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파리 15구에서 떡볶이와 김밥을 파는 한식당 주인을 떠올려 보자.
손님의 절반은 한국 드라마를 보고 찾아온 현지 젊은이다.
지금까지 이 집은 '정부가 지정한 한식당'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에서 셰프와 교수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심사하는 '해외 우수 한식당'은 뉴욕·파리·도쿄의 고급식당 몇 곳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 문턱이 낮아진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0월 20일 '해외 한식당 경쟁력 강화 방안'을 내놓고, 지금까지 6개 도시 23곳에 그친 해외 우수 한식당을 앞으로 5년 안에 1,000곳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심사는 국내 전문가를 보내는 대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해외지사 같은 현지 기관이 맡는다.
등급은 '추천'과 '우수' 둘로 나누고, 업력 요건은 3년에서 1년으로 풀며, 한 번 지정하면 3년마다 갱신하도록 했다.
숫자만 보면 야심 차다. 23곳에서 1,000곳이면 40배가 넘는다.
원래 정부가 내걸었던 목표는 2030년까지 100곳이었는데, 이번에 열 배로 올려 잡았다.
같은 일을 먼저 해 본 나라들을 나란히 놓으면, 제도의 생김새보다 그 제도가 딛고 선 토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태국은 상무부가 20년에 걸쳐 2,000곳을 모았다
한식당 제도와 가장 닮은 것이 태국의 '타이 셀렉트(Thai SELECT)'다.
운영 주체가 상무부 산하 국제통상진흥국(DITP)이라는 점이 먼저 눈에 띈다.
음식 문화 부처가 아니라 무역을 키우는 부처가 쥐고 있다.
태국 식재료와 가공식품을 세계에 파는 일과 식당 인증이 한 몸으로 묶여 있다는 뜻이다.
요건은 구체적이다.
영업 6개월 이상, 좌석 10석 이상, 메뉴의 70% 이상이 타이 요리여야 하고, 주방장은 타이인이거나 비(非)타이인이라면 2년 이상의 타이 요리 경력을 증명해야 한다.
유효기간은 3년. 2025년 4월에는 '오키드 스타' 기준으로 개편해 별 1~3개와 캐주얼 등급으로 나누고, 맛·플레이팅, 분위기와 경험, 위생, 셰프 전문성, 식재료 품질 다섯 항목으로 평가한다.
규모는 전 세계 76개국 약 2,163곳.
새 기준으로 다시 심사한 식당만 쳐도 2026년 5월까지 70개국 1,419곳이다.
이 숫자가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다.
태국은 2000년대 초 '타이 키친 투 더 월드' 전략 이후 20여 년간 식당 수 자체를 국가가 키워 왔고, 그만큼 현지에 타이 요리사가 두텁게 쌓였다.
'주방장이 타이인'이라는 조건이 성립하는 것도 그 바탕 위에서다.
이탈리아 인증의 뒤에는 해외 상공회의소 망이 있다
이탈리아의 '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Ospitalità Italiana·세계 속 이탈리아 식당)'는 또 다른 토대를 보여준다. 1997년 이탈리아 상공회의소연합(우니온카메레)과 국립관광연구원(ISNART)이 국내용으로 만들었고, 2009년 해외로 넓혔다.
심사를 실제로 돌리는 손은 세계 각지에 퍼진 이탈리아 해외 상공회의소망이다. 100년 넘게 이민자 상인들이 쌓아 온 민관 네트워크가 이미 있었기에, 정부가 직원을 비행기에 태워 보낼 필요가 없었다.
요건에는 이탈리아만의 제도가 녹아 있다.
이탈리아어가 되는 직원 한 명 이상, 이탈리아 요리 교육·경력을 갖춘 셰프, 메뉴의 50% 이상이 이탈리아 전통 요리, 와인 리스트의 30% 이상이 이탈리아 DOP·IGP(원산지·지리적 표시) 와인이어야 한다.
유효기간은 1년으로 매년 갱신한다.
'진짜 이탈리아 식재료'를 규정에 못 박을 수 있는 건, 뒤에 원산지 표시 제도가 탄탄히 서 있기 때문이다.
해외 인증 식당은 2,000곳을 넘는다.

일본은 식당이 아니라 '사람'을 인증한다
일본은 길을 아예 바꿨다.
농림수산성이 2016년 4월 '해외 일식 조리사 기능 인정 지침'을 만들었는데, 인증 대상이 식당이 아니라 요리사 개인이다.
실제 인정은 정부가 아니라 민간기관이 자율로 한다.
등급은 금·은·동 세 단계.
금은 일본 내 2년가량 경력, 은은 1년가량 경력이나 조리학교 졸업, 동은 일본 경력 없이 단기과정만 마쳐도 받을 수 있다. 2026년 3월 31일 기준 3,976명이 인정받았다.
금 28명, 은 1,337명, 동 2,611명이다.
왜 식당이 아니라 사람일까.
일본도 한때 해외의 '진짜 일식당'을 정부가 인증하려 했다. 2006~2007년의 일이다.
그런데 외국에 있는 남의 가게를 두고 진위를 가리겠다는 발상은 '스시 폴리스'라는 조롱과 음식 국수주의라는 비판을 불렀고, 계획은 조용히 접혔다.
그 뒤 일본은 인증을 권고와 지도로 바꾸고, 식당의 진위 대신 요리사의 기능을 자율 인증하는 쪽으로 물러섰다.
한국이 해외 식당 자체를 정부 이름으로 지정해 1,000곳까지 늘리려는 지금, 되짚어 둘 만한 전례다.
