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HBM4 공급 점유율을 둘러싼 승부의 윤곽이 2026년 상반기를 지나며 한층 또렷해졌다. 본지가 UBS·트렌드포스·카운터포인트리서치 등 주요 시장조사기관의 전망치와 엔비디아·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공식 발표, 증권가 컨퍼런스콜 자료를 교차 분석한 결과,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플랫폼 '베라 루빈(Vera Rubin)'에 실릴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물량에서 SK하이닉스가 약 70%를 가져갈 것이라는 전망이 현재로선 가장 유력하다. 다만 이 숫자는 '고정된 결승선'이 아니라 삼성전자의 추격 속도에 따라 흔들릴 수 있는 유동적 지표라는 점이 이번 분석의 핵심이다. 불과 두 세대 전만 해도 HBM은 그래픽카드와 일부 슈퍼컴퓨터에 쓰이는 틈새 제품으로 취급됐다. 그러던 것이 생성형 인공지능의 폭발적 확산과 함께 데이터센터의 심장부로 올라섰고, 이제는 한 나라의 반도체 주도권을 가늠하는 잣대가 됐다는 점을 먼저 짚어둘 필요가 있다.

시장이 이 비율에 민감한 이유는 분명하다.

HBM은 AI 학습·추론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보다 먼저 병목이 걸리는 부품이고, 그 병목을 푸는 열쇠를 한국 두 회사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연산 능력이 뛰어난 GPU라도 데이터를 실어 나르는 메모리 대역폭이 받쳐주지 못하면 성능을 온전히 끌어낼 수 없다.

이 때문에 가속기 한 장에 실리는 HBM의 단수와 용량이 곧 제품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구조가 굳어졌다. 2026년 HBM 시장 규모는 54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되며, 최종 수요는 비트 기준으로 전년 대비 88% 늘어난 329억 기가비트로 전망된다.

이 거대한 파이에서 누가 몇 조각을 가져가느냐가 곧 한국 메모리 주도권의 지속 가능성을 가르는 문제다.

범용 D램이 공급 과잉과 가격 급락을 반복하며 '치킨게임'의 상처를 남겼던 과거와 달리, HBM은 소수의 공급자가 고객 맞춤형으로 설계·인증을 거쳐 납품하는 고부가 구조라는 점에서 산업의 무게중심 자체가 이동하고 있다.

HBM4 공급 점유율 순위, 지금 어떻게 되나

먼저 현재 좌표를 확인해야 한다.

HBM4 이전 세대인 HBM3E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지배력은 압도적이었다.

본지가 취합한 카운터포인트·트렌드포스 자료를 종합하면 2025년 2분기 HBM 출하량 기준 점유율은 SK하이닉스 약 62%, 마이크론 약 21%, 삼성전자 약 17% 순이었다.

주목할 대목은 순위 변동이다.

오랫동안 2위였던 삼성전자가 이 시점에 마이크론에 밀려 3위로 내려앉았다.

HBM3E 인증에서 삼성이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미국 마이크론이 AMD의 인스팅트 계열 등을 발판으로 치고 올라온 결과다.

메모리 종주국을 자부하던 삼성이 후발주자로 여겼던 마이크론에 자리를 내준 것은 상징적 장면이었다.

발열과 소비전력을 잡는 열관리 설계, 그리고 엔비디아의 까다로운 품질 관문을 제때 통과하지 못한 대가가 순위표에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세대가 HBM4로 넘어가면서 판이 다시 짜인다.

카운터포인트 등은 2026년 HBM4 시장 점유율을 SK하이닉스 54~55%, 삼성전자 28~29%, 마이크론 17~18% 수준으로 본다.

여기서 삼성의 반등이 눈에 띈다.

HBM3E에서 17%까지 밀렸던 삼성이 HBM4에서는 다시 28%대로 올라서며 마이크론을 제치고 2위 자리를 되찾는 그림이다.

한 세대 만에 두 자릿수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흐름은, 삼성이 앞선 세대의 부진을 딛고 설계와 공정을 대대적으로 손봤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엔비디아 루빈이라는 '특정 고객, 특정 물량'만 떼어놓고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UBS는 루빈용 HBM4에서 SK하이닉스가 약 70%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체 HBM4 시장 점유율(약 55%)보다 루빈 한정 점유율(약 70%)이 더 높다는 것은, 엔비디아라는 최대 고객 안에서 SK하이닉스의 손을 그만큼 더 굳게 잡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삼성이 전체 시장에서 존재감을 회복하더라도, 가장 값비싸고 물량이 큰 엔비디아 주력 라인에서는 여전히 SK하이닉스가 우위를 지키고 있다는 이중 구조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2026년 HBM4 승부, 월별 타임라인으로 읽으면

이 국면은 몇 개의 전환점을 지나며 만들어졌다.

