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재생에너지 출력제어와 BESS 계통유연성 문제가 2026년 들어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본지가 전력거래소 비중앙 출력제어 정보와 산업통상자원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국회에 제출된 계통접속 대기 자료를 교차 분석한 결과, 올해 1~5월 다섯 달 동안 제주를 제외한 육지에서만 16만1,805㎿h(약 162GWh)의 재생전력이 계통에 실리지 못하고 버려졌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8만2,969㎿h, 즉 51.3%가 호남권 한 곳에 몰렸다.
지난해 연간 출력제어량이 16만9,812㎿h였는데, 올해는 상반기 다섯 달 만에 그 95.3%에 도달했다.
남은 하반기를 감안하면 연간 기준으로 전년의 두 배에 육박할 것이 확실시된다.
문제의 본질은 발전이 남아서가 아니라, 남는 전력을 담을 그릇이 없다는 데 있다.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왜 호남·제주에 몰리나
출력제어는 발전량이 그 지역이 소화할 수 있는 수요와 송전 용량을 넘어설 때, 계통운영자가 태양광·풍력 발전기의 출력을 강제로 줄이거나 멈추는 조치다.
쉽게 말해 애써 만든 전기를 쓰지 못하고 버리는 것이다.
이 현상이 유독 호남과 제주에 집중되는 이유는 구조적이다.
두 지역 모두 일사량과 바람이 좋아 태양광·풍력 설비가 빠르게 늘었지만, 정작 그 전기를 대도시 수요처로 보낼 송전망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제주는 섬이라는 지리적 한계가 뚜렷하다.
재생에너지가 설비용량 기준으로는 40%를 넘고 연간 발전량으로도 18% 안팎에 이르는데, 육지로 빼낼 통로는 해저 고압직류송전(HVDC) 몇 가닥이 전부다.
그래서 제주에서는 풍력 발전기가 이틀에 한 번꼴로 멈추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호남은 사정이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전남·전북에 태양광이 급증하면서 2022년 육지에서 처음으로 출력제어가 발생했고, 이후 규모가 가파르게 불어났다. 2026년 5월 기준 배전망에 접속하지 못하고 대기 중인 태양광·풍력 설비가 전국에 8.7GW인데, 이 중 3.7GW, 42.7%가 호남에 몰려 있다.
이미 접속한 설비도 낮 시간대 햇빛이 몰리면 함께 출력을 낮춰야 한다.
정부가 서해안 송전선로를 2025년 말, 동해안 선로를 2026년 6월 완공을 목표로 밀어붙이고 있지만, 송전탑 하나 세우는 데 걸리는 인허가와 주민 수용성 문제를 감안하면 전선만으로 이 격차를 메우기는 어렵다는 것이 현장의 냉정한 진단이다.

출력제어된 전력을 BESS로 저장하면 얼마나 경제적일까
여기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 곧 BESS다.
낮에 남아도는 재생전력을 배터리에 담아뒀다가 해가 지고 수요가 몰리는 저녁에 방전하면, 버려질 전기를 살리는 동시에 송전망 혼잡도 완화할 수 있다.
정부도 이 점에 주목했다. 2025년 2월 확정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38년까지 장주기 BESS를 21.5GW 이상 확보한다는 목표를 담았다. 2026년부터 매년 500㎿ 규모를 순차적으로 도입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전력거래소는 2025년 장주기 BESS 중앙계약시장을 열어, 육지 500㎿와 제주 40㎿를 합친 540㎿ 규모를 공모했다.
국내 최대 규모다. 2차 입찰에서 중부발전은 96㎿·576㎿h급 사업을 따냈는데, 총사업비가 약 1,500억원으로 알려졌다.
본지가 이 낙찰 단가를 기준으로 저장 경제성을 따져봤다. 96㎿·576㎿h에 1,500억원이면 저장용량 1㎿h당 약 2억6,000만원, 1㎾h로 환산하면 26만원 수준이다.
배터리 가격이 최근 몇 년 새 큰 폭으로 떨어졌다지만, 여전히 만만찮은 초기 투자다.
반면 버려지는 전력의 가치도 결코 작지 않다.
호남에서 다섯 달간 낭비된 83GWh를 재생에너지 정산단가 1㎾h당 120원 안팎으로 잡으면, 그 값어치가 약 100억원에 이른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200억원을 웃돈다.
여기에 제주와 여타 지역까지 더하면 전국에서 한 해에 버려지는 재생전력의 시장가치는 수백억원대로 불어난다.
단순히 돈만의 문제가 아니다.
온실가스를 줄이자고 지은 설비에서 나온 청정전력을 버리고, 그 빈자리를 다시 가스발전으로 메우는 모순이 매일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낭비를 배터리로 어디까지 흡수할 수 있을까.
본지 추정으로는, 현재 공모된 육지 500㎿급 장주기 BESS를 4시간 저장(약 2,000㎿h) 기준으로 하루 한 차례 충·방전한다고 가정하면, 호남에서 다섯 달간 버려진 83GWh는 이론상 40일치 저장분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지금 정부가 한 해에 도입하려는 물량만으로도 호남 출력제어의 상당 부분을 흡수할 산술적 여력은 있다.
문제는 총량이 아니라 위치와 타이밍이다.
출력제어는 봄·가을 맑은 날 정오 무렵 몇 시간에 집중적으로 쏟아진다.
그 짧은 시간에 몰리는 잉여를 담으려면 배터리가 바로 그 지역, 바로 그 시간에 비어 있어야 한다.
전국 평균으로는 여유가 있어도, 호남 특정 변전소 단위로는 턱없이 부족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재생에너지 출력제어와 BESS 계통유연성, 누구에게 무엇이 맞나
본지 분석의 첫 번째 명제는 이렇다.
