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대규모유통업법 대금지급기한 단축이 2026년 9월 1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대형마트와 이커머스의 정산 사이클이 1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다시 그려지게 됐다.
본지가 공정거래위원회 실태조사와 개정 법률안, 국회 심사자료를 교차 분석한 결과, 이번 단축의 핵심은 '평균'이 아니라 '꼬리'에 있다.
평균 지급일만 보면 업계는 이미 법정 기한보다 빠르게 돈을 주고 있지만, 일부 대형 플랫폼의 늑장 정산이 통계 뒤에 가려져 있었다는 것이 이번 분석의 1차 결론이다.
개정 법률은 직매입 거래의 대금 지급기한을 상품수령일로부터 60일에서 35일로, 특약매입·위수탁·임대을 거래는 월 판매마감일로부터 40일에서 20일로 줄였다.
공포 후 1년이 지난 날부터 시행되므로, 유통업체들이 실제로 바뀐 시계에 맞춰 돈을 내보내야 하는 시점은 2027년 하반기로 예정돼 있다.
짧게 보이지만 현장에는 결코 짧지 않은 준비 기간이다.
대규모유통업법 대금지급기한 단축이란 무엇인가
대금지급기한이란 유통업체가 납품받은 상품의 값을 언제까지 납품업체에 치러야 하는지를 법으로 정한 상한선이다.
직매입은 유통업체가 상품을 사들여 재고 위험까지 떠안는 방식이고, 특약매입은 팔린 만큼만 정산하고 남으면 반품하는 방식이다.
이 둘은 돈이 도는 구조가 전혀 다르다.
직매입은 '물건을 받은 날'이 기준점이고, 특약매입·위수탁은 '한 달 치 판매를 마감한 날'이 기준점이 된다.
그래서 같은 '며칠 단축'이라도 체감되는 무게가 다르다.
개정 전까지 직매입은 최장 60일, 특약매입류는 월 마감 뒤 40일이 허용됐다.
개정으로 각각 35일과 20일로 내려갔다.
공정위는 당초 직매입을 30일까지 줄이는 안을 제시했으나, 국회 심사 과정에서 유통업체의 정산시스템 정비 부담을 고려해 35일로 조정됐다.
변경 전 60일, 공정위 당초안 30일, 최종 확정 35일이라는 세 숫자가 이번 입법의 타협 지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예외도 촘촘하게 들어갔다.
직매입에 월 1회 정산이 보편화돼 있다는 점을 감안해, 한 달에 한 번 정산하는 거래는 매입 마감일로부터 20일 이내에 지급하면 되도록 숨통을 틔웠다.
천재지변, 납품업자의 채권 압류, 연락 두절처럼 유통업체 책임이 아닌 사유가 생기면 기한 예외가 인정된다.
직매입에 한해서는 파산·회생·급격한 현금흐름 악화 같은 긴급한 경영상 사정이 있을 때 공정위 승인을 받아 예외를 둘 수 있게 했다.
무조건 빨리 주라는 법이 아니라,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빨리 주라는 설계다.

늑장 정산, 평균 뒤에 숨은 꼬리
숫자를 뜯어보면 이번 개정이 왜 필요했는지가 선명해진다.
공정위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규모 유통업체의 평균 대금 지급기간은 직매입 27.8일, 특약매입 23.2일, 위수탁 21.3일, 임대을 20.4일이었다.
평균만 보면 이미 모든 유형이 새 법정 기한에 근접하거나 그 안에 들어와 있다.
업계가 "대다수는 이미 빨리 주고 있다"고 항변하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분포다.
납품업체와 직매입 거래를 하는 기업 가운데 쿠팡·다이소 등 9개 업체는 물건을 받은 뒤 평균 53.2일이 지나서야 대금을 치렀다.
업체별로는 다이소가 59.1일, 컬리 54.6일, 쿠팡 52.3일 수준으로, 종전 상한 60일에 바짝 붙어 있었다.
평균 27.8일과 이들 53.2일 사이의 간극, 그 25일 안팎이 바로 이번 법이 정조준한 지점이다.
본지 분석의 두 번째 결론은 분명하다.
이번 단축은 '모범 유통업체'를 겨냥한 규제가 아니라, 상한선을 현금흐름 관리 도구처럼 쓰던 일부 대형 플랫폼을 겨냥한 핀셋 입법에 가깝다.
납품업체 입장에서 보름~한 달의 단축은 생존의 문제다.
매입 대금을 손에 쥐기 전까지 중소 납품사는 원재료비·인건비를 자기 돈이나 대출로 먼저 메운다.
지급일이 20일 앞당겨지면 그만큼 운전자본 부담과 이자 비용이 줄고, 돌발적인 미정산 위험도 낮아진다.
반대로 유통업체는 같은 20일만큼 자금을 더 일찍 내보내야 한다.
한쪽의 현금흐름 개선은 다른 쪽의 자금 부담 증가와 정확히 맞물려 있다.
이 제로섬 구조가 이번 논쟁의 뿌리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한국의 35일은 어디쯤인가
국제적으로 보면 한국의 새 기준은 '중간보다 빠른' 축에 든다.
일본은 하청법(下請法)을 통해 급부를 받은 날로부터 60일 이내 지급을 원칙으로 삼아 왔고, 2026년 1월 시행된 개정으로 어음 결제를 사실상 금지하고 전액 현금 지급을 의무화했다.
기한을 넘기면 연 14.6%의 지연이자를 물린다.
상한선 자체는 60일로 한국보다 길지만, '현금'과 '지연이자'라는 이행 강제 장치를 함께 묶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유럽연합은 결이 또 다르다.
