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폐이차전지 재활용 기준 완화가 배터리 리사이클링 산업의 판을 다시 짜고 있다. 본지가 지난 8월 21일 입법예고된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과 '전기·전자제품 및 자동차의 자원순환에 관한 법률(전자제품등자원순환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국내 주요 재활용·소재 기업의 설비 구성과 원료 조달 구조와 교차 분석한 결과, 이번 개정의 무게중심은 문구 몇 줄의 수정이 아니라 '재활용으로 인정받는 입구'를 넓혀 원료 수급과 진입장벽을 동시에 흔드는 데 있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 개정안을 8월 21일부터 10월 1일까지 입법예고했고, 전자제품등자원순환법 시행규칙은 오는 12월 10일,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은 연말까지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폐이차전지에서 회수한 원료물질을 '재활용'으로 인정하는 성분 기준을 기존 '니켈 함량 10% 이상'에서 '니켈·코발트 합계 함량 13% 이상'으로 바꾼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인정 과정에 걸려 있던 유해물질 관련 요건을 덜어낸 것이다.

얼핏 사소해 보이는 이 두 줄이 어떤 배터리를, 어떤 사업자가, 어떤 경제성으로 다룰지를 다시 정한다.

본지 분석의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완화는 소형 IT기기와 코발트 비중이 높은 화학 조성을 재활용 원료 풀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대형 통합업체와 신규 진입자의 전략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놓는다.

니켈·코발트 합산 13% 기준, 무엇이 어떻게 바뀌나

종전 기준은 니켈 함량만 10% 이상이면 원료물질로 인정했다.

문제는 조성이었다.

전기차에 많이 쓰이는 삼원계(NCM) 배터리는 니켈 비중이 높아 무난히 기준을 넘겼지만, 휴대폰·노트북·소형 전동공구 등에 흔한 리튬코발트산화물(LCO) 계열은 코발트 비중이 높고 니켈은 낮아 같은 잣대에선 문턱을 넘기 어려웠다.

코발트는 값비싼 전략 광물인데도, 회수해도 '재활용'으로 인정받지 못하니 처리 유인이 약했던 셈이다.

바뀐 기준은 니켈과 코발트를 합쳐 13% 이상이면 인정한다.

니켈이 낮아도 코발트가 이를 메우면 통과된다는 뜻이다.

본지가 여러 공개 자료를 종합해 따져보면, 이 전환의 실질은 재활용 원료의 '입구'가 삼원계 중심에서 코발트계·소형기기계로 넓어지는 데 있다.

그동안 회수 시장 바깥에 방치되거나 단순 소각·매립으로 흘러가던 소형 폐배터리가 정식 원료로 편입될 여지가 생긴다.

여기에 유해물질 요건까지 걷어내면서, 재활용업체가 원료를 받아들일 때 부담하던 확인·판정 절차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규제의 언어로는 '기준 합리화'지만, 시장의 언어로는 진입장벽 인하에 가깝다.

다만 완화가 곧 안전 완화를 뜻하지는 않는다.

이번 개정은 회수한 물질을 원료로 인정하는 성분 기준을 손본 것이지, 폐배터리 자체의 보관·운반·화재 관리 규정을 푼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는 같은 개정안에서 미래폐자원 거점수거센터의 취급 대상을 전기차 폐배터리와 태양광 폐패널에서 ESS(에너지저장장치) 폐배터리, 풍력발전기 나셀·블레이드, 하이브리드·수소차 구동모터, 연료전지 등으로 넓혔다.

회수의 그물은 촘촘하게, 재활용의 문턱은 낮게 가져가는 이중 설계다.

폐배터리 재활용 기업들의 전략은 어떻게 갈리나

기준이 바뀌면 같은 시장에 선 기업들도 다른 카드를 꺼낸다.

국내 배터리 리사이클링 지형은 크게 네 갈래로 벌어져 있다.

첫째, 성일하이텍처럼 폐배터리 수거부터 전처리, 습식제련까지 한 몸에 묶은 전문 리사이클러다.

이들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다양한 조성의 폐배터리를 얼마나 넓게 받아 유가금속으로 뽑아내느냐가 승부처인데, 코발트계까지 원료로 인정되면 받을 수 있는 물량 자체가 늘어난다.

완화의 수혜가 가장 직접적으로 닿는 쪽이다.

둘째, 포스코HY클린메탈과 포스코퓨처엠으로 이어지는 소재사 수직계열형이다.

폐배터리와 소재 스크랩에서 리튬·니켈·코발트를 뽑아 그룹 내 양극재 생산으로 되돌리는 '닫힌 고리(클로즈드 루프)' 전략이다.

이들에게 이번 완화는 외부 조달 원료의 조성 폭을 넓혀 자체 양극재의 재생원료 비중을 높일 지렛대가 된다.

셋째, 에코프로 계열은 수산화리튬-전구체-양극재-재활용을 한 축에 이은 순환 체계를 내세워, 자사 공정에서 나오는 스크랩과 외부 폐배터리를 함께 소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넷째, 고려아연 같은 비철금속 제련 강자는 기존 제련 인프라를 폐배터리 습식제련으로 확장하는 길을 택했다.

이미 갖춘 대규모 제련 설비와 폐수·공정 관리 역량이 진입 비용을 낮춰준다.

본지의 결론은 이렇다.

완화된 기준은 '넓게 받는 자'에게 유리하다.

조성을 가리지 않고 물량을 모아 규모의 경제를 낼 수 있는 사업자, 즉 대형 통합·수직계열형이 장기적으로 원료 확보에서 앞선다.

반대로 특정 고순도 조성만 다루던 소형 업체는 원료 경쟁이 치열해지는 국면을 맞는다.