시간축을 따라가 보자.

출발점은 올해 초였다.

SK하이닉스는 CES 2026 무대에서 16단 48GB HBM4를 세계 최초로 공개하며 '다음 세대에도 우리가 선두'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리더십을 세대 교체와 함께 이어가겠다는 선언이었다. 12단을 넘어 16단으로 쌓는 적층 기술은 수율과 열 관리 난도가 급격히 올라가는 영역이어서, 이 무대는 단순한 신제품 발표를 넘어 기술 격차를 과시하는 자리로 읽혔다.

반격의 신호탄은 삼성이 먼저 쏘아 올렸다. 2026년 2월, 삼성전자는 업계 최초로 HBM4 양산 출하를 공식 선언했다.

'세계 최초 양산'이라는 타이틀을 SK하이닉스가 아닌 삼성이 가져간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었다.

'최초 출하'와 '최대 고객 인증'은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먼저 라인을 돌려도 엔비디아 같은 핵심 고객의 승인을 받아 대량 납품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실적으로 잡히지 않는다.

같은 시기 SK하이닉스는 최종 샘플을 재수정하며 수율 안정화에 무게를 실었다.

업계에서는 삼성은 속도, SK는 안정이라는 상반된 전략으로 요약했다.

앞선 세대에서 '빨리 갔지만 인증에서 막힌' 경험을 한 삼성으로서는 이번에도 속도전의 결실을 실제 매출로 연결하는 것이 과제로 남았다.

변곡점은 초여름에 찾아왔다. 2026년 6월 5일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3사 모두가 베라 루빈용 HBM4 공급 인증을 통과했다고 확인했다.

이 발표의 의미는 이중적이다.

삼성 입장에서는 HBM3E 세대에서 그토록 애를 먹던 엔비디아 관문을 HBM4에서 마침내 넘었다는 점에서 명백한 청신호다.

실제로 삼성 HBM4 수율은 2025년 4분기 50% 안팎에서 2026년 5월 6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개선된 것으로 파악된다.

수율이 오른다는 것은 같은 웨이퍼에서 쓸 수 있는 양품이 늘어난다는 뜻이고, 이는 곧 원가 경쟁력과 공급 안정성으로 직결된다.

반대로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독점 공급'이 아니라 '복수 공급' 체제가 공식화됐다는 점에서 균열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동안 사실상 단독 공급자에 가까웠던 위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AMD 변수가 겹쳤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와 AMD를 동시에 겨냥하며 수주 기반을 넓히자, 시장에서는 'SK 독주에 실금이 갔다'는 평가가 나왔다.

엔비디아 한 곳에 집중하기보다 여러 고객으로 판로를 넓히는 전략은, 특정 고객의 발주 조정에 흔들리지 않는 안전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2026년 6월 말에는 삼성 HBM4가 이르면 2027년 안방(엔비디아 주력 공급망) 탈��의 발판을 놓았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UBS는 한 발 더 나아가 삼성전자가 2027년까지 HBM 시장 점유율에서 SK하이닉스와 사실상 동등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까지 내놨다. 2027년 기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각각 HBM 비트 점유율의 약 40%씩을, 마이크론이 나머지 20%를 차지한다는 구도다.

다만 이는 삼성의 수율 개선과 대형 계약 집행이 계획대로 맞아떨어졌을 때의 가정이라는 전제를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 메모리 주도권, 지속 가능한가

이제 본지의 명제를 정리한다. 첫째, 루빈용 HBM4의 SK하이닉스 70% 전망은 '현재형'이지 '미래형'이 아니다. 본지 분석에 따르면 이 70%라는 숫자는 초기 램프업 물량과 선행 인증 우위를 반영한 값에 가깝다. 신제품 초기에는 먼저 인증을 통과하고 라인을 안정시킨 공급자가 물량을 몰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삼성의 수율이 60%대를 넘어 안정 궤도에 오르고 2026년 하반기부터 엔비디아 공급 계약 물량이 실제 집행되면, 루빈 안에서의 점유율 격차는 좁혀질 여지가 크다. 70%를 '고정 점유율'로 읽는 것은 오독이다.