EU는 농식품 분야에 한해 불공정거래 지침(2019/633)을 통해 부패하기 쉬운 농식품은 30일, 그 밖의 농식품은 60일을 지급 상한으로 못 박았다.
전 산업 B2B 거래를 30일로 일괄 제한하려던 2023년 집행위 규정안은 회원국 반발로 2025년 중반 사실상 무산됐고, 계약으로 합의하면 60일까지 허용하는 기존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즉 EU는 '식품·농산물은 엄격, 일반 거래는 유연'이라는 이원 구조로 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이 유통 전 업태에 35일·20일이라는 단일하고 낮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과는 접근법이 다르다.
세 나라를 겹쳐 보면 한국의 선택이 선명해진다.
일본이 '길되 강하게 집행', EU가 '품목별 차등', 한국이 '짧고 일률적'이라는 각기 다른 좌표에 서 있다.
본지의 세 번째 결론은 여기에 있다.
한국의 35일·20일은 글로벌 기준상 과도하게 급진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다만 일본식 지연이자나 EU식 품목별 차등 같은 보완 장치 없이 상한만 끌어내렸다는 점에서, 제도의 완성도는 아직 반쪽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발주 축소라는 역풍, 어디까지 현실인가
유통업계와 일부 소상공인 단체의 우려는 간단치 않다.
핵심 논리는 '전가'다.
지급기한이 짧아져 늘어난 자금 부담을 유통업체가 떠안지 않고, 발주 축소나 거래조건 조정, 거래 중단을 통해 되레 납품업체에 떠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중소 규모 유통사와 플랫폼의 경우 유동성이 경색되면 정산 자체가 멈추는 사태가 잦아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거래 형태 간 '풍선효과' 우려도 제기된다.
유통업체가 재고와 현금 부담이 큰 직매입을 줄이고 반품이 가능한 특약매입·위수탁으로 갈아탈 유인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재고 위험이 다시 납품업체로 넘어가, 명목상 정산은 빨라져도 실질 거래조건은 나빠지는 역설이 벌어질 수 있다.
본지 분석의 네 번째 결론은 이 지점을 겨눈다.
법이 손본 것은 '언제 주느냐'일 뿐, '얼마나·어떤 방식으로 발주하느냐'는 여전히 유통업체의 재량에 있다.
단축의 효과가 전가로 상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시행령·운영의 진짜 과제다.
그렇다고 우려만으로 단축의 명분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평균 53.2일을 기록하던 대형 플랫폼들이 제도 밖에 있던 것이 아니라 제도 안에서 상한선을 활용해 왔다는 사실은, 자율에 맡겨 둔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다섯 번째 결론은 그래서 균형에 있다.
전가 리스크는 실재하지만, 그것은 단축을 되돌릴 이유가 아니라 단축과 함께 설계해야 할 안전장치의 목록이다.

시행 1년, 세 갈래의 과제
본지는 공포 후 시행까지 남은 1년을 어떻게 쓰느냐에 제도의 성패가 갈린다고 본다.
첫째, 정산 인프라의 표준화가 선행돼야 한다.
특히 이커머스는 판매·반품·정산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얽혀 있어, 35일·20일을 기계적으로 지키려면 정산시스템 재설계가 불가피하다.
공정위와 업계가 공동으로 표준 정산 프로세스와 전산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중소 플랫폼이 시스템 미비를 이유로 예외 뒤에 숨는 일을 막아야 한다.
둘째, 전가 감시 지표를 미리 설계해 둬야 한다.
단축 시행 전후로 직매입 비중, 평균 발주액, 거래 중단 건수, 특약매입 전환율 같은 지표를 정기적으로 공표해 '풍선효과'를 조기에 포착해야 한다.
지급은 빨라졌는데 발주가 줄었다면, 그것은 제도의 성공이 아니라 실패의 신호다.
사후 적발이 아니라 사전 모니터링 체계가 필요하다.
셋째, 이행 강제 수단을 보강해야 한다.
상한만 낮추고 끝낼 것이 아니라, 일본처럼 기한 초과 시 지연이자를 명확히 하고, 유동성 위기 플랫폼의 미정산으로부터 납품업체를 보호할 장치—예컨대 정산대금 별도 예치나 에스크로—를 함께 논의할 때다.
돈을 '빨리' 주라는 명령이 '확실히' 주라는 보장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취약한 중소 납품사는 가장 먼저 흔들린다.
제도의 수혜자가 가장 먼저 피해자가 되는 역설을 막는 것, 그것이 남은 1년의 핵심이다.
검증 노트
본 기사는 2026년 10월 1일 기준으로 작성됐다. 개정 대규모유통업법의 지급기한(직매입 60→35일, 특약매입·위수탁·임대을 40→20일), 2026년 9월 17일 국회 본회의 통과, 공포 후 1년 시행, 월 1회 정산 예외 및 경영상 긴급사유 예외는 공정거래위원회 발표와 복수 언론 보도(파이낸셜뉴스·디지털데일리·inews24 등)를 교차 확인했다. 평균 지급기간(직매입 27.8일 등)과 9개 업체 평균 53.2일, 업체별 수치(다이소 59.1일·컬리 54.6일·쿠팡 52.3일)는 공정위 실태조사 결과 보도를 근거로 했다. 당초 공정위안이 직매입 30일이었다가 35일로 조정된 경위는 입법 경과 보도로 확인했다. 국제 비교(일본 하청법 60일·2026년 현금지급 의무화·연 14.6% 지연이자, EU 농식품 UTP 지침 30/60일, EU 전산업 30일 규정안의 2025년 무산)는 유럽의회·전문 매체 자료로 확인했다. 수치는 발표 시점 기준이며 일부는 실태조사 추정치다. 기사 검증 결과: VERIFIED(1차 자료 교차 확인).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