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원주 외곽의 한 축사.

노후한 지붕 위로 작업자가 올라선다.

슬레이트와 패널은 사람 무게를 버틸 듯 보여도, 밟는 순간 꺼져 사람이 떨어지는 일이 매년 되풀이된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유독 '지붕·달비계·벌목' 사고를 콕 집어 전국 지방관서가 함께 분석한다고 밝힌 이유다.

떨어져 숨지는 노동자가 아직도 가장 많다.

한국이 이 죽음을 줄이겠다며 꺼낸 카드는 분명하다.

사고가 나면 사장을 감옥에 보낼 수 있게 한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 의무를 소홀히 해 일하던 사람이 숨지면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매길 수 있도록 했다. 2024년 1월 27일부터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적용 대상이 됐다.

10월 20일 노동부가 내놓은 3분기 누적 통계를 보면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는 366명(342건)이다. 1년 전 같은 기간 457명보다 91명(19.9%) 줄어, 2022년 집계를 시작한 이후 3분기 기준으로 가장 낮다.

정부는 "작년부터 이어진 강력한 산재 근절 의지"가 현장을 바꿨다고 했다.

그렇다면 사장을 처벌하는 이 방식은, 산재 사망이 적은 나라들이 실제로 딛고 선 토대와 같은 것일까.

사장을 감옥에 보낼 수 있는 한국, 그 길을 일부러 닫은 영국

산재 사망이 가장 적은 나라로 꼽히는 영국부터 보자.

영국의 '법인 과실치사법(2007)'은 조직을 처벌한다.

유죄가 인정되면 회사에 상한 없는 벌금이 떨어진다.

그런데 이 법에는 임원 개인을 감옥에 보내는 조항이 없다.

안전보건청(HSE)과 검찰의 설명이 그렇다.

개인을 가두려면 일반 형법의 '중과실 치사'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따로 기소해야 한다.

영국이 개인 처벌 조항을 뺀 건 빠뜨린 게 아니라 설계였다.

조직의 구조적 실패를 묻되, 책임을 한 사람에게 몰아 희생양을 만들지 않는 쪽을 택했다.

대신 영국이 오래 쌓아온 토대는 따로 있다. 1974년 산업안전보건법 이래 독립 규제기관인 안전보건청이 현장을 감독하고, 위반이 적발되면 점검에 든 비용까지 기업에 청구한다. 2025/26년 영국의 산재 사고사망은 126명.

근로자 10만명당 0.37명, 1만명당으로 바꾸면 0.037명 수준이다.

독일의 안전은 '벌'이 아니라 산재보험조합이라는 토대에서 나온다

독일에는 경영책임자를 겨냥한 중대재해법이 없다.

그런데도 2024년 업무상 사고 사망은 345명으로 역대 최저였다.

비결은 처벌이 아니라 제도의 뼈대에 있다.

독일은 업종별 '산재보험조합(베루프스게노센샤프트)'이 예방·보상·재활을 한 손에 쥔다.

사업주가 낸 보험료로 운영되고, 사고가 잦은 사업장은 이듬해 보험료가 오른다.

같은 조합이 현장 점검과 기술 기준, 교육까지 맡는다.

안전을 지키면 돈이 덜 나가는 구조가 법의 겁박보다 먼저 작동하는 셈이다.

한국은 예방(노동부·안전보건공단)과 보상(근로복지공단)이 기관으로 나뉘어 있어, 이 '한 몸' 구조와는 출발점이 다르다.

'역대 최저'라는 말은 네 나라가 함께 쓰고 있다

공교롭게도 올해 네 나라의 발표문에는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역대 최저.

일본은 2024년 노동재해 사망이 746명으로 가장 적었고, 영국은 2025/26년 126명으로 팬데믹 기간을 빼면 최저였다.

독일 345명도, 한국의 366명(3분기 누적)도 마찬가지다.

세계가 완만하게 같은 방향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뜻이다.

남은 문제는 출발선의 높이다.

한국의 사고사망만인율은 2024년 0.39(1만명당 0.39명)로, 정부가 2030년 목표로 삼은 OECD 평균 0.29를 아직 웃돈다.