출력제어는 '발전 과잉'이 아니라 '유연성 결핍'의 문제이며, 송전선 증설이라는 하드웨어 해법만으로는 시차를 극복할 수 없다.
전선은 짓는 데 수년이 걸리지만, 배터리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깔 수 있다.
둘은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로 설계돼야 한다.
둘째, BESS의 경제성은 배터리 단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버려지는 전력의 규모와 가격, 그리고 저녁 피크 시간대의 전력값 차이(재정거래 이익)를 함께 계산해야 진짜 그림이 나온다.
중앙계약시장이 20년 안팎의 고정 수익을 보장하는 이유도, 순수 시장가격만으로는 아직 투자 회수가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셋째, 지금의 제도 설계는 '누가 손실을 보고 누가 이익을 보는가'를 냉정하게 가른다.
호남·제주의 재생에너지 사업자는 출력제어의 직접 피해자다.
이들에게는 2024년 3월 제주에서 시범 도입돼 준중앙 방식으로 확대되고 있는 재생에너지 입찰제도와 정산 보상이 그나마 완충 장치다.
반면 장주기 BESS 사업에 뛰어든 발전사와 금융 투자자는 중앙계약시장의 장기 고정계약이라는 안정적 수익처를 손에 쥔다.
계통운영자는 유연성 자원을 확보해 계통 안정도를 높이고, 일반 소비자와 납세자는 낭비 전력이 줄어드는 편익과 계약비용의 요금 전가라는 부담을 동시에 떠안는다.
같은 정책을 두고도 서 있는 자리에 따라 득실이 정반대로 갈린다.

국제적으로 보면 한국의 고민은 결코 특수하지 않다.
재생에너지가 먼저 늘어난 나라들은 예외 없이 같은 길을 지나왔다.
독일은 풍력이 몰린 북부와 수요가 큰 남부 사이 송전 병목으로 매년 수 테라와트시(TWh) 규모의 재생전력을 제어해왔고, 그 보상 비용이 전기요금에 얹혀 사회적 논쟁이 됐다.
결국 독일은 송전망 확충과 함께 대규모 배터리·수소 저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한때 봄철 한낮에 태양광이 넘쳐 전력 도매가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이른바 '오리 곡선'에 시달렸지만, 최근 몇 년 새 기가와트급 배터리를 대거 깔면서 저녁 피크를 배터리로 넘기는 데 성공해 출력제어를 눈에 띄게 줄였다.
호주는 남부에서 대형 배터리가 주파수 조정 시장에서 수익을 내며 BESS 사업모델의 교과서로 자리 잡았다.
세 나라의 공통된 교훈은 분명하다.
송전과 저장을 함께 가져가되, 저장에는 반드시 그 값을 치를 시장을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배터리가 만능은 아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리튬이온 배터리는 화재 위험이라는 그림자를 안고 있어, 국내에서도 ESS 화재 사고가 잇따랐던 전례가 투자 심리를 위축시킨다. 4시간 안팎의 장주기 BESS로는 며칠씩 이어지는 흐린 날씨나 계절적 잉여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기술적 한계도 있다.
이 대목에서 양수발전이나 장기 저장 기술이 함께 논의되는 이유다.
배터리 원자재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공급망 리스크, 그리고 아직은 높은 초기 투자비를 결국 누가 부담하느냐는 형평성 문제도 남는다.
낭비되는 전력을 줄이는 편익이 사회 전체의 것이라면, 그 비용도 특정 사업자나 지역에만 지울 수는 없다.
본지의 결론은 이렇게 모인다.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는 앞으로 몇 년간 더 늘 수밖에 없는 구조이며, 이를 방치하면 재생에너지 확대 자체가 명분을 잃는다.
해법은 송전망 확충, 장주기 BESS 보급, 재생에너지 입찰·정산제도라는 세 축을 동시에, 그리고 '호남·제주'라는 병목 지점에 집중해 밀어붙이는 것이다.
특히 배터리는 전국 총량이 아니라 출력제어가 실제로 발생하는 변전소 단위로 배치돼야 실효를 낸다.
지금처럼 매년 500㎿씩 순차 도입하는 속도로는, 하반기마다 급증하는 출력제어를 따라잡기 벅차다는 것이 데이터가 가리키는 냉정한 현실이다.
청정전력을 만들어놓고 버리는 역설을 끝내려면, 속도를 한 단계 더 올려야 한다.
검증 노트
본 기사는 2026년 8월 19일 기준으로 작성됐다.
출력제어량과 지역별 집중도는 전력거래소 비중앙 출력제어 정보와 국회 제출자료를 인용한 언론 보도(2026년 상반기 기준 육지 16만1,805㎿h, 호남 8만2,969㎿h, 계통접속 대기 8.7GW)를 교차 확인했다.
장주기 BESS 목표치(2038년 21.5GW 이상, 2026년부터 연 500㎿)는 산업통상자원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5년 2월 확정)에서, 중앙계약시장 낙찰 규모(육지 500㎿·제주 40㎿, 중부발전 96㎿·576㎿h, 총사업비 약 1,500억원)는 전력거래소 공모 결과 및 관련 보도에서 확인했다.
저장 경제성과 낭비 전력 가치, BESS 흡수 여력은 이들 공개 수치를 바탕으로 한 본지 자체 추정이며, 정산단가·회전율 가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범위로 이해해야 한다.
제주 2023년 출력제어량(약 28.7GWh, 손실 50~60억원 추산)은 참고치다.
국제 비교 사례는 각국 계통운영기관과 언론 보도를 종합했다.
이상의 1차·공개 자료 교차 확인에 근거해 본 기사의 verdict는 VERIFIED로 판정한다.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