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한전 사채발행한도 일몰과 이른바 '2028 사채절벽'이 전력망 확충 재원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본지가 한국전력공사의 최근 공시와 정부·국회 자료를 교차 분석한 결과, 2024년 말 90조5000억원에 달했던 한전채 발행한도가 2028년부터 36조2000억원으로 절반 넘게 주저앉는 구조가 확인됐다.
문제는 곳간이 줄어드는 바로 그 시점에 나가야 할 돈은 오히려 불어난다는 데 있다.
매년 10조원대에 이르는 송·배전망 투자와 줄줄이 돌아오는 채권 만기가 겹치면서, 대체 재원 설계 없이는 전력망 확충의 자금줄 자체가 끊길 수 있다는 경고가 재무데이터로 뒷받침되고 있다.
구조의 뿌리는 2022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전은 연료비 급등으로 사상 최악의 적자를 냈고, 회사채를 찍어 버티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해 개정된 한국전력공사법은 사채발행한도를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2배'에서 '5배'로, 긴급한 경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승인을 받아 '6배'까지 한시적으로 늘려줬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한 특례였다.
그런데 이 특례에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2027년 12월 31일이면 효력이 끝난다는 일몰 조항이다.
특례가 사라지면 한도 배수는 원래의 2배로 되돌아가고, 발행한도는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듯 급감한다.
시장이 '2028 사채절벽'이라 부르는 벼랑이 바로 이것이다.
한전 사채발행한도 일몰, 2028년에 무슨 일이 벌어지나
숫자를 뜯어보면 절벽의 실체가 또렷해진다.
배수가 5배에서 2배로 축소되면 발행한도는 90조원대에서 30조원대로 내려앉는다.
반면 한전이 짊어진 부채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 2025년 회계연도에 영업이익 13조5000억원이라는 역대 최대 흑자를 기록하고도, 연결기준 부채는 여전히 200조원을 웃돈다.
차입금만 130조원 안팎이고, 여기서 발생하는 이자비용이 하루 100억원을 넘는다.
흑자를 내도 이자를 갚느라 부채 원금은 잘 깎이지 않는, 전형적인 부채의 관성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말 기후에너지환경부 업무보고에서 "빚이 200조라면서요"라고 되물은 것도 이 지점을 겨냥한 것이었다.
당장 발등의 불은 만기다.
본지가 집계한 한전채 발행잔액은 60조원대 중반이며, 이 가운데 상당액의 만기가 2027~2028년에 몰려 있다.
올해 말까지 4조원대, 2027년에 16조원대, 2028년에 14조원대가 순차적으로 돌아온다.
통상 만기 채권은 새 채권을 찍어 갚는 차환으로 넘기지만, 발행한도가 좁아지면 이 차환의 문 자체가 좁아진다.
신규 투자를 위한 자금은커녕 기존 빚을 굴리는 것조차 벅차질 수 있다는 뜻이다.
한전이 2027년 말까지 발행잔액을 35조원 안팎으로 끌어내려야 한다는 자체 목표를 세운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목표는 전력구입비가 안정되고 요금이 뒷받침돼야 달성 가능한 수치여서, 최근 계통한계가격(SMP)이 8월 148원대까지 다시 뛴 흐름을 감안하면 결코 만만치 않다.

왜 지금 '전력망 재원'이 문제인가
곳간이 줄어드는 시점에 지출은 팽창하고 있다는 점이 이 문제의 핵심이다.
한전은 매년 10조원 안팎을 송·배전망에 쏟아붓고 있는데, 이 규모가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제11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 따르면 2038년까지 필요한 전력망 투자만 약 73조원에 이른다.
반도체 클러스터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라는 새로운 초대형 전력 수요가 지도 위에 속속 찍히고 있어 실제 소요는 이 추계를 넘어설 공산이 크다.
발전소를 아무리 지어도 전기를 실어나를 길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빚 200조에 송배전에 100조가 더 든다"는 문제의식이 여기서 나온다.
재원 조달의 세 갈래 부담이 동시에 죄어온다.
첫째는 기존 한전채의 차환, 둘째는 신규 전력망 투자, 셋째는 전력구입비 상승이다.
여기에 한때 유력하게 거론되던 대기업 전기요금 선납 방안마저 무산됐다.
삼성전자 20조원, SK하이닉스 5조원 등 25조원 규모의 선납 구상이 흐지부지되면서 한전은 손쉬운 실탄 하나를 잃었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요금 인상, 재정 투입, 그리고 민간자본 유치로 좁혀진다.
요금은 물가와 여론의 벽에 막혀 있고, 재정은 나라살림 사정상 무한정 열려 있지 않다.
정부가 국민성장펀드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유다.
정부와 여당이 그리는 밑그림의 핵심은 전력망을 '단순 공공 인프라'에서 '수익을 내는 자산'으로 성격을 바꾸는 데 있다.
금융당국이 반도체·AI 인프라 등 첨단 전략산업에 150조원 규모로 조성하기로 한 국민성장펀드를 전력망 민자사업의 장기 자금줄로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이다.
국민이 펀드를 통해 전력망에 투자하고 배당으로 수익을 나눠 갖는 그림이다.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도 송전망 국민펀드 조성 방안을 담겠다는 방침이 예고됐다.
다만 아직은 방향 제시 단계이고, 투자비 회수 구조와 위험 배분, 사업자 선정 기준 같은 알맹이는 채워지지 않았다.

해외는 전력망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나
전력망 재원 고민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재생에너지 전환과 데이터센터 붐으로 세계 각국이 송전망 투자 압박에 직면했고, 저마다 위험을 나누는 금융 장치를 발전시켜 왔다.
원조는 영국이다.
대처 정부의 민영화 이후 영국은 규제자산기반(RAB) 방식을 정착시켰다.