둘째, 세대 교체는 후발주자에게 늘 재진입의 창을 연다. HBM3E에서 3위까지 밀렸던 삼성이 HBM4에서 2위로 복귀하는 흐름 자체가 그 증거다. 메모리 산업은 특정 세대에서 벌어진 격차가 다음 세대 초기 공정·설계 변화 국면에서 부분적으로 리셋되는 경향이 있다. HBM4는 로직 다이(베이스 다이)에 파운드리 선단공정이 결합되는 첫 세대여서, 순수 D램 미세공정 경쟁과는 변수의 성격이 다르다. 메모리 셀을 잘 만드는 역량만으로는 부족하고, 로직 설계와 첨단 패키징을 얼마나 매끄럽게 통합하느냐가 승패를 가르는 새로운 관문이 된 것이다. 이 지점이 삼성에는 기회이자 동시에 위험이다. 파운드리 사업을 함께 보유한 삼성으로서는 내부 통합의 이점을 살릴 수도, 반대로 두 부문의 손발이 맞지 않으면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

셋째, 진짜 승부처는 가격과 캐파(생산능력)로 이동한다. UBS는 2027년 HBM4·HBM3E의 평균판매가격(ASP)이 전년 대비 30% 오를 것으로 봤다. 공급이 빠듯한 국면에서는 '누가 더 좋은 물건을 만드느냐'만큼 '누가 더 많이, 더 안정적으로 대느냐'가 중요해진다. 고객 입장에서는 성능이 조금 앞서더라도 물량을 제때 받지 못하면 완제품 출시 일정 전체가 어그러지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향후 3년 수요가 캐파를 웃돌 것이라고 밝힌 대목, 삼성전자가 설비투자 집행을 가속하며 평택 2단지 5라인을 HBM 핵심 거점으로 준비하는 대목이 그래서 중요하다. 점유율 전쟁의 다음 라운드는 팹에서 결판난다. 결국 누가 먼저 대규모 생산 능력을 확보해 두느냐가 다음 세대 물량 배분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넷째, 3사 체제의 고착은 한국에 양날의 검이다. SK·삼성 두 회사가 합쳐 HBM 시장의 80% 안팎을 유지하는 한 한국의 주도권은 견고해 보인다. 그러나 마이크론이 20%대의 '제3의 공급원'으로 자리 잡으면서 엔비디아의 협상력은 커졌다. 고객이 복수 공급을 원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특정 벤더 의존도를 낮추고 단가를 압박하기 위해서다. 마이크론은 미국 내 생산 기반과 자국 정책의 지원을 등에 업고 존재감을 키우고 있어, 지정학적 변수까지 공급망 판도에 얽혀 든 상황이다. 한국 두 회사의 경쟁이 치열할수록 최대 고객이 웃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안방 싸움에 몰두하는 사이 정작 협상 테이블의 주도권은 고객 쪽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함의는 이렇게 요약된다.

HBM4 국면에서 한국의 메모리 주도권은 '적어도 2027년까지는' 데이터로 뒷받침된다.

두 회사가 시장의 8할을 쥐고, 세대 선행 인증과 수율에서 앞서 있으며, 캐파 투자 여력도 확보돼 있다.

다만 주도권의 '내부 구성'은 재편 중이다.

SK하이닉스 단독 독주에서 SK·삼성 양강 구도로 옮겨가는 과정이며, 그 사이 마이크론이 미국 정책의 뒷받침을 받아 존재감을 키운다.

정책 당국과 기업에 주는 시사점도 여기서 나온다.

개별 기업의 점유율 방어를 넘어, 후공정·소재·장비를 포함한 HBM 밸류체인 전반의 국내 기반을 두텁게 다지는 일이 주도권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한다.

아무리 완제품 경쟁력이 높아도 핵심 소재와 장비를 해외에 의존하면 공급망 어느 한 곳이 막혔을 때 전체가 멈출 수 있다.

로직 다이 파운드리 역량, 첨단 패키징, 그리고 인재가 그 축이다.

점유율 숫자 하나에 일희일비하기보다, 다음 세대(HBM4E·HBM5)로 이어지는 로드맵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것이 관건이다.

결국 한 세대의 우열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가는 지구력이 진짜 주도권을 결정할 것이다.

검증 노트

본 기사는 2026-07-13 기준으로 작성됐다.

핵심 수치는 UBS의 루빈용 HBM4 점유율 전망(약 70%)과 2027년 ASP 30% 상승 전망, 카운터포인트리서치·트렌드포스의 HBM 세대별 점유율 자료, 엔비디아의 2026년 6월 5일 루빈 HBM4 공급 인증 발표, 삼성전자의 2026년 2월 HBM4 양산 출하 공식 발표, SK하이닉스의 2026년 1분기 컨퍼런스콜(향후 3년 수요가 캐파 상회) 등 1차·2차 자료를 교차 확인했다.

점유율 전망치는 기관별로 편차가 있어(전체 HBM4 SK 54~55% vs 루빈 한정 약 70%) 본문에 그 차이를 구분해 표기했으며, 수율·계약 물량 등 진행 중인 수치는 '추정'·'파악' 등으로 명시했다.

기관 전망은 가정 변화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

기사 verdict: VERIFIED.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