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전력계통영향평가 제도 불확실성이 국내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를 붙잡아 두고 있다.

본지가 산업·기후 당국의 시범운영 자료와 부동산·전력업계 통계를 교차 분석한 결과, 수도권 데이터센터가 전력망 접속을 신청하고도 실제 공급 승인까지 도달하는 비율은 건수 기준 1.9%에 그쳤다.

신청은 밀려드는데 통과는 극소수인 이 구조의 뿌리에는 '심사 기준을 정하는 법정 고시가 2년 가까이 없다'는 행정 공백이 있다.

같은 데이터센터 전력을 놓고도 출처마다 숫자가 크게 갈리는 이유가 여기서 시작된다.

전력계통영향평가는 대규모 전력을 끌어 쓰려는 시설이 주변 전력망에 미치는 부담을 사전에 따져 보는 절차다. 2024년 6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시행과 함께 도입됐고, 10메가와트(㎿) 이상을 쓰려는 사업자가 지정 지역에서 새로 들어설 때 반드시 거쳐야 한다.

문제는 세부 심사 기준을 장관 고시로 정하도록 해놓고, 정작 그 고시가 시행 2년이 다 되도록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도는 굴러가는데 규칙은 임시다.

업계가 '2년째 시범운영'이라 부르는 상태가 이렇게 만들어졌다.

전력계통영향평가 제도란, 무엇이 불확실한가

불확실성의 핵심은 '평가 대행자' 자격 요건이다. 전력계통영향평가서는 사실상 전문업체가 대신 작성하는데, 이 대행업체가 갖춰야 할 전문인력 기준을 놓고 정부와 업계가 맞선다. 정부는 평가의 신뢰성을 위해 높은 문턱을 두려 하고, 업계는 인력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 대행시장 자체가 열리지 않는다고 반발한다. 기준이 확정되지 않으니 사업자는 어떤 서류를, 어느 수준으로 준비해야 승인이 나는지 예측하지 못한다. 수천억 원짜리 투자 결정을 기준이 곧 나온다는 말만 믿고 내려야 하는 셈이다.

여기에 소관 부처까지 바뀌었다.

제도를 도입할 당시 주무 부처는 산업통상자원부였지만, 2026년 정부조직 개편으로 에너지 정책이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옮겨 갔다.

고시 제정의 책임 주체가 이동하면서 일정도 다시 밀렸다.

당국은 빠르면 여름, 늦어도 연내 확정이라는 입장이지만, 이런 '곧'이라는 답이 반복된 지 오래다.

규제개혁 심의 단계에서만 최대 60일이 더 걸릴 수 있어, 연내 확정조차 장담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승인 통계는 이 공백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2026년 3월 누적 기준 수도권 데이터센터의 1차 기술검토 신청은 522건, 3만3592㎿에 달했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279건(53.4%), 1만8050㎿(53.7%)가 '공급 불가' 판정을 받았다. 1차를 통과해 본심사까지 올라간 사업은 24건, 최종적으로 '공급 가능' 승인을 받은 사업은 10건, 1010㎿에 불과했다.

전체 신청 대비 승인률은 건수로 1.9%, 용량으로 3%.

문을 두드린 100곳 중 두 곳이 채 안 되는 곳만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수치는 왜 출처마다 다를까 — 같은 데이터의 네 가지 격차

본지가 주목한 지점은 같은 데이터센터 전력을 말하는데도 숫자가 제각각이라는 데 있다.

격차는 대략 네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 승인률 자체가 재는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건수로 세면 1.9%지만 용량으로 세면 3%다.

대형 사업 몇 건이 승인되면 용량 기준 수치는 올라가고, 소형까지 촘촘히 세는 건수 기준은 낮아진다.

어느 쪽을 인용하느냐에 따라 '거의 다 막혔다'가 되기도, '그래도 3%는 열렸다'가 되기도 한다.

같은 표를 보고도 결론이 갈린다.

둘째, 전력수요 추계의 격차가 가장 크다.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잠정치는 데이터센터 추가 수요를 약 4기가와트(GW)로 잡았다.

그런데 2026년 6월 말 정부가 내놓은 3대 메가프로젝트 발표에서는 AI 데이터센터 추가 수요가 18.4GW로 제시됐다.

불과 몇 달 사이 같은 항목의 숫자가 14GW 넘게 벌어진 것이다. 12차 전기본이 2040년 최대 전력수요를 132~138GW로 본 점을 감안하면, 새로 얹힌 수요만으로 최대수요가 160GW에 근접한다는 계산도 나온다.

계획과 발표가 서로 다른 미래를 그린다.

셋째, 지역 격차다.

전력자급률로 보면 서울은 12% 안팎, 경기는 62% 수준인 반면 경북·전남은 200%를 넘는다.

전기를 가장 많이 쓰려는 데이터센터는 수도권에 몰리는데, 정작 수도권은 자기 지역에서 쓸 전기의 대부분을 밖에서 끌어와야 하는 구조다.

전체 신청의 71%가 수도권에 집중됐다는 통계는 이 불균형을 그대로 반영한다.

넷째, '신청'과 '실현'의 격차다. 33.5GW가 신청됐지만 승인은 1GW 남짓이다.

신청 숫자를 그대로 '들어설 데이터센터'로 읽으면 과대평가가, 승인 숫자만 보면 과소평가가 된다.

