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국가기간전력망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송전망 병목은 여전히 뚫리지 않고 있다. 본지가 한국전력·전력거래소·산업통상자원부의 공개 자료를 교차 분석한 결과, 충남 북당진과 아산 신탕정을 잇는 345㎸ 송전선로 단 한 구간에서 공사 지연으로 발생한 손실만 1조1727억원에 달했다. 2003년 첫 삽을 뜬 이 사업은 애초 2012년 준공을 목표로 했으나 무려 150개월, 햇수로 21년이 지난 지난해에야 비로소 전기를 흘려보냈다. 특별법이라는 제도적 처방이 뒤늦게 나왔지만, 이미 굳어진 병목의 청구서는 지금도 소비자와 발전사에게 나뉘어 날아오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발전소는 늘어나는데 그 전기를 실어 나를 길이 제때 깔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서해안에는 화력과 재생에너지 발전이 몰려 있는데, 정작 이 전기를 수요가 밀집한 수도권으로 보낼 고속도로가 부실하다.

그 결과 값싼 석탄 대신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돌려 수도권 수요를 맞추는 일이 반복됐다.

북당진~신탕정 선로가 21년 만에 준공되면서 약 1.3GW의 송전제약이 풀렸고, 전력 구매비용도 연간 최대 35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뒤집어 말하면, 선로 하나가 늦어지는 동안 매년 그만한 돈이 허공으로 새어 나갔다는 뜻이다.

국가기간전력망 특별법 송전망 병목, 시행에도 왜 안 풀리나

정부와 국회의 진단은 명확했다. 2025년 2월 확정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4~2038)은 2038년까지 태양광·풍력 설비가 지금보다 352% 늘어난다고 봤고, 이를 감당할 송·변전 설비 확충에만 약 72조8000억원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이 막대한 투자를 빠르게 집행하기 위한 장치가 바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다.

이 법은 2025년 3월 25일 공포돼 같은 해 9월 26일 시행됐다.

특별법 이전에는 송전선로 하나를 놓는 데 입지 선정과 인허가에만 10년이 넘게 걸렸다면, 시행 이후에는 인허가 의제 처리와 주민 지원 확대, 도로·전력망 동반 건설 같은 특례가 도입됐다.

실제로 특별법에 근거해 송·변전 사업 99건이 국가기간전력망시설로 지정됐고, 지난해 10월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제1차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위원회가 처음 열렸다.

그럼에도 병목은 현재진행형이다.

법이 시행된다고 이미 착공한 선로가 하루아침에 빨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 밀집지인 전남에서 계통 혼잡으로 발전기를 강제로 멈춰 세우는 출력제어는 2023년 2회에서 2024년 27회, 2025년에는 82회로 불과 2년 만에 40배 넘게 급증했다.

전기를 만들어도 실어 나를 길이 없어 버리는 것이다.

한전이 전남 무안~신안을 잇는 154㎸ 송전망(운남~신안~읍동, 52㎞)을 준공하며 숨통을 틔웠지만, 대동맥 격인 초고압 직류송전(HVDC) 서해안 사업은 이제 시작 단계다.

송전망 병목 앞에서 갈라지는 5개 사업자의 셈법

같은 병목을 마주해도 사업자마다 대응 전략은 극명하게 갈린다.

본지가 각 주체의 투자 계획과 손익 구조를 짚어 본 결과, 크게 다섯 갈래의 분기가 나타난다.

첫째, 송전망을 직접 까는 한국전력은 '속도전'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전은 2026년 송·변전 투자비를 9조6000억원으로 대폭 늘리고, 서해안 HVDC 등 이른바 에너지 고속도로를 앞당겨 호남권 재생에너지 수용용량을 12GW에서 39GW로 세 배 이상 키우기로 했다. 서해안 HVDC는 525㎸급 해저 선로 4개를 2030년부터 2038년까지 단계적으로 놓는 사업으로, 총연장 1070㎞에 송전용량 8GW, 사업비만 12조2000억원에 이른다. 다만 재무구조가 취약한 한전에 이 막대한 투자는 기회이자 부담이다.

둘째, 서해안의 석탄·LNG 발전사는 병목의 직접적 피해자다. 선로가 막혀 발전제약이 걸리면 값싼 석탄 설비를 세우고, 그 빈자리를 상대적으로 비싼 LNG가 메운다. 북당진~신탕정 손실 1조원대의 상당 부분이 이렇게 발생했다. 이들에게 선로 준공은 가동률 회복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탈석탄 흐름 속에서 좌초자산 위험도 함께 계산해야 한다.

셋째, 호남·전남의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는 가장 절박하다. 접속을 신청해도 계통이 없어 몇 년씩 대기하고, 어렵게 연결해도 출력제어로 발전량을 강제로 깎인다. 한전이 2026년부터 출력제어 조건부 접속제도, 허수·지연 사업자 관리 강화, ESS 연계 신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도 이 병목을 관리하려는 고육책이다. 사업자로서는 '일단 접속권부터 확보하자'는 물량 경쟁과 '계통이 열린 곳만 고르자'는 선별 투자로 전략이 양분되고 있다.

