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정기국회가 열리자마자 망무임승차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 재점화 여부가 통신·콘텐츠 업계의 최대 화두로 다시 떠올랐다. 넷플릭스·구글 같은 글로벌 콘텐츠사업자(CP)에게 국내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와의 망 이용계약 체결과 그에 상응하는 대가 지급을 사실상 의무화하자는 이 법안을 두고, 본지가 국회 의안정보와 국내 트래픽 통계, 그리고 유럽연합(EU)·미국의 최신 입법 동향을 같은 축으로 교차 분석한 결과 한국은 "법안 발의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지만 실제 통과 문턱은 오히려 더 높아진" 역설적 국면에 서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의가 곧 임박한 규제라는 시장의 오래된 공식은, 적어도 지금의 망 이용대가 문제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먼저 숫자를 보자.
국내 인터넷 트래픽에서 해외 빅테크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논쟁의 여지가 없을 만큼 커졌다.
국회 국정감사에 제출된 자료와 이를 종합한 언론 보도를 보면, 2023년 말 기준 국내 인터넷 트래픽 점유율은 구글이 30.6%로 압도적 1위였고, 넷플릭스 6.9%, 메타 5.1%가 뒤를 이었다.
이 글로벌 3사만 합쳐도 42.6%에 이른다.
반면 국내 사업자는 네이버 2.9%, 쿠팡 1.3%, 카카오 1.1% 수준에 그쳤다.
트래픽을 가장 많이 유발하는 쪽과 망 이용대가를 실제로 내는 쪽이 어긋나 있다는 것이 논쟁의 출발점이다.
네이버는 연간 1000억원 안팎으로 알려진 망 이용대가를 부담해 온 반면, 트래픽 유발량이 열 배가 넘는 일부 글로벌 CP는 같은 수준의 대가를 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 국내 통신사와 일부 국회의원들의 오랜 문제 제기였다.
이 구도가 처음 법정 다툼으로 번진 것이 2020년 4월 시작된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망 이용대가 소송이다. 3년 넘게 이어진 이 분쟁은 2023년 9월 양사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소송을 모두 취하하면서 봉합됐다.
다만 협상의 구체적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고, 넷플릭스가 자체 캐시서버인 오픈커넥트(OCA)를 국내에 설치해 트래픽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 핵심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가 주목하는 대목은 이 봉합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입법의 명분을 약화시켰다"는 점이다.
가장 상징적인 분쟁이 당사자 간 합의로 끝나면서,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는 주장의 동력도 함께 빠졌다.
망무임승차방지법이란, 그리고 왜 다시 재점화됐나
망무임승차방지법은 특정한 단일 법률의 이름이 아니라, 전기통신사업법을 고쳐 CP의 망 이용계약 체결을 의무화하고 무상 이용 같은 불합리한 조건 강요나 계약 체결의 부당한 지연·거부를 제재하려는 일련의 개정안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이력을 되짚어 보면 흐름이 뚜렷하다. 2020년 임기를 시작한 21대 국회에서는 관련 개정안이 8건이나 발의됐지만 단 한 건도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채 임기 만료로 모두 폐기됐다.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3건가량의 유사 법안이 다시 발의돼 현재 계류 중이다.
발의는 반복되는데 결론이 나지 않는 전형적인 교착이다.
재점화의 방아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인공지능(AI) 서비스 확산으로 데이터 트래픽이 다시 가파르게 늘면서, 망 증설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이냐는 해묵은 질문이 되살아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외부 압력이다. 2026년 4월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전 세계 어느 나라도 트래픽 전송에 망 사용료를 매기지 않는데 한국만 예외"라고 공개 저격하면서, 잠잠하던 사안이 통상 이슈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흥미로운 점은 그 근거를 묻는 질의에 USTR이 "실제 부과가 아니라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문제"라는 취지로 답했다는 것이다.
즉 아직 시행되지도 않은 법안을 겨냥해 통상 압박 카드를 미리 꺼내 든 셈이다.
국회 역시 "계류 법안은 있으나 통과를 위한 실질적 움직임은 없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한국·EU·미국 망 이용대가, 비교하면 어디쯤인가
같은 사안을 세 지역이 어떻게 다루는지 같은 잣대로 놓고 보면 한국의 위치가 선명해진다.
결론부터 말하면 세 곳 모두 "의무화 입법"에서 "자발적 협력" 쪽으로 무게추가 이동하고 있으며, 한국만 유일하게 강제 조항을 담은 법안을 여전히 국회에 남겨 두고 있다.
유럽연합의 경로 전환이 가장 극적이다.
EU는 오랫동안 대형 CP가 통신망 투자에 기여해야 한다는 이른바 '공정 분담(fair share)' 논의를 끌어 왔다.
유럽 통신사들은 세계 8대 CP가 글로벌 트래픽의 절반 이상을 유발하며, 이로 인한 망 관리·증설 비용을 연간 360억~400억 유로로 추정(업계 추산)해 왔다.
그러나 2025년 말 유럽집행위원회가 내놓은 '디지털네트워크법(DNA)' 초안은 빅테크에 대한 망 비용 분담 의무를 결국 담지 않았다.
