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포괄임금제 원칙적 금지·근로시간 기록 의무화를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이 노사정 합의와 정부 감독이라는 두 축을 타고 현장으로 밀려들고 있다.
본지가 국회 발의안과 고용노동부 감독 자료, 업계 실태조사를 교차 분석한 결과, '이미 법으로 금지됐다'거나 '고정OT가 전면 폐지된다'는 식의 단정은 사실과 거리가 있었다.
확정된 것은 법이 아니라 방향이며,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법이 아니라 감독이다.
이 미묘한 시차가 IT·게임·스타트업의 인건비 산정과 고정연장수당(고정OT) 운영을 흔드는 진짜 지점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노사정은 2025년 12월 30일 공동선언에서 포괄임금 오남용을 바로잡자는 데 뜻을 모았고, 이 합의를 반영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김주영 의원이 2026년 2월 13일 대표발의(의안번호 16872)했다.
국회에는 관련 개정안이 여러 건 올라와 심의 대기 중이다.
법 개정을 기다리는 동안 노동부는 2026년 4월 9일 '공짜노동 근절을 위한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지도 지침'을 시행했고, 상반기 기획감독에 이어 9월 15일부터 하반기 기획감독에 들어갔다.
아래에서 다섯 개의 대표적 주장을 하나씩 뜯어본다.
포괄임금제, 이미 금지됐나 — "확정"과 "추진"은 다르다
가장 널리 퍼진 오해부터 짚는다. "포괄임금제가 이미 금지됐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FALSE). 2026년 9월 현재 포괄임금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조항은 아직 시행되지 않았다. 김주영 의원안을 비롯한 개정안들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심의 단계에 머물러 있고, 통과 시점도 확정되지 않았다. 정부가 상반기 입법을 목표로 삼았다는 점은 방향의 무게를 보여주지만, 목표가 곧 시행은 아니다.
다만 '아무 일도 없다'고 읽으면 그것도 오독이다.
노동부 지침은 대법원 판례와 현행법의 취지를 재확인한 성격이어서, 법 개정 이전에도 현장에 곧바로 힘을 미친다.
판례는 오래전부터 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한데도 포괄임금 약정을 이유로 실제 초과근로에 대한 수당을 주지 않는 관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즉 법조문이 바뀌기 전이라도, 근로시간을 잴 수 있는 사무·개발직에서 '포괄이니 야근수당은 없다'는 논리는 이미 위태롭다.
확정된 것은 금지가 아니라, 금지로 가는 궤도와 그 궤도 위를 달리는 감독이다.
IT·게임 10곳 중 8곳이 포괄임금제? — 조사마다 다른 숫자
"IT·게임업계 10곳 중 8곳이 포괄임금제를 쓴다"는 표현은 절반의 사실(HALF-TRUE)이다. 근거가 되는 수치들이 조사 주체·시점·표본에 따라 상당히 벌어지기 때문이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IT위원회 조사에서는 111개 사업장 중 84곳, 약 75.7%가 포괄임금제를 시행한다고 나왔다. IT서비스 기업의 포괄임금제 채택률은 2020년 조사에서 68.1% 수준으로 집계됐다. '10곳 중 8곳'은 특정 노조 조사의 상단 수치를 일반화한 표현에 가깝다.
흐름을 보면 방향은 오히려 반대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에서 포괄임금 적용 비율은 2020년 82%에서 2024년 69.9%로 내려왔다.
게임사들이 노조 설립과 여론을 의식해 포괄임금을 걷어내 온 흐름이 숫자로 확인된다.
그럼에도 절대 수준은 여전히 높다.
같은 조사에서 크런치모드(집중 노동기) 경험 비율은 34.3%, 크런치 시기 주 최대 근로시간은 56.1시간으로 전년보다 4.5시간 늘었다.
도입률은 떨어지는데 정작 몰아치는 노동의 강도는 꺾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8할'이라는 인상은 과장이지만, '문제는 지나갔다'는 안도 역시 이르다.

개정되면 고정OT도 전면 금지되나 — 금지되는 건 '포괄', 남는 건 '고정OT'
"개정안이 통과되면 고정OT 계약도 전면 금지된다"는 주장은 오해를 부른다(MISLEADING). 노사정 합의를 반영한 김주영 의원안은 초과근로수당까지 임금에 뭉뚱그려 넣는 좁은 의미의 포괄임금 계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노사 당사자가 합의해 고정연장근로수당(고정OT)을 정하는 방식 자체는 허용한다. 대신 실제 초과근로가 약정한 고정OT 시간을 넘으면 그 차액을 반드시 지급하도록 못박았다. 정액으로 얹어 주는 관행을 없애자는 게 아니라, '정액을 주면 그걸로 끝'이라는 정산 회피를 없애자는 것이다.
이 구분은 인건비 설계에 직접 영향을 준다.
그동안 다수의 개발·기획 조직은 연봉에 월 고정 연장수당을 포함하고 실근로시간은 따로 재지 않는 방식으로 인건비를 예측 가능하게 관리해 왔다.
개정안 구조에서는 고정OT를 계속 쓰더라도 실제 시간을 기록하고, 초과분을 정산할 여지를 상시 열어둬야 한다.
스타트업처럼 '연봉에 다 포함'을 전제로 채용·자금계획을 짜 온 조직일수록 고정OT의 상한 설계와 정산 규칙을 다시 짜야 하는 부담이 크다.