넷째, 수도권의 데이터센터·반도체 등 첨단산업 수요기업은 전력 조달 자체가 입지 전략이 됐다. 전기가 남아도는 남부에서 만들어도 수도권으로 실어 올 길이 없으니, 아예 발전원 인근으로 시설을 옮기거나 자체 전력계약(PPA)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병목이 산업 지도를 바꾸는 셈이다.

다섯째, ESS·HVDC 기자재 기업에는 병목이 곧 시장이다. 정부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국비 5586억원을 투입해 ESS 기반 계통운영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고, HVDC 국산화에도 속도를 낸다. 병목 해소 그 자체가 신성장 산업으로 떠오른 것이다.

송전망 병목, 독일·미국·영국과 비교하면

송전망 병목은 한국만의 병이 아니다.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늘린 나라일수록 같은 홍역을 앓는다.

독일이 대표적이다.

북부 풍력 전기를 남부 산업지대로 보낼 선로가 부족해, 북쪽 풍력을 멈추고 남쪽 화력을 대신 돌리는 재급전(redispatch)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었다.

독일의 계통혼잡관리 비용은 2023년 기준 약 23억 유로에 달했고, 그해 계통 부족으로 버려진 전력만 약 19테라와트시로 전체 발전량의 4%가량으로 추정된다.

한국보다 앞서 에너지 전환에 나선 나라조차 선로가 발전을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미국은 다른 결의 병목이다.

발전소를 계통에 연결하려는 접속 대기(interconnection queue) 물량이 수천 기가와트 규모로 쌓여, 접속에만 수년이 걸린다.

노후 선로와 주(州) 사이 인허가 갈등이 발목을 잡는다.

영국은 바람 부는 스코틀랜드의 풍력을 잉글랜드로 보낼 길이 좁아, 풍력을 세우고 그 대가를 지불하는 제약비용(constraint payment)이 매년 늘고 있다.

세 나라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발전 확대 속도를 송전망이 따라가지 못하면, 그 격차는 반드시 비용으로 청구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특별법은 ��로 이 시차를 줄이려는 뒤늦은 대응인 셈이다.

이 지점에서 본지는 세 가지 명제를 제시한다. 첫째, 특별법은 미래의 병목을 줄일 뿐 이미 발생한 손실을 되돌리지 못한다. 북당진~신탕정의 1조원대 청구서가 보여주듯, 지연 손실은 선로가 늦어진 그 기간에 이미 확정된다. 특별법 시행 효과는 앞으로 착공할 99개 사업에서 나타날 뿐, 진행 중인 사업의 지연분은 고스란히 남는다.

둘째, 병목의 진짜 비용은 요금과 세금으로 분산돼 잘 보이지 않는다. 값비싼 LNG 대체 발전, 출력제어로 버려지는 재생에너지, 그리고 72조원대 투자 재원은 결국 전기요금과 국비로 회수된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 등에서 지역별 차등요금제가 거론되는 것도 이 숨은 비용을 표면화하려는 시도다. 병목은 공짜가 아니라 이미 우리가 나눠 내고 있는 비용이다.

셋째, 병목 해소의 승패는 기술이 아니라 주민 수용성과 속도에 달렸다. HVDC와 ESS 기술은 이미 확보 국면에 들어섰다. 북당진~신탕정이 21년을 끈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입지 갈등과 인허가였다. 특별법의 보상·지원 특례가 실제 현장에서 주민 신뢰로 이어지는지가 향후 사업의 실질 공기를 좌우할 것이다.

정책적 함의는 자명하다.

송전망은 발전소보다 오래 걸리는 인프라인 만큼, 계획을 '수요를 확인한 뒤'가 아니라 '수요를 앞질러' 세워야 한다.

특별법이 도입한 국가 주도 계획과 인허가 의제는 방향이 옳지만, 관건은 집행 속도다.

재생에너지 100GW라는 목표도,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위에서만 현실이 된다.

병목을 방치한 대가가 이미 조 단위로 확인된 이상,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선언이 아니라 첫 삽의 속도다.

검증 노트

본 기사는 2026년 7월 22일 기준으로 작성됐다.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의 공포일(2025년 3월 25일)과 시행일(2025년 9월 26일), 99개 국가기간전력망시설 지정 및 제1차 확충위원회 개최는 기후에너지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 발표와 국가법령정보센터 원문을 대조해 확인했다.

북당진~신탕정 345㎸ 선로의 21년 공기와 1조1727억원 손실, 1.3GW 제약 해소 및 연 3500억원 절감 추산은 한국전력 자료와 복수 언론 보도를 교차 검증했다.

전남 출력제어 횟수(2023년 2회→2024년 27회→2025년 82회),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72조8000억원 송·변전 투자 추산, 한전 2026년 투자비 9조6000억원과 호남 수용용량 12→39GW, 서해안 HVDC 제원(12조2000억원·8GW·1070㎞)은 전력거래소·산업부·한전 발표를 근거로 했다.

독일 계통혼잡비용 등 국제 수치는 해외 기관·연구자료를 인용한 추정치다.

Faxtr verdict: VERIFIED(1차 자료 교차 확인).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