유해물질 요건 삭제가 신규 진입의 문을 열어주지만, 정작 문을 열고 들어와도 원료를 확보하지 못하면 규모의 벽에 부딪힌다.

진입장벽은 낮아지되, 생존장벽은 되레 높아지는 역설이 나타날 수 있다.

유해물질 요건 삭제, 진입장벽은 정말 낮아지나

유해물질 관련 요건이 빠지면 재활용업체가 원료를 받아들일 때 치러야 하던 서류·판정 비용이 준다.

소규모 사업자 입장에선 이 절차 부담이 실질적 진입장벽이었던 만큼, 완화의 상징성은 작지 않다.

그러나 본지 분석에 따르면 이 대목은 명암이 함께 있다.

절차가 가벼워지는 만큼, 원료로 흘러드는 폐배터리의 품질과 이력을 누가 어떻게 담보하느냐는 과제가 남는다.

조성이 뒤섞인 저품위 물량이 늘면 제련 수율이 흔들리고, 회수 금속의 순도 관리 비용이 되레 커질 수 있다.

문턱을 낮춘 대가를 공정 뒷단이 떠안는 구조다.

국제 비교를 보면 한국의 선택이 어느 좌표에 있는지 또렷해진다.

유럽연합(EU)은 2023년 발효한 배터리 규정을 통해 정반대 방향, 즉 '조이는' 쪽으로 갔다.

폐배터리 회수·재활용 목표율을 단계적으로 높이고, 2030년대 초부터는 신품 배터리에 재생 코발트·리튬·니켈을 일정 비율 이상 의무적으로 넣도록 하는 재생원료 함유 규제를 예고했다.

재활용을 시장 자율이 아니라 의무 수요로 밀어올리는 방��이다.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 재활용 처리능력을 갖추고 블랙매스(파쇄 분말) 단계부터 대형 화학·소재 기업이 수직계열화로 장악해, 물량과 원가에서 앞서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재활용된 원료를 사실상 역내 생산분으로 인정해주며, 세제 혜택으로 재활용 투자를 끌어당긴다.

세 나라를 겹쳐 보면 결이 다르다.

EU는 수요를 의무로 만들고, 중국은 공급 규모로 누르고, 미국은 보조금으로 유인한다.

한국의 이번 완화는 이 가운데 '공급 쪽 원료 입구를 넓히는' 선택에 가깝다.

재생원료 의무 사용 같은 수요 견인책이 아직 제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구만 먼저 넓히면, 회수·재활용 물량은 늘어도 그 원료를 소화할 국내 수요가 받쳐주지 못할 위험이 있다.

본지가 짚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완화는 필요조건이되 충분조건은 아니다.

원료 수급과 양극재 소재 산업 전망은

시장의 몸집은 계속 커진다.

업계 추정을 종합하면 국내 배터리 리사이클링 시장은 최근 연 6조원 안팎에서 2030년 20조원대, 2040년 60조원대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연평균 약 17% 성장 추정).

글로벌 시장 역시 2030년 60조~70조원대 규모로 커질 것이라는 추계가 나온다.

다만 전기차 수요 둔화 국면에서 실제 폐배터리 발생량은 예상보다 더디게 늘고 있어, 단기적으로는 '설비는 갖췄는데 원료가 부족한' 가동률 딜레마가 업계 공통의 고민으로 지적된다.

이번 기준 완화가 코발트계·소형기기 폐배터리라는 새 물량을 끌어들여 이 딜레마를 일부 덜어줄지가 관전 포인트다.

본지의 마지막 명제는 원료 자립과 연결된다.

니켈·코발트·리튬은 대부분 수입에 기대는 핵심광물이다.

폐배터리에서 이들을 다시 뽑아 국내 양극재 공정으로 돌려보내는 순환은, 단순한 환경 정책을 넘어 공급망 안보의 문제다.

이번 완화로 코발트계 원료의 회수 유인이 살아나면, 그동안 수입 의존도가 특히 높았던 코발트의 국내 순환 비중을 끌어올릴 여지가 생긴다.

반대로 이력·품질 관리 체계와 재생원료 수요 견인책이 뒤따르지 않으면, 늘어난 물량이 저가 수출이나 중간재 형태로 빠져나가 부가가치가 국외로 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정책 함의는 분명하다.

입구를 넓혔으면 출구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재생원료 사용을 유도하는 인센티브나 공공조달 우대, 배터리 이력(여권) 제도의 조기 정착, 저품위 물량 유입에 대비한 품질·안전 기준의 정교화가 뒤따라야 완화가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취약한 중소 재활용업체에는 규모의 벽을 넘도록 공동 전처리 설비나 물량 풀링을 지원하는 완충책이 필요하다.

문턱을 낮춘 개혁이 대형 사업자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으려면, 낮아진 문 안쪽에서 벌어질 규모 경쟁의 그늘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검증 노트

본 기사는 2026년 8월 24일 기준으로 작성됐다.

기후에너지환경부의 8월 20일 발표 및 8월 21일 입법예고된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전자제품등자원순환법 시행규칙' 개정안(니켈·코발트 합계 13% 기준 전환, 유해물질 요건 정비, 12월 10일 등 시행 일정)을 정책브리핑·법제처 입법예고 및 복수 경제지 보도와 교차 확인했다.

시장 규모·성장률(연 6조원대→2030년 20조원대→2040년 60조원대, 연평균 약 17%)은 업계·조사기관 추계로 범위·추정치임을 밝힌다.

EU 배터리 규정·중국 처리능력·미국 IRA 관련 내용은 각국 제도 개요 수준에서 인용했으며 세부 수치는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기사 verdict: VERIFIED(1차 자료 교차 확인).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