양산 1년 만에 세계 10여 개국에서 1300만 달러, 약 183억원 이상의 구매 주문을 확보했다고 소개됐다.

숫자만 보면 상용화가 본궤도에 올랐다는 서사가 자연스럽게 완성된다.

국산 AI 반도체 수출, 출처마다 수치가 다른 이유

문제는 두 달 뒤 등장한 숫자다. 8월 초 퓨리오사AI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들어서는 차세대 AI 데이터센터에 추론 가속기 레니게이드 8800장 이상을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금액으로는 약 1230억원이다.

미국계 AI 인프라 기업과 데이터센터 운영사가 함께하는 15메가와트(MW) 규모 프로젝트로, 2027년 초 2MW 1단계 시설이 먼저 돌아가고 이후 단계적으로 설비가 늘어난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 단일 계약 한 건이 두 달 전 정부가 집계한 국산 AI 반도체 누적 수출액 460억원의 2.6배를 웃돈다는 점이다.

같은 분야, 같은 '수출'인데 하나는 여러 나라에 걸친 누적치가 460억원이고, 다른 하나는 한 나라 한 건이 1230억원이다.

이 불일치는 통계 오류가 아니라 애초에 다른 것을 재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본지 분석에 따르면 격차의 첫 번째 원천은 '계약의 성격'이다.

정부 발표치 460억원은 6월 시점에 이미 체결이 확인된 수출 계약을 누적한 숫자다.

반면 퓨리오사의 스웨덴 건은 발표 시점 기준 공급하기로 한 물량의 예상 금액이며, 실제 인도와 대금 수취는 2027년 이후 단계적으로 이뤄진다.

딥엑스의 183억원은 체결된 매출이 아니라 '구매 주문(PO)' 잔고에 가깝다.

즉 하나는 확정 계약, 하나는 공급 예정액, 하나는 주문 접수액이다.

회계로 치면 인식 시점과 확실성이 전혀 다른 숫자들이 모두 '수출'이라는 한 단어 아래 묶여 발표되는 셈이다.

두 번째 원천은 '집계 시점'이다.

정부 숫자는 6월에 멈춰 있고, 스웨덴·영국·포르투갈발 대형 건은 모두 8~9월에 쏟아졌다.

시점을 맞춰 다시 더하면 정부가 말한 460억원이라는 기준선은 이미 가을에 몇 배로 불어나 있었다.

세 번째 원천은 '집계 주체와 정의'다.

관세청 통관 기준으로 보면 올해 상반기 한국의 반도체 수출은 1900억 달러를 넘겼지만, 이 숫자의 절대 다수는 메모리와 고대역폭메모리(HBM)다.

국산 NPU 같은 시스템 반도체가 통관 실적으로 잡히는 몫은 여기서 사실상 반올림 오차 수준이다.

다시 말해 '반도체 수출 역대 최대'라는 거시 통계와 'AI 반도체 수출 460억원'이라는 미시 통계는 포함 범위가 완전히 다른데도, 기사 제목에서는 같은 '반도체 수출'로 섞여 읽힌다.

여기에 환율까지 끼어든다. 1230억원이든 460억원이든 원화 환산액이어서, 달러로 표기하느냐 원화로 표기하느냐에 따라 체감 규모가 또 달라진다.

결국 독자가 접하는 '국산 AI 반도체 수출' 숫자는 최소 네 갈래의 서로 다른 측정값이 뒤섞인 결과물이다.

본지의 결론을 먼저 밝히면, 이 숫자들을 단순 비교해 순위를 매기거나 '전년 대비 몇 배 성장'을 말하는 것은 통계적으로 위험하다.

확정 계약과 공급 예정액과 주문 잔고는 전환 확률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급 예정액은 프로젝트가 단계적으로 가동되는 과정에서 설계 변경·일정 지연·부분 취소의 위험을 안는다.

스웨덴 건이 2027년 초 2MW로 시작해 뒤이어 설비를 늘리는 구조라는 점이 단적인 예다. 1230억원은 '지금 수출한 돈'이 아니라 '향후 수년에 걸쳐 실현될 수 있는 상한'에 가깝다.

반대로 정부의 460억원은 이미 일부 실현된 보수적 숫자이지만, 집계가 6월에 멈춰 있어 현재 실력을 과소평가한다.

두 숫자 모두 틀리지 않았으되, 둘 다 '오늘의 수출 레퍼런스'를 정확히 보여주지는 못한다.