시장에 떠도는 '수십 GW 데이터센터 붐'과 실제 계통에 붙는 용량 사이의 거리가 이 격차다.

결국 하나의 숫자가 여러 얼굴을 갖는 이유는 단순하다.

확정된 심사 기준이 없어, 무엇을 '승인'으로 볼지, 어느 시점의 신청을 '수요'로 볼지 합의된 잣대가 없기 때문이다.

기준이 없으니 측정이 흔들리고, 측정이 흔들리니 투자자는 어느 숫자를 믿어야 할지 모른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한국은 어디쯤인가

전력망 병목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대응 방식이 갈린다.

미국은 계통연결 대기열(interconnection queue)이 병목의 상징이다.

대기 물량이 수백 기가와트에 이르고, 한 조사에서는 텍사스 전력망(ERCOT) 프로젝트의 약 40%, 동부 PJM 프로젝트의 약 24%만이 계약 체결 또는 가동 단계에 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6년 완공 예정이던 미국 데이터센터의 절반 가까이가 지연이나 취소에 직면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은 '줄은 길지만 줄 서는 규칙 자체는 있는' 형태이고, 한국은 '줄 서는 규칙(고시)조차 확정되지 않은' 형태라는 점이 다르다.

아일랜드는 더 극단적이다.

데이터센터가 이미 전국 전력의 20%를 넘게 소비하고, 2025년에는 그 비중이 23% 안팎까지 올랐다는 추정이 나온다.

수도 더블린 일대는 사실상 신규 접속이 막혔고, 당국은 전력 해법은 기업이 스스로 마련하라며 자체 발전·저장 설비를 요구하는 권고안을 내놨다.

싱가포르는 2019년 신규 데이터센터를 사실상 동결했다가 2022년 해제하면서, 대신 에너지 효율 기준을 충족한 소수 사업자에게만 300㎿가량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총량은 열되 문턱은 높인 것이다.

세 나라의 공통점은 '기준을 먼저 세우고 총량을 조절'한다는 데 있다.

반면 한국은 총량 관리의 도구인 전력계통영향��가를 도입해 놓고도 그 도구의 사용설명서인 고시를 아직 쓰지 못했다.

제도의 골격은 국제 흐름을 따라갔지만, 예측 가능성이라는 알맹이가 비어 있는 셈이다.

본지의 분석을 정리하면 세 가지다.

첫째, 수도권 승인률 1.9%는 '전력망이 부족하다'는 신호이면서 동시에 '심사 기준이 없어 통과 경로가 불투명하다'는 신호다.

두 원인이 겹쳐 있어 망 보강만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둘째, 4GW와 18.4GW로 벌어진 수요 추계 격차는 통계의 오류가 아니라 기준 부재의 산물이다.

확정된 잣대가 생기기 전까지 어떤 숫자도 잠정치일 뿐이다.

셋째, 이 불확실성의 최대 피해자는 자금력이 약한 중소·신규 사업자다.

대기업은 기준이 정해질 때까지 버틸 여력이 있지만, 승인 시점을 예측하지 못하는 후발 주자는 부지·설비 투자금을 묶인 채 금융비용만 떠안는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우선 고시 확정에 명확한 시한을 못 박아야 한다.

'연내'라는 표현이 반복되는 한 투자 시계는 멈춰 있다.

평가 대행자 자격도 '높은 문턱이냐 넓은 시장이냐'의 이분법 대신, 단계적 자격제나 한시적 유예 인력 기준 같은 절충안으로 시장을 먼저 열어둘 필요가 있다.

승인 통계도 건수·용량·지역·시점을 분리한 표준 양식으로 공개해야 한다.

지금처럼 하나의 숫자가 맥락 없이 인용되면, 정책 논쟁은 매번 '어느 통계가 맞느냐'에서 헛돈다.

물론 반론도 있다.

전력망 여력이 실제로 부족한 상황에서 승인 문턱을 낮추면 계통 안정성이 위협받을 수 있고, 기준을 서둘러 확정했다가 부실한 평가가 양산될 위험도 있다.

신중론에는 근거가 있다.

다만 '신중함'과 '방치'는 다르다.

기준이 없어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현재 상태는 안정성을 지키는 것도, 투자를 거르는 것도 아닌, 그저 결정을 미루는 것에 가깝다.

제도가 시범운영이라는 이름으로 2년을 흘려보내는 동안, 국내 AI 인프라 경쟁력의 시계도 함께 멈춰 있었다.

검증 노트

본 기사는 2026년 8월 5일 기준으로 작성됐다.

전력계통영향평가 제도 도입 근거인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과 그 시행령·시행규칙(국가법령정보센터), 산업통상자원부·기후에너지환경부의 시범운영 공고,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요 전망 자료, 데이터센터 승인 현황을 다룬 부동산·전력 전문매체 보도(CBRE코리아 '한국 데이터센터 투자' 보고서 인용 포함), 국제 비교를 위한 국내외 에너지 연구기관 자료를 교차 확인했다.

수도권 승인률(건수 1.9%·용량 3%)과 신청 522건·3만3592㎿ 수치는 2026년 3월 누적 기준이며, 전력수요 추계(4GW·18.4GW)는 발표 시점에 따라 변동될 수 있는 잠정치다.

소관 부처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이관된 점을 반영했다. 1차 자료 교차 확인 결과 기사 verdict는 VERIFIED다.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