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연결자산 30조원 이상에서 10조원 이상으로.
KSSB 지속가능성 공시 로드맵 단계적 의무화의 첫 관문이 초안 발표 다섯 달 만에 뒤집혔다.
본지가 금융위원회의 지속가능성 공시 로드맵 초안과 확정안, 한국회계기준원 산하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의 공시기준 원문을 교차 분석한 결과, 상장사가 실제로 대비해야 할 첫 마감시한은 애초 알려진 것보다 넓고, 빠르고, 촘촘해졌다.
초안에서 2028년 첫 대상은 연결자산총액 3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약 58곳이었지만, 확정 로드맵은 이 문턱을 10조원으로 낮췄다.
종속회사를 포함해 사실상 공시 준비의 사정권에 드는 기업은 2028년 291개사, 2029년에는 3천곳을 넘어선다.
혼선의 뿌리는 두 개의 문서가 다섯 달 간격으로 나온 데 있다.
공시기준 자체는 2026년 2월 26일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가 제1호 일반사항과 제2호 기후 기준을 최종 확정했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가 만든 IFRS S1과 S2를 뼈대로 삼아, 연결기준 작성, 재무적 중요성, 정보 신뢰성이라는 세 원칙을 공유한다.
문제는 언제, 누구부터 적용하느냐였다.
금융위원회는 2월 말 로드맵 초안에서 2028년 30조원, 2029년 10조원이라는 순차 확대안을 내놨다가, 3월 말까지의 의견수렴을 거쳐 여름에 확정안을 공개하면서 시작 문턱을 한 단계 끌어내렸다.
옛 수치인 30조원 기준을 지금도 유효한 것으로 인용하는 자료가 적지 않지만, 2026년 9월 현재로서는 10조원이 첫 관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KSSB 지속가능성 공시 로드맵, 초안과 무엇이 달라졌나
확정 로드맵의 변화는 문턱 숫자에만 있지 않다.
도입 경로 자체가 바뀌었다.
초안은 한국거래소 자율 성격의 의무공시로 먼저 시작한 뒤 제도가 안착하면 자본시장법상 법정공시로 전환하는 2단계 방식을 담고 있었다.
확정안은 이 중간 단계를 없애고 처음부터 사업보고서에 담는 법정공시로 직행하기로 했다.
공시 서류의 무게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사업보고서는 허위·부실 기재에 법적 책임이 따르는 문서다.
지속가능성 정보가 이른바 제2의 재무제표로 격상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대상 확대의 기울기도 가팔라졌다.
확정 로드맵은 2028년 연결자산 10조원 이상, 2029년 5조원 이상으로 낮추고, 2028~2029년 공시 이행 상황을 평가한 뒤 2030년부터 2조원 이상까지 넓히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자산 규모만 놓고 보면 2년 사이 문턱이 5분의 1로 내려가는 셈이다.
본지 분석에 따르면, 이 설계의 핵심은 시작을 낮추되 확대 속도로 부담을 조절하는 데 있다.
초안의 30조원은 대상이 지나치게 좁아 제도의 상징성이 약하다는 지적을, 반대로 급격한 전면 의무화는 준비 부족을 낳는다는 우려를 동시에 받았다.
확정안은 두 비판 사이에서 절충점을 잡았다.

연결자산 10조 상장사, 공시 준비 마감시한은 언제인가
기업이 체감할 시계는 회계연도 기준으로 앞당겨진다. 2028년 사업보고서에 담으려면 그 대상이 되는 회계연도, 즉 2027 회계연도의 데이터를 처음부터 공시 품질로 수집해야 한다.
배출량과 기후 리스크 정보는 결산일에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1년 치 활동 데이터를 월별로 쌓아야 나오는 수치다.
결국 10조원 이상 기업의 실질적 준비 마감시한은 2027년 초, 늦어도 2026년 말 데이터 거버넌스 정비가 끝나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첫 의무공시가 2028년이라고 해서 시간이 2년 남았다고 읽으면 오산이다.
업종별로 난도는 크게 갈린다.