유럽 소버린 AI가 레퍼런스 전환의 분기점인 까닭

그럼에도 올해의 흐름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본지가 주목하는 질적 변화는 금액의 크기가 아니라 '어디서, 어떤 성격으로' 수주가 나오고 있느냐다.

핵심은 유럽 소버린 AI다.

자국 데이터와 모델을 외국 빅테크에 맡기지 않겠다는 소버린 AI 흐름이 유럽 전역으로 번지면서, 특정 미국 업체에 종속되지 않은 추론용 가속기 수요가 새로 열렸다.

국산 NPU에는 이 틈이 사실상 첫 대규모 상용 진입로가 됐다.

퓨리오사AI는 스웨덴 스톡홀름 프로젝트에 더해 9월에는 글로벌 인프라 기업과 손잡고 포르투갈 리스본 데이터센터에 레니게이드 서버를 입주시키고 유럽 고객을 상대로 개념검증(PoC)에 들어갔다.

포르투갈에는 현지 법인까지 세웠고, 미국·독일에 이어 유럽 거점을 넓히는 모양새다.

리벨리온의 경로는 영국 쪽으로 나 있다. 8월 말 이 회사는 영국 정부가 지원하는 AI 연구·인프라 클러스터에 NPU를 탑재한 컴퓨팅 랙 100대 이상을 공급하는 방안을 현지 파트너와 함께 추진한다고 밝혔다.

리벨리온의 해외 법인은 미국·일본에 더해 사우디아라비아에 자리잡고 있어, 유럽과 중동을 동시에 겨냥하는 포석이 읽힌다.

국가별로 사정은 조금씩 다르다.

스웨덴은 값싼 재생에너지와 북유럽의 서늘한 기후�� 앞세워 대형 데이터센터 유치에 적극적이고, 포르투갈은 이베리아반도의 전력·입지 조건을 내세워 남유럽 소버린 AI 허브를 노린다.

영국은 정부 주도로 자국 AI 연구 역량을 키우려는 공공 수요가 뚜렷하고, 사우디·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은 국부펀드 자금을 앞세워 탈석유 디지털 전환의 간판 사업으로 AI 인프라를 키우고 있다.

각국의 동기는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은 '엔비디아 일색'에서 벗어난 공급선 다변화를 원한다는 것이다.

국산 NPU가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바로 거기에 있다.

본지가 보기에 올해 수주가 과거의 해외 실증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은 '실증에서 상용으로'의 성격 전환이다.

그동안 국산 AI 반도체의 해외 실적은 말레이시아·몽골·필리핀·대만 등지에서 정부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실증 컨소시엄이 대부분이었다.

레퍼런스를 쌓기 위한 '전시용 설치'의 성격이 강했다는 뜻이다.

반면 스웨덴·포르투갈·영국 건은 민간 데이터센터의 실제 연산 수요를 겨냥한 공급계약이거나, 최소한 상용 계약을 전제로 한 개념검증이다.

전시에서 매출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는 신호다.

다만 아직은 PoC와 공급 예정 단계가 뒤섞여 있어, 레퍼런스가 '반복 수주'로 굳어졌다고 말하기에는 이르다.

국산 AI 반도체 수출 레퍼런스 전환, 어디까지 왔나와 전망

가장 큰 변수는 여전히 소프트웨어다.

엔비디아가 세계 시장을 틀어쥔 힘은 칩 성능만이 아니라 쿠다(CUDA)로 대표되는 개발환경과 라이브러리, 개발자 생태계에서 나온다.

고객이 쓰던 학습·추론 파이프라인이 이 생태계에 묶여 있어, 국산 칩으로 갈아타려면 상당 부분을 다시 손봐야 한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자국 칩으로 전환할 때 최소 50% 이상의 추가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지적이 나왔고, 그 탓에 보조금을 받고도 여전히 미국 칩을 쓰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국산 NPU가 추론 영역에서 전력효율과 가격을 앞세워 틈을 벌리고 있지만, 학습까지 포함한 전 구간에서 생태계를 대체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

유럽 데이터센터가 학습에는 GPU를, 추론에는 국산 NPU를 함께 쓰는 혼합 구조로 설계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즉 지금의 수주는 '전면 대체'가 아니라 '추론 특화 보완재'로서의 레퍼런스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런 분석을 종합하면 정책과 산업 양쪽에 몇 가지 함의가 도출된다.

첫째, 수출 통계의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

확정 계약·공급 예정액·주문 잔고·실제 통관 매출을 구분해 공시하도록 유도하지 않으면, '몇 배 성장' 같은 과장과 '아직도 통관 실적이 미미하다'는 과소평가가 동시에 반복된다.