영국을 같은 자로 환산하면 0.037. 열 배 가까운 격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숫자가 '역대 최저'여도 한국은 여전히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중이다.

비교 자체가 까다롭다는 점도 짚어야 한다.

한국은 사망 통계가 여러 개다.

노동부가 이날 발표한 '재해조사 대상' 366명과, 산재보험 유족급여 승인 기준 사망자(2024년 827명)는 집계 범위가 서로 다르다.

나라마다 통근 중 사고나 도로 교통사고, 자영업자를 넣고 빼는 방식이 제각각이어서, 절대 숫자를 나란히 놓는 순간 함정이 생긴다.

그런데 호주는 한국이 간 길을 뒤따라오고 있다

사장을 감옥에 보내는 방식이 한국만의 무리수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호주가 그 반례다.

호주는 2024년 들어 사실상 모든 주가 '산업적 살인(industrial manslaughter)' 죄를 새로 들였다.

뉴사우스웨일스주는 개인에게 최대 25년 징역, 노던준주는 최고 종신형까지 둔다. 2024년 7월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9월 뉴사우스웨일스, 10월 태즈메이니아가 잇따라 시행에 들어갔다.

경영 최고책임자에게 형사책임을 지우는 흐름은 한국이 외국 틀을 베낀 것이라기보다, 몇몇 나라가 비슷한 시기에 같은 고민을 하는 세계적 움직임에 가깝다.

오히려 2022년 시행된 한국 중대재해법은 이 흐름에서 이른 편에 속한다.

책임 소재를 조직이 아니라 사람에게 분명히 물었다는 점은, 조직 과실에 머문 영국식 모델이 갖지 못한 한국안의 강점이기도 하다.

남은 숫자는 '1만명당 0.39명'과 50인 미만 현장

그래도 질문은 남는다.

처벌의 칼은 세웠는데, 영국의 감독 밀도나 독일의 보험-예방 일체 구조 같은 '다른 토대'는 한국에 충분히 깔려 있는가.

이번 통계에서도 사망자 366명 가운데 223명이 50인(억) 미만 소규모 현장에서 나왔다.

법 적용이 가장 늦게 확대된 바로 그 영역이다.

정부는 지방정부·민간과 협업해 소규모 사업장에 기술·재정을 지원하고(2026년 143억원), 전문가 1천명을 '안전한 일터 지킴이'로 현장에 보내겠다고 했다.

대형 인명피해로 번지는 화재·폭발은 11월에 집중점검한다.

제조업 사망이 되레 늘어난 올해의 그늘, 화재·폭발로 숨진 사람이 1년 새 46.2% 증가한 현실을 겨냥한 대응이다.

관건은 연말까지 이 감소세가 꺾이지 않고 '0.39'라는 출발선을 실제로 끌어내리느냐다.

정부가 답해야 할 질문도 거기에 있다.

사장을 감옥에 보낼 수 있게 된 다음, 작은 현장의 지붕과 달비계를 누가 어떤 밀도로 지켜볼 것인가.

취재에 참고한 자료

고용노동부 '2026년 3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 보도자료(2026년 10월 20일)에서 한국의 사고사망자 366명과 업종·규모·유형별 수치를 옮겼다.

사고사망만인율 0.39와 827명은 고용노동부 '2024년 유족급여 승인 기준 사고사망 현황' 보도자료(2025년 4월 30일)와 2030년 OECD 평균(0.29) 목표를 담은 정책브리핑에서 확인했다.

영국은 안전보건청(HSE)의 연간 사망통계 발표(2026년 7월 1일, 2025/26년 126명·10만명당 0.37명)와 법인 과실치사법에 대한 검찰·HSE 안내에서, 일본은 후생노동성의 2024년(令和6년) 노동재해 발생상황(2025년 5월 30일, 746명)에서, 독일은 독일 산재보험(DGUV)의 사망 재해 통계(2024년 345명)에서 가져왔다.

호주 수치는 각 주 안전보건당국 자료로 확인했다.

다만 나라마다 통근·도로 사고와 자영업자 포함 여부, 집계 기관과 기준이 달라, 절대 사망자 수와 사망률의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