강제 부과 규제 대신, IP 상호접속과 트래픽 효율화를 위한 자발적 협력 틀을 제시하는 선에서 멈춘 것이다.
수년간의 논쟁 끝에 EU가 사실상 의무화 카드를 내려놓았다는 점은 한국 입법 논의에 던지는 함의가 작지 않다.
미국은 애초 반대편에 서 있다.
망 중립성 전통이 강한 미국은 발신자 부담 원칙 자체에 부정적이며, 오히려 한국의 입법 시도를 자국 빅테크에 대한 차별로 규정해 통상 압박의 지렛대로 삼고 있다.
앞서 본 2026년 4월 USTR의 공개 발언이 그 연장선이다.
여기에는 국제 인터넷 정산 관행이라는 배경도 있다.
국제 비영리기관 패킷클리어링하우스(PCH)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피어링의 99.9996%가 대가를 주고받지 않는 무정산 방식이며, 사용량에 따라 돈을 내는 유상 피어링은 0.0004%에 불과하다.
미국과 글로벌 CP는 이 관행을 근거로 "망 이용대가 의무화는 인터넷의 기본 원리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그 사이에 끼어 있다.
국내 사업자는 실제로 대가를 내고 있어 "역차별" 문제가 실재하는데, 이를 바로잡으려는 입법은 통상 마찰과 국제 관행 논란에 막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세 지역을 같은 축에 올려 보면, EU는 논쟁 끝에 자발 협력으로 정리했고 미국은 처음부터 반대이며 한국만 의무화 법안을 살려 둔 채 정치적 부담을 떠안고 있는 구도다.
본지 분석의 첫 번째 결론은 여기에 있다.
한국의 위치는 '가장 앞서간 규제 실험국'이 아니라 '가장 고립된 규제 시도국'에 가깝다.
두 번째로, 본지가 트래픽 통계와 분쟁 이력을 겹쳐 본 결과 이 사안의 성격은 이미 '요금'에서 '컴플라이언스'로 옮겨 갔다.
설령 계약 체결 의무화가 입법된다 해도 대가의 수준·산정 방식은 여전히 당사자 협상에 맡겨지는 구조라, 법은 협상 테이블을 강제할 뿐 가격표를 정해 주지 못한다.
결국 실무의 초점은 계약 존재 여부, 트래픽 측정과 정산 근거의 문서화, 국내 대리인·설비 요건 같은 규제 준수 항목으로 이동한다.
통신사·OTT·콘텐츠전송망(CDN) 사업자 모두 여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세 번째, 본지의 결론은 이 문제가 통상 협상 테이블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망 이용대가는 더 이상 국내 산업정책만의 사안이 아니라, 관세·플랫폼 규제와 한데 묶여 오가는 통상 의제가 됐다.
입법의 속도와 수위는 국내 여론보다 대외 협상의 국면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개별 법안의 문구보다, 그 법안이 통상 카드로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함께 읽어야 실체가 보인다.
함의는 분명하다.
국내 ISP는 강제 입법이라는 단일 해법에 기대기보다, EU식 자발 협력 모델과 넷플릭스-SKB가 택한 캐시서버·OCA 방식의 트래픽 현지화처럼 협상으로 부담을 나누는 실무적 경로를 병행해 두는 편이 현실적이다.
OTT·CDN 사업자는 계약·정산 근거를 문서로 정비해 향후 규제와 통상 심사 양쪽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할 필요가 있다.
규제 당국과 국회는 강제냐 자율이냐의 이분법 대신, 트래픽 데이터의 투명한 공개와 표준화된 정산 지표부터 마련하는 편이 통상 마찰을 줄이면서도 역차별을 완화하는 길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만 부과한다'는 프레임은 사실과 다르므로, 실제 부과가 아니라 계약 공정성 확보라는 입법 취지를 대외적으로 정확히 설명하는 일이 당장의 과제다.

검증 노트
본 기사는 2026년 9월 14일 기준으로 작성됐다.
국내 트래픽 점유율(구글 30.6%·넷플릭스 6.9%·메타 5.1% 등, 2023년 말 기준)은 국회 국정감사 제출자료와 이를 종합한 국내 언론 보도를 교차 확인했고, 21대 국회 8건 발의·전량 폐기 및 22대 국회 3건 계류 현황은 국회 의안정보와 관련 보도로 대조했다.
넷플릭스-SK브로드밴드 소송의 2020년 제소와 2023년 9월 종결, 오픈커넥트(OCA) 관련 내용은 넷플릭스 공식 자료와 언론 보도로 확인했다.
EU 디지털네트워크법(DNA) 초안이 '공정 분담' 의무화를 최종 배제한 사실은 유럽집행위 제안과 유럽의회 자료로, 글로벌 피어링 99.9996% 무정산 비율은 패킷클리어링하우스 조사로 확인했다. 2026년 4월 미국 USTR의 압박과 국회의 '입법 동향 없음' 입장은 국내 다수 매체 보도로 교차 검증했다.
유럽 통신사의 연 360억~400억 유로 비용은 업계 추정치로 범위로 표기했다.
기사 verdict: VERIFIED(1차 자료 교차 확인).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