한국은 23곳에서 1,000곳으로, 토대부터 묻게 된다
한국의 기존 제도는 2022년에 시작했다. 27개 항목을 놓고 국내 전문가가 현지에 가서 심사하는 방식이라, 3년 동안 뉴욕·파리·도쿄·런던·로스앤젤레스·싱가포르 6개 도시 23곳에 머물렀다.
이번 개편은 바로 그 병목을 푸는 데서 출발한다.
전문가 파견을 aT 해외지사 등 현지 기관으로 넘기고, 평가도 한식 메뉴 비중·조리 전문성 같은 정량지표 중심으로 바꾼다.
방향 자체는 태국·이탈리아가 이미 쓰는 현지 심사 방식과 같은 결이다.

남는 건 토대다. aT 해외지사는 수가 제한적인데, 1,000곳을 심사하고 3년마다 재심사·갱신까지 감당할 현지 인력이 확보되는지가 첫 관문이다.
다음은 국산 식재료 요건이다.
'우수 등급'은 국산 식재료 활용을 추가 조건으로 걸고 사용 실적을 지정·지원과 연계한다.
수출과 식당 인증을 묶는다는 점에서 태국의 무역 부처 논리와 닮았다.
다만 태국은 '타이 요리·타이 셰프'를 요구할 뿐 수입 식재료를 강제하지 않고, 이탈리아는 DOP·IGP 와인을 요구하되 현지 조달이 가능한 품목이 많다.
한국은 '한국산' 식재료 사용을 평가에 직접 건다.
현지에서 한국산을 제때, 값을 맞춰 들여올 수 있느냐가 우수 등급의 실질을 가른다.
식당 모수도 다르다.
태국과 이탈리아는 수만에서 수십만 곳에 이르는 식당 풀 위에서 2,000곳을 골랐다.
이탈리아 식당은 전 세계 60만 곳이라는 집계도 있다.
한국 한식당의 해외 기반은 그보다 얇다. 1,000곳을 '우수'로 추릴 만큼 모수가 받쳐 주느냐는, 한식 인지도가 2023년 60.0%에서 2025년 68.6%로 오른 지금도 따로 확인해야 할 문제다.
한국안이 앞선 대목도 있다
한국 설계가 다른 나라보다 나은 지점도 분명하다.
일본이 식당과 사람을 따로 다루는 데 비해, 한국은 모바일 '글로벌 한식당 아카데미' 이수 실적을 지정·갱신·등급 상향과 연계해 식당 인증과 사람 교육을 한 줄로 꿰었다.
교육에서 지정으로, 다시 '수라학교' 수료자와의 인력 매칭까지 설계가 끊기지 않는다.
처음부터 고급식당만이 아니라 김밥·떡볶이 같은 대중식당을 포괄 대상으로 못 박은 것도 의미가 있다.
태국도 캐주얼, 이탈리아도 피자·젤라토를 넣지만, 한국은 개편의 출발점에서부터 대중성을 명시했다.
정경석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관은 "K-푸드의 세계적인 인기가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해외 한식당의 경쟁력 확보가 중요하다"고 했다.
정작 비교의 핵심인 '숫자'는 아직 비어 있다
그런데 비교의 한가운데 있어야 할 기준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한식 메뉴를 몇 % 이상 내야 추천·우수인지, 국산 식재료를 얼마나 써야 우수인지 같은 문턱 숫자다.
태국의 70%, 이탈리아의 50%처럼 못 박힌 선이 한국에는 아직 없다.
다국어 '한식 디지털 라이브러리'는 2027년 하반기 구축, '수라학교'는 내년부터다.
당장은 10월 23~25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식대축제가 열리고, 24일이 제1회 한식의 날이다.
현지 심사 인력, 국산 식재료 조달 경로, 그리고 등급을 가르는 구체 숫자.
이 셋이 서는 날 1,000곳은 간판이 아니라 기준이 된다.
정부가 세부 지정기준을 언제, 어떤 수치로 공개할지가 다음에 답해야 할 물음이다.
취재에 참고한 자료
한국 수치는 농림축산식품부 보도자료 '세계인이 믿고 찾는 해외 한식당 만든다'(2026년 10월 20일)와 이투데이 보도(기존 23곳·6개 도시, 2022년 시작, 종전 목표 2030년 100곳)를 옮겼다.
태국은 상무부 국제통상진흥국(DITP)과 thaiselect.com, 방콕포스트 보도로 운영 주체와 요건(영업 6개월·좌석 10석·메뉴 70%·타이 셰프(비타이인은 타이 요리 2년 경력 증명)·유효 3년), 76개국 약 2,163곳을 확인했고, 별 등급 개편과 다섯 평가항목은 더 네이션(2025년 4월 30일)에서 확인했다.
일본은 농림수산성 '해외 일식 조리사 기능 인정' 페이지에서 2026년 3월 31일 기준 3,976명과 금·은·동 요건을, '스시 폴리스'의 2006~2007년 철회 경위는 재팬타임스 등에서 확인했다.
이탈리아는 ISNART의 오스피탈리타 이탈리아나 자료와 공식 disciplinare로 1997년 설립·2009년 해외 확대, 메뉴 50%·와인 30% DOP/IGP 요건과 해외 2,000곳 이상을 확인했고, 유효기간은 인증기관(RINA)·운영 상공회의소 자료로 '매년 갱신(1년)'임을 확인했다.
나라마다 인증 단위가 다른 점에 유의해야 한다.
한국·태국·이탈리아는 식당을, 일본은 요리사 개인을 인증하므로 규모 수치를 1대1로 비교할 수 없다.
태국·이탈리아의 식당 수는 발표 시점이 달라 근사치다.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