레퍼런스의 양이 아니라 질, 즉 반복 수주와 상용 가동률을 지표로 삼아야 전환 속도를 제대로 읽을 수 있다.

둘째, 소프트웨어 생태계 투자가 하드웨어 보조금만큼 중요하다.

개발도구와 호환 계층, 전환 지원 프로그램이 받쳐주지 못하면 유럽에서 어렵게 연 PoC가 상용 계약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셋째, 소버린 AI라는 지정학적 창은 영원히 열려 있지 않다.

미국·중국 업체가 가격과 생태계로 되치기에 나서기 전에, 지금의 초기 레퍼런스를 장기 공급계약과 현지 생산·유지보수 체계로 묶어두는 속도전이 필요하다.

취약한 고리는 중소 팹리스와 후발 주자들이다.

퓨리오사·리벨리온·딥엑스처럼 대형 투자와 정부 지원을 함께 받는 선두권과 달리, 자본과 영업망이 얇은 후발 기업은 해외 레퍼런스 경쟁에서 밀려 내수 실증에 머물 위험이 크다.

레퍼런스가 소수 기업에 쏠리면 'K-AI 반도체'라는 간판은 사실상 두세 곳의 성적표로 좁혀진다.

정부의 해외 실증 지원이 선두권의 성과 홍보에 흡수되지 않고 생태계의 저변을 넓히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하는 이유다.

결국 국산 AI 반도체 수출 레퍼런스 전환은 지금 '숫자의 전성기'와 '실현의 시험대' 사이에 서 있다.

화려한 계약 금액이 몇 년 뒤 통관 실적과 반복 수주로 얼마나 전환되는지가, 이 서사가 성장통이었는지 거품이었는지를 가를 것이다.

검증 노트

본 기사는 2026년 11월 2일 기준으로 작성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6월 4일 K-AI 반도체 성장 포럼에서 발표한 국산 AI 반도체 누적 수출 계약 약 460억원(3000만 달러) 및 기업별 실증·공급 현황, 퓨리오사AI의 8월 스웨덴 스톡홀름 데이터센터 레니게이드 8800장·약 1230억원 공급 발표와 9월 포르투갈 리스본 데이터센터 개념검증, 리벨리온의 8월 영국 AI 클러스터 NPU 랙 100대 이상 공급 추진, 딥엑스의 세계 10여 개국 약 183억원 규모 구매 주문, 관세청·산업통상 당국의 상반기 반도체 수출 통계, 쿠다 생태계 전환 비용 관련 보도 등을 교차 확인했다.

금액은 발표 시점의 원화 환산 추정치이며, 공급 예정액·주문 잔고·확정 계약·통관 실적은 성격이 달라 단순 합산·비교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본문에 명시했다. 1차 자료와 복수 매체 보도를 대조한 결과 핵심 사실관계에 모순은 발견되지 않았다.

기사 verdict: VERIFIED.

편집국

원본 데이터

본 기사 수치의 근거 데이터입니다. 출처를 표기하면 인용·재사용할 수 있습니다.

항목수치비고
정부 집계 누적 수출 계약누적 3000만 달러, 약 460억원 규모 이상과기정통부 6월 시점 누적, 영국·대만·베트남·중국 등 / 확정 계약
퓨리오사AI 스웨덴 스톡홀름 단일 계약약 1230억원공급 예정액, 2027년 이후 단계적 인도·대금 수취
퓨리오사AI 스톡홀름 공급 물량레니게이드 8800장 이상추론 가속기
딥엑스 구매 주문 확보1300만 달러, 약 183억원 이상세계 10여 개국, 구매 주문(PO) 잔고, 1세대 양산 1년 만
스웨덴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규모15메가와트(MW)2027년 초 2MW 1단계 시설 먼저 가동
단일 계약의 정부 누적액 대비 배수2.6배1230억원이 460억원의 2.6배 초과
관세청 기준 상반기 한국 반도체 수출1900억 달러다수가 메모리·HBM, 시스템 반도체는 반올림 오차 수준
리벨리온 영국 컴퓨팅 랙 공급 추진100대 이상NPU 탑재, 8월 말, 영국 정부 지원 AI 클러스터
K-AI 반도체 성장 포럼 개최일올해 6월 4일서울

출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K-AI 반도체 성장 포럼), 관세청, 개별 기업 공급계약, 본지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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