본지가 대상 기업군의 업종 분포를 살펴본 결과, 연결자산 상위에는 금융지주·은행·보험 같은 금융업, 전자·반도체·자동차 같은 대형 제조업, 정유·화학·철강 같은 고배출 장치산업이 뒤섞여 있다.
금융업은 자체 배출량은 적지만 투자·대출 포트폴리오에서 나오는 이른바 금융배출량이 관건이고, 제조업은 공급망 전반에 걸친 배출 추적이 핵심이다.
같은 10조원 기업이라도 어디에 데이터 공백이 뚫려 있는지가 전혀 다르다는 얘기다.
가장 무거운 짐은 Scope 3, 즉 협력사와 제품 사용 단계까지 포함하는 간접배출이다.
확정 로드맵은 Scope 3 공시를 원칙적으로 3년 유예해 2030 회계연도, 실제 공시로는 2031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산정 인프라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는 현실을 반영한 조치다.
정부는 유예기간에 한국형 기후리스크 통합 플랫폼과 업종별 Scope 3 산정 가이드라인, 배출계수 데이터베이스를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예측·추정 정보에 대한 세이프 하버, 즉 합리적 근거로 추정한 수치에 대해서는 책임을 완화해 주는 안전장치도 함께 검토된다.
다만 3년 유예를 준비 유예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게 본지의 결론이다.
Scope 3는 기업 전체 배출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우가 흔하고, 그 데이터는 수백~수천 곳의 협력사 손에 흩어져 있다.
협력사 데이터 수집 체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유예의 끝인 2031년에 맞춰 움직이면 늦고, 2028년 첫 공시에서 Scope 1·2를 정리하는 동안 병행해 Scope 3 공급망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깔아야 한다는 계산이다.
데이터체계 구축비용은 얼마나 드나
비용은 이 제도의 가장 불투명한 대목이다.
정부가 기업별 표준 구축비용을 공식 추계로 내놓은 바는 없다.
본지가 회계·컨설팅 업계의 실무 견적을 종합해 추정하면, 대형 상장사가 배출량 산정 시스템 도입, 내부통제 정비, 제3자 인증까지 갖추는 데 드는 초기·경상 비용은 기업 규모와 사업장 수에 따라 연간 수억원에서 수십억원대 범위로 벌어진다.
이는 어디까지나 범위 추정이며, 지주회사처럼 종속기업이 많고 해외 사업장이 넓은 구조일수록 상단에 가까워진다.
비용을 밀어 올리는 진짜 변수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인증과 내부통제다.
사업보고서 법정공시로 직행하면서, 공시 수치에는 재무제표에 준하는 신뢰성이 요구된다.
배출량 데이터의 출처와 산정 과정을 감사받을 수 있는 형태로 남겨야 하고, 이를 검증할 인증 시장도 함께 커야 한다.
인증의 독립성 문제가 벌써부터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데이터 시스템은 사면 되지만, 그 데이터를 신뢰할 만하게 만드는 조직과 절차는 사서 채우기 어렵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 일본·EU·미국은
한국의 설계는 국제적으로 보면 중간 지대에 서 있다.
이웃 일본은 2025년 3월 ��속가능성기준위원회 격인 SSBJ가 기준을 확정하고, 2027년 3월 결산부터 시가총액 약 3조엔 이상 프라임시장 상장사에 의무 적용한다.
이후 1조엔 이상(2028년 결산), 5천억엔 이상(2029년 결산)으로 넓힌다.
자산이 아니라 시가총액을 문턱으로 삼고, 상장 시장 안에서 대형사부터 적용한다는 점이 한국과 다르다.
적용 시점만 보면 한국의 2028년보다 한 해 빠르다.
유럽연합은 정반대 방향으로 방향을 틀었다.
비상장사까지 포함해 광범위하게 적용하려던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은 2025년 옴니버스 규제완화 논의를 거쳐, 2026년 3월 발효된 옴니버스 개정으로 적용 대상과 공급망 실사 의무가 대폭 축소됐다.
과속했던 규제를 되감은 셈이다.
미국은 연방 차원의 기후공시 의무화가 정권 교체 이후 사실상 후퇴하면서, 캘리포니아주 등 일부 주 단위 규제만 남았다.