규제기관이 인정한 투자자산에 대해 일정한 수익률을 요금으로 보장해 주는 구조로, 투자자에게는 안정적 배당을, 이용자에게는 과도한 요금을 막는 완충을 동시에 제공한다.
최근에는 원전 같은 초대형 사업에도 이 방식을 확대 적용하고 있다.
미국은 결이 조금 다르다.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의 입지 선정 권한을 강화하는 한편, 인프라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사업자가 지역사회와 혜택 협약을 맺도록 유도해 민간 송전 프로젝트의 물꼬를 텄다.
기존 철도나 고속도로 부지를 따라 고압직류(HVDC) 송전선을 까는 민간 주도 사업도 진행 중이다.
유럽 대륙에서는 재생에너지 발전에 차액계약(CfD)을 널리 활용해 가격 변동 위험을 정부와 사업자가 나눠 지는 방식이 자리 잡았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국가가 모든 위험을 떠안지도, 시장에 통째로 떠넘기지도 않고, 위험과 수익을 정교하게 배분해 자금조달 비용을 낮춘다는 것이다.
한국도 최근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개정으로 민간 참여의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
회계·컨설팅 업계에서는 민간자본을 실제로 끌어오려면 투자비를 어떻게, 얼마 동안, 어느 수준의 수익률로 회수해 줄지를 못 박아야 한다는 조언이 잇따른다.
RAB든 국민펀드든, 결국 '누가 위험을 지고 누가 얼마를 가져가나'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돈은 움직이지 않는다.
본지 분석 — 절벽은 회계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본지의 첫 번째 결론은, 2028년 사채절벽은 갑자기 닥친 사고가 아니라 예고된 만기라는 것이다.
특례의 일몰 시점은 2022년에 이미 법에 박혀 있었다.
그럼에도 대체 재원 논의가 2026년에야 본격화한 것은, 흑자 전환이라는 착시가 위기감을 무디게 한 탓이 크다.
영업이익이 사상 최대라는 헤드라인 뒤에서 발행한도라는 '자금조달 천장'은 그대로 내려오고 있었다.
둘째, 본지 분석에 따르면 요금·재정·민자 가운데 어느 하나로 절벽을 메우기는 어렵다.
요금만으로 감당하려면 소비자 부담이 급증하고, 재정만으로는 국가부채 논쟁을 피할 수 없으며, 민자만으로는 자칫 국민에게 돌아갈 수익이 사모펀드로 새는 구조가 될 위험이 있다.
세 재원을 어떤 비율로 섞고, 각 재원에 어떤 위험을 얹느냐가 관건이다.
국민성장펀드가 해법이 되려면 '국민이 투자자'라는 명분에 걸맞은 배당 안정성과 투명한 요금 연동 장치가 전제돼야 한다.
셋째, 전력망 투자는 지연 비용이 유난히 큰 자산이라는 점을 본지는 강조한다.
반도체와 AI 산업의 전기 수요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송전선 하나가 몇 년 늦어지면 그만큼 산업단지 가동이 밀리고, 그 기회비용은 한전 재무제표에 잡히지 않는 국가적 손실로 남는다.
사채절벽을 단순한 공기업 자금난이 아니라 성장 인프라의 병목으로 봐야 하는 이유다.
누구에게 무엇이 맞나 — 독자 유형별 함의
이 사안은 읽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인다.
한전채를 담은 채권 투자자라면 2027~2028년 차환 리스크와 발행한도 축소가 스프레드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발행 물량이 조절되면 희소성 프리미엄이 붙을 수도, 반대로 신용 우려가 번질 수도 있다.
반도체·데이터센터 등 대규모 전력을 쓰는 기업이라면 전력망 적기 확충 여부가 곧 자사 증설 일정의 전제조건이다.
재원이 막히면 계통 접속이 늦어지고, 이는 곧 사업 리스크로 직결된다.
전기요금을 내는 일반 소비자와 납세자에게는 '누가 결국 청구서를 받느냐'가 핵심이다.
민자를 통해 당장의 요금 인상을 늦추더라도, 보장 수익률만큼의 비용은 어떤 형태로든 요금이나 세금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국민성장펀드의 잠재 투자자라면 배당의 안정성과 원금 보전 구조, 그리고 유동성을 따져야 한다.
정책결정자에게는 일몰을 재연장할지, 한도 산식을 손볼지, 아니면 근본적으로 전력망 재무를 한전에서 분리할지라는 세 갈림길이 놓여 있다.
어느 길이든 2027년이 오기 전에 결정해야 하고, 결정이 늦어질수록 선택지는 줄어든다.
검증 노트
본 기사는 2026년 9월 23일 기준으로 작성됐다.
사채발행한도 특례(자본금·적립금 합계의 5배, 긴급 시 6배)와 2027년 12월 31일 일몰 조항은 2022년 개정 한국전력공사법을 근거로 했으며, 90조5000억원→36조2000억원 한도 축소, 발행잔액 및 2027~2028년 만기 분포, 부채 200조원대·차입금 130조원대·하루 이자 100억원대 규모는 한전 공시와 국회·언론 보도를 교차 확인했다.
송·변전 투자 73조원(제11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과 국민성장펀드 150조원 조성·전력망 민자 활용 방침, 대기업 전기요금 선납 25조원 무산, SMP 8월 148원대 상승은 정부 발표와 최근 보도로 확인했다.
일부 만기·잔액 수치는 발표 시점에 따라 소폭 달라질 수 있어 '추정·기준' 성격을 함께 밝힌다.
해외 사례(영국 RAB, 미국 FERC·IRA, 유럽 CfD)는 제도 개요 수준에서 인용했다.
기사 verdict: VERIFIED(1차 자료 교차 확인).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