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이주비 대출규제와 공사비 급등發 정비사업 미착공이 서울 재건축·재개발 현장의 공급 시계를 통째로 멈춰 세우고 있다.
철거를 끝내고도 2년째 첫 삽을 못 뜬 빈 땅, 조합원에게 날아든 10억원대 분담금 통지서, 3.3㎡당 1500만원을 넘어선 공사비.
본지가 서울시 도시정비사업 통계와 국토교통부·국회 제출 자료, 건설업계 공사비 집계를 교차 분석한 결과, 같은 '미착공'이라는 한 단어를 두고 출처마다 전혀 다른 숫자가 떠다니고 있었다.
누구는 착공률이 8%대라 하고, 누구는 12%대라 하며, 또 다른 쪽은 조합 설립 10년이 지난 현장의 16%가 멈춰 있다고 말한다.
이 숫자들의 간극을 벌리는 것이 바로 공급절벽의 '시차 효과'다.
정비사업 미착공, 왜 출처마다 숫자가 다를까
먼저 숫자부터 정리해야 한다.
같은 서울, 같은 시점에 가까운 자료인데도 착공률은 제각각이다.
한 집계는 서울 시내 재건축·재개발 현장 472곳 가운데 착공 단계를 넘어선 곳이 60곳, 즉 12.7%라고 말한다.
반면 500가구 이상 공급이 예정된 굵직한 사업지 279곳만 따로 떼어 보면 실제 착공에 들어선 곳은 24곳, 8.6%에 불과하다.
공급 예정 물량 기준으로는 8.4%다.
여기에 더해, 조합 설립 후 10년이 넘도록 공사에 손도 못 댄 현장이 49곳으로, 설립 시점이 확인된 전체 사업장의 16%에 이른다는 집계도 있다.
숫자만 보면 혼란스럽다.
그러나 이 간극은 통계 오류가 아니라 '무엇을 세느냐'의 차이다.
첫째는 분모가 다르다. 472곳에는 이제 막 구역 지정을 받은 초기 단계 현장까지 섞여 있어 분모가 크고, 그만큼 '착공을 넘어선 비율'은 상대적으로 높게 잡힌다.
반대로 500가구 이상으로 범위를 좁히면 분모는 작아지지만 그 안에는 사업성이 떨어지거나 공사비 협상이 길어지는 대형 단지가 몰려 있어 착공률이 뚝 떨어진다.
둘째는 시점이 다르다.
한쪽은 올해 봄, 한쪽은 3월 말, 한쪽은 여름 집계다.
몇 달 사이에도 분담금 통지와 금융 조달 여부가 바뀌니 숫자가 춤춘다.
셋째가 가장 중요하다.
'착공'의 정의 자체가 다르다.
철거 완료를 착공 직전으로 볼지, 착공신고필증 발급을 기준으로 볼지, 아니면 실제로 포클레인이 땅을 파기 시작한 날을 셀지에 따라 같은 현장이 '미착공'이 되기도, '착공'이 되기도 한다.
본지가 주목한 대목이 여기다.
표준계약서는 철거를 해체 허가·신고일로부터 15일 안에 시작해 4개월 안에 마치도록, 또 착공신고필증을 받으면 15일 안에 실제 공사를 시작하도록 못 박고 있다.
그런데 정작 '철거를 끝낸 뒤 착공신고필증을 받기까지'의 기간에는 아무런 상한이 없다.
바로 이 공백 구간에서 수많은 현장이 멈춰 선다.
집은 이미 비웠는데 공사는 1~2년 뒤로 밀린다.
서울에서 이주를 마치고도 착공하지 못한 사업장은 27곳, 1만1054가구에 달하고, 이 중 상당수는 착공 목표 연도가 2027년 이후로 잡혀 있다.
이주 후 미착공 물량의 55.6%가 당장 올해가 아닌 내년 이후를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주비 대출규제, 무엇이 바뀌었나 — 변경 전과 후
미착공의 병목을 만든 두 축 가운데 하나가 이주비 대출규제다.
여기서는 최근 1년 사이의 제도 변화를 '전'과 '후'로 또렷이 끊어 봐야 한다.
변경 전,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관리를 이유로 이주비 대출을 사실상 일반 주택담보대출과 같은 칸에 넣어 다뤘다.
수도권에서 담보인정비율(LTV) 40%, 그것도 최대 6억원 한도가 적용됐고, 담보가치는 '정비사업 종료 전 조합원이 보유한 낡은 토지·건물 가치'로 산정됐다.