세계가 확장 일변도에서 속도 조절로 돌아서는 국면에서, 한국은 문턱을 낮추면서도 확대 일정을 명문화하는 절충 노선을 택한 것이다.
이 국제 비교에서 본지가 주목하는 대목은 세 가지다.
첫째, 한국은 자산 기준을 쓰는 탓에 시가총액 기준을 쓰는 일본보다 금융·장치산업이 대상에 더 많이 걸린다.
둘째, EU가 후퇴하고 미국이 발을 빼는 사이, 한국·일본이 아시아에서 사실상 공시 표준의 이행 속도를 주도하게 됐다.
셋째, 세이프 하버와 3년 유예 같은 완충장치를 어느 나라나 두고 있으나, 결국 인증 신뢰성과 공급망 데이터 확보라는 두 병목은 공통적이라는 점이다.
규제의 문구는 나라마다 달라도, 기업이 실제로 넘어야 할 산은 비슷하다.
진단과 권고 —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본지가 로드맵과 공시기준, 국제 사례를 종합해 내린 진단은 이렇다.
이번 제도의 본질은 환경 규제가 아니라 회계 인프라의 확장이다.
지속가능성 정보가 사업보고서로 들어온 이상, 관건은 홍보용 보고서를 잘 쓰는 능력이 아니라 감사받을 수 있는 데이터를 만드는 능력이다.
준비의 성패는 결산 조직이 배출량 데이터를 재무 마감과 같은 규율로 다룰 수 있느냐에 달렸다.
그래서 남은 시간을 쓰는 순서를 세 가지로 권한다.
먼저 배출량 데이터의 거버넌스를 재무 결산 프로세스에 통합하는 일이 가장 급하다.
데이터의 수집·검증·승인 경로를 재무팀의 마감 절차에 준하도록 재설계해야 인증을 통과할 수 있다.
별도 지속가능성팀의 엑셀 작업으로는 법정공시의 신뢰성 요건을 감당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Scope 3 협력사 데이터 확보 체계를 유예기간에 선제적으로 깔아야 한다. 3년의 유예는 준비를 미루라는 신호가 아니라, 공급망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시행착오 속에 완성하라고 준 시간이다.
주요 협력사와의 데이터 표준·수집 주기·검증 방식을 지금 합의해 두지 않으면, 2031년 첫 Scope 3 공시는 추정치의 나열로 끝나기 쉽다.
끝으로 아직 의무 대상이 아닌 연결자산 5조·2조원 구간 기업도 자발적 시범공시로 학습곡선을 미리 확보하라는 것이다.
확정 로드맵은 2029년 5조원, 2030년 2조원 확대를 예고했다.
의무화가 임박한 뒤 급조하면 비용은 더 들고 품질은 더 낮다.
상위 기업의 첫 공시를 벤치마크 삼아 한두 해 앞서 연습한 기업이 결국 비용과 신뢰성 양쪽에서 앞선다는 게, 이미 제도를 시작한 나라들이 보여준 교훈이다.
검증 노트
본 기사는 2026년 9월 1일 기준으로 작성됐다.
확인에 사용한 1차·2차 자료는 다음과 같다.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의 제1호·제2호 공시기준 확정(2026년 2월 26일), 금융위원회의 지속가능성(ESG) 공시 로드맵 초안(2026년 2월) 및 확정안(2026년 여름), 삼일PwC·김·장 법률사무소의 제도 분석 자료, 아시아경제·이투데이·파이낸셜뉴스·비즈한국·한국경제 등의 보도, 일본 금융청과 SSBJ의 이행 로드맵, EU 옴니버스 개정 관련 공개 자료를 교차 확인했다.
대상 기업 수(2028년 291개사, 2029년 3171개사)와 자산 문턱(10조·5조·2조원), Scope 3 3년 유예(2031년 적용) 및 사업보고서 법정공시 직행은 확정 로드맵과 복수 보도로 확인했다.
데이터체계 구축비용은 공식 추계가 없어 업계 견적을 종합한 범위 추정이며 본문에 그 성격을 명시했다. 30조원은 초안 수치로, 현재 유효한 첫 문턱은 10조원임을 다시 확인한다.
기사 verdict: VERIFIED(1차 자료 교차 확인).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