전면 폐지라는 프레임보다, '정산 의무가 붙는 조건부 허용'으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포괄임금이라 야근수당은 없다" — 판례도 감독도 부정한다
"포괄임금제라면 야근수당을 안 줘도 된다"는 통념은 사실이 아니다(FALSE). 판례는 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한 업무에서 실제 초과근로가 약정된 포괄임금 범위를 넘으면 사용자가 차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노동부 지침도 이를 명확히 했다. '포괄'이라는 계약 형식이 임금 정산 의무를 없애 주는 마법의 주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감독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본지가 노동부 상반기 기획감독 발표를 확인한 결과, 오남용이 의심된 사업장 101곳 중 34곳에서 연장·휴일·야간근로수당 미지급이 드러났고 체불액은 약 4억4,800만원으로 집계됐다.
한 화장품 제조업체는 출퇴근 시간을 따로 기록·관리하지 않은 채 고정 연장수당을 초과한 직원 310명에게 약 2,300만원을 지급하지 않았고, 한 기술서비스업체는 연장근로 한도를 698시간이나 초과한 사실이 적발됐다.
익명신고센터에 접수된 포괄임금 오남용 제보는 올해 1~8월 260건으로, 지난해 전체 98건의 세 배 가까이로 뛰었다.
'포괄이니 괜찮다'는 인식이 실제로는 체불로 이어지고 있음을 숫자가 보여준다.
근로시간 기록 의무화는 한국만의 규제인가 — 국제 비교로 본 위치
"근로시간 기록 의무화는 한국만의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FALSE). 오히려 한국은 뒤늦게 따라가는 쪽에 가깝다. 유럽��법재판소(ECJ)는 2019년 스페인 노조와 도이체방크 스페인 지사 간 소송(C-55/18)에서 회원국은 사용자가 개별 근로자의 매일 노동시간을 잴 수 있는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기록 시스템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EU 근로시간지침은 7일 평균 48시간 상한과 24시간 내 최소 11시간 연속 휴식을 규정하는데, 기록이 없으면 이 규정의 준수를 확인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개별 국가로 내려가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이 판결 이후 사용자의 근로시간 기록 의무를 제도화하는 논의를 본격화했고, 일본은 후생노동성 가이드라인을 통해 사용자가 타임카드·IC카드·PC 사용기록 등 객관적 자료로 근로시간을 파악하도록 원칙을 세워 두고 있다.
미국은 공정근로기준법(FLSA)이 사용자에게 근로시간 기록 의무를 부과하고, 캐나다 온타리오주도 1일 근로시간 기록을 법으로 요구한다.
세 대륙의 사례를 나란히 놓으면, 기록 의무화 자체는 이미 선진국 노동법의 표준 문법에 가깝다.
한국의 특수성은 '기록을 요구한다'가 아니라, 포괄임금이라는 우회로가 그 기록의 공백을 오래 메워 왔다는 데 있다.
무엇이 바뀌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본지 분석의 첫 번째 결론은 이렇다.
지금 현장을 움직이는 실질적 동력은 '개정법'이 아니라 '지침과 감독'이다.
법 통과 전이라도 근로시간을 잴 수 있는 직군에서 포괄임금을 이유로 한 정산 회피는 이미 위험 구간에 들어섰다.
하반기 기획감독이 제조업과 정보통신,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점에서, IT·게임·스타트업은 '법이 아직'이라는 이유로 대비를 미룰 여유가 없다.
두 번째 결론은, 관건이 '포괄임금 폐지'가 아니라 '기록과 정산의 상시화'라는 점이다.
고정OT는 살아남되 실근로 기록과 초과분 정산이 따라붙는다.
인건비를 '연봉에 포함된 고정비'로 다뤄 온 조직은, 초과근로가 몰리는 출시·마감 시기의 정산 리스크를 비용 모델에 미리 반영해야 한다.
이는 재무 예측의 문제이자 채용 조건 설계의 문제다.
세 번째 결론은 유예기간이 곧 완충이 아니라는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300인 이상 사업장은 1년, 30인 이상 300인 미만은 2년, 30인 미만은 3년의 시차를 두고 적용될 전망이지만, 규모가 작을수록 기록 인프라와 정산 역량이 취약하다.
유예가 긴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준비를 미루다 막판에 부담이 몰릴 공산이 크다.
권고는 단순하다.
근로시간 기록 체계부터 지금 갖추라.
그것이 개정법의 핵심이자, 감독이 가장 먼저 들여다보는 지점이다.
검증 노트
본 기사는 2026년 9월 15일 기준으로 작성했다.
근거로 삼은 1차·2차 자료는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의 근로기준법 개정안(김주영 의원 대표발의, 2026년 2월 13일, 의안번호 16872), 고용노동부의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지도 지침' 및 상·하반기 기획감독 발표(의심 사업장 101곳 중 34곳 적발, 체불 약 4억4,800만원, 제보 1~8월 260건),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4 게임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실태조사(포괄임금 적용 69.9%, 크런치 경험 34.3%),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 실태조사(75.7%), 유럽사법재판소 판결(C-55/18, 2019) 등이다.
다섯 개 주장에 대한 판정은 각각 ①이미 금지됐다=FALSE ②IT·게임 8할=HALF-TRUE ③고정OT 전면금지=MISLEADING ④야근수당 면제=FALSE ⑤한국만의 규제=FALSE다.
조사 주체·시점에 따라 포괄임금 도입률 수치가 68~82% 범위로 엇갈리는 점, 개정안 시행 시점과 유예 구간이 국회 심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점은 '추정' 또는 '전망'으로 표기했다.
감독 세부 수치는 노동부 발표를 기준으로 하되, 최종 사법 판단 이전임을 밝혀 둔다.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