재건축 대상이 된 노후 주택의 장부가치가 낮으니, LTV 40%를 곱해도 손에 쥐는 이주비는 턱없이 부족했다. 1주택 조합원은 최대 6억원 안에서만 빌릴 수 있었고, 1+1 분양을 포함한 다주택 조합원은 아예 대상에서 빠졌다.
집을 비우라는데 비울 돈이 없는 구조였다.
변경 후는 이렇다.
정부는 8·13 대책을 통해 이주비 대출의 담보가치 산정 기준을 '정비사업이 끝난 뒤 들어설 신축주택의 가치 추산액'으로 바꿨다.
LTV 40%라는 비율 자체는 그대로 두되, 곱해지는 담보가치의 밑동을 노후 주택이 아니라 미래의 새 아파트로 올려 잡은 것이다.
이 개선안은 지난 8월 3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여기에 주택금융공사가 보증하는 추가 이주비 대출 보증 상품을 신설해 2027년 1월 시행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주택공급 관련 금융지원 규모도 26조3000억원에서 '47조8000억원+α'로 대폭 늘렸고, 2027년에는 33조원을 집중 투입해 신속 착공을 뒷받침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서울시가 요구해 온 'LTV 40%→70%' 상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준은 신축 가치로 올렸지만, 비율의 벽은 그대로 남은 셈이다.
본지의 판단으로는, 이 변경이 모든 현장을 구제하지는 못한다.
신축 추산가치를 담보로 삼아도 강남권처럼 미래 가치가 높은 곳은 숨통이 트이지만, 사업성이 낮은 강북·외곽 현장은 여전히 40% 벽에 걸린다.
제도의 수혜가 현장별로 갈리면, 공급절벽은 '전면적 정체'에서 '선별적 정체'로 모양만 바뀔 수 있다.
재건축 공사비 평당 1500만원, 평균과 최고의 격차
또 다른 축은 공사비다.
여기서도 '같은 공사비'를 두고 평균치와 최고치가 크게 벌어진다.
불과 2020년대 초반만 해도 3.3㎡당 600만~700만원대에 머물던 공사비는 2024년 평균 842만원 안팎까지 올랐고, 2025년 들어 주요 단지에서 800만~1000만원대로 뛰었다.
그리고 2026년 현재, 강남권 고급 단지에서는 평당 1500만원을 넘어 1600만원에 육박하는 계약이 등장했다.
평균은 아직 1000만원 안팎이지만, 선도 단지의 최고가는 그 1.5배를 웃돈다.
이 격차가 중요한 이유는, 뒤늦게 착공하는 단지일수록 앞서 체결된 최고가를 '시세'로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시차가 곧 비용이 되는 구조다.
공사비를 끌어올린 요인은 복합적이다.
자재값과 인건비 상승이 기본에 깔렸고, 주 52시간제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공기 관리와 안전관리비 부담이 커졌다.
금리가 높게 유지되면서 조달 비용도 불어났다.
문제는 이 비용이 고스란히 조합원 분담금으로 전가된다는 데 있다.
분당권 재건축 단지에서는 주택형에 따라 최소 4억~5억원대, 서울 일부 현장에서는 같은 평형을 받는데도 10억원대 추가 분담금이 통지되는 사례가 나온다.
'같은 평형인데 10억을 더 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현실이 된 것이다.
추정 분담금과 확정 분담금의 간극 역시 공사비가 계속 오르는 한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해외는 어떻게 겪고 있나 — 일본·영국·미국 비교
공사비 급등과 재생사업 지연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다만 나라마다 병목의 위치가 다르다.
일본은 도쿄 도심 재개발을 중심으로 건설비가 꾸준히 올랐는데, 핵심 요인은 자재값보다 건설 인력 고령화와 인력난이다. 2024년 이후 건설업에도 시간외근로 상한이 본격 적용되면서 공기가 늘고 비용이 뛰었다는 분석이 많다.
다만 일본은 디벨로퍼가 사업을 주도하고 권리변환 방식이 정착돼 있어, 한국처럼 조합원 개개인이 이주비와 분담금을 직접 떠안는 부담은 상대적으로 덜한 편으로 평가된다.
영국 런던은 성격이 다르다. 2017년 그렌펠 화재 참사 이후 건축 안전 규제가 대폭 강화되면서, 외장재 교체와 안전 설비 보강에 막대한 비용이 추가로 들어갔다.
고층 주거 재생 프로젝트가 안전 검증과 자금 조달 문제로 줄줄이 지연된 것은 '규제發 비용 상승'의 전형으로 꼽힌다.
미국은 또 다르다.
샌프란시스코·뉴욕 등 대도시의 개발 정체는 공사비 자체보다 높은 금리와 사무실 공실, 그리고 복잡한 인허가·용도 전환 절차가 발목을 잡은 경우가 많다.
세 나라를 겹쳐 보면, 한국의 미착공은 '금융규제(이주비)+비용급등(공사비)+시차'가 동시에 겹친 복합형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더 까다롭다.
어느 한 축만 풀어서는 해소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본지 분석 — 숫자의 간극이 말하는 것
본지가 교차 분석을 통해 내린 결론은 세 가지다.
첫째, 착공률 8.6%와 12.7%는 모두 맞다.
틀린 통계가 아니라 분모와 정의가 다른 통계이며, 정책 논쟁에서 이 숫자들을 뒤섞어 쓰는 순간 진단이 왜곡된다.
'500가구 이상 대형 단지'의 착공률이 낮다는 사실이야말로 공급절벽의 실체에 가깝다.
둘째, 이주 후 미착공은 단순한 지연이 아니라 '주거 공백의 외주화'다.
집을 비운 조합원과 세입자는 전·월세 시장으로 밀려나 주변 임대료를 밀어 올리고, 그 비용은 통계 어디에도 잡히지 않는다.
미착공의 진짜 청구서는 조합 장부가 아니라 인근 임차 가구에 날아간다.
셋째, 이번 이주비 규제 완화는 방향은 옳으나 사정권이 좁다.
담보가치 기준을 신축으로 바꾼 것은 분명한 진전이지만, LTV 40% 벽이 남아 있는 한 사업성이 낮은 현장은 여전히 착공선 앞에서 멈춘다.
제도가 '될 곳만 더 잘되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동하면, 서울 안에서도 공급의 양극화가 깊어질 위험이 있다.
미착공의 시차 효과는 2~3년 뒤 입주 물량의 공백으로 되돌아온다.
지금의 착공률이 곧 3년 뒤의 전세·매매 시장 수급표다.
무엇을 해야 하나
정책의 초점은 '착공신고 이후'가 아니라 '철거 후 착공신고까지'의 무규율 구간에 맞춰져야 한다.
이 공백에 표준화된 기한과 관리 지표를 도입하지 않으면, 아무리 이주비를 풀어도 빈 땅은 빈 땅으로 남는다.
공사비 급등 국면에서는 조합원이 추정 분담금만 믿고 이주했다가 확정 분담금 폭탄을 맞지 않도록, 분담금 변동 구간을 사전에 투명하게 고지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이주비 보증 상품이 내년 초 시행되면 그 수혜가 사업성 낮은 현장에도 닿는지 분기별로 점검해야 한다.
공급은 숫자로 발표되지만, 공급절벽은 시차를 두고 조용히 찾아온다.
지금 멈춘 빈 땅의 넓이가, 몇 년 뒤 수급 불안의 크기다.
검증 노트
본 기사는 2026년 10월 3일 기준으로 작성됐다.
서울 정비사업 착공률·미착공 현황은 서울시 도시정비사업 통계(2026년 3~5월 집계)와 국회·국토교통부 제출 자료, 복수 매체의 보도를 교차 확인했다.
착공률 12.7%(472곳 기준)·8.6%(500가구 이상 279곳 기준)·조합 설립 10년 경과 미착공 16% 등은 분모·시점·정의가 서로 다른 별개 집계임을 명시한다.
이주비 대출 담보가치 기준의 '신축 가치' 전환은 8·13 대책에 따라 2026년 8월 31일 시행됐고, 주금공 추가 이주비 보증 상품은 2027년 1월 시행 목표인 예정 사항이다.
공사비 수치(평균 842만원·최고 1500만~1600만원대)와 분담금 사례는 건설업계 집계 및 단지별 보도를 근거로 했으며, 개별 단지 최고가는 해당 현장의 특수성이 반영된 값으로 전체 평균과 구분된다.
해외 비교는 각국의 일반적 경향에 대한 분석으로, 구체 수치가 아닌 추세로 제시했다.
기사 verdict: VERIFIED(1차·공개 자료 교차 확인).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