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데이터센터 전력수요 급증을 한 장의 지도로 겹쳐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수요의 크기가 아니라 같은 수요를 재는 자[尺]가 출처마다 다르다는 사실이다. 본지가 산업통상자원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한국전력의 전력사용 신청 집계,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전력 전망을 교차 분석한 결과, '데이터센터가 얼마나 전기를 먹는가'라는 단일 질문에 대해 최소 세 가지 서로 다른 숫자가 병존했다. 신청은 폭증하고, 계획은 신중하며, 실측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이 격차를 걷어내지 않으면 송전망 병목의 실체도, 투자 우선순위도 흐려진다.
출발점은 이렇다.
한전에 접수된 데이터센터 전기사용 신청 용량은 2023년 약 906㎿에서 2027년 7343㎿ 수준으로 8배가량 불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같은 기간 실제 공급 가능한 전력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4700㎿ 안팎에 그친다.
신청과 공급 사이에 3분의 1이 넘는 간극이 벌어져 있는 셈이다.
그런데 정부가 2025년 2월 확정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데이터센터 수요를 2038년 기준 6.2GW로 반영했다. 6200㎿다.
즉 2027년 신청치(7343㎿)가 2038년 계획치(6200㎿)보다 오히려 크다.
여기서 첫 번째 함정이 생긴다.
데이터센터 전력수요, 왜 출처마다 숫자가 다를까
결론부터 말하면 세 숫자는 서로 다른 것을 세고 있다.
한전의 7343㎿는 사업자가 접수한 '신청 용량'이다.
여기에는 실제 착공되지 않을 계획, 같은 부지를 놓고 여러 사업자가 중복 신청한 물량, 입지를 확보하려 일단 접수부터 하고 보는 '알박기'성 신청이 뒤섞여 있다.
업계에서는 신청 물량의 상당 부분이 실제 가동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반대로 계획의 6.2GW는 정부가 실현 가능성을 걸러 확률적으로 추린 '반영 수요'다.
이 6.2GW조차 모형이 자연히 뽑아낸 추세 수요 1.8GW에 데이터센터·첨단산업 증분 4.4GW를 얹은 합성치다.
하나는 욕망의 총합이고, 하나는 계획의 산물이다.
둘을 나란히 놓고 '급증했다'거나 '과장됐다'고 단정하는 순간 오독이 시작된다.
세 번째 자는 IEA가 쓰는 TWh, 곧 실제로 소비한 전력량이다.
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25년 485TWh에서 2030년 약 950TWh로 두 배 가까이 늘어, 2030년 전 세계 전력 수요의 3%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추계했다.
특히 2025년 한 해 AI 특화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50% 급증했고, 데이터센터 전체 전력 소비도 17% 늘었다.
용량(㎿·GW)이 '언제든 끌어 쓸 수 있는 최대치'라면, 전력량(TWh)은 '실제로 흘려보낸 양'이다.
가동률이 낮으면 큰 용량도 적은 전력량으로 나타난다.
신청 용량으로 병목을 보고, 소비 전력량으로 요금과 온실가스를 보는 이유가 여기 있다.

같은 데이터센터, 한국은 3.4% 세계는 1.5%…비중 격차의 정체
비중 지표에서도 격차는 반복된다.
국내 통계로 2024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는 약 4461㎿로 추산되며, 이는 한국 전체 전력의 3.4% 안팎에 해당한다.
그런데 IEA 기준 2024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 비중은 평균 1.5% 수준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한국의 데이터센터 전력 집중도가 세계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
다만 이 비교에는 함정이 있다.
분모가 다르다.
세계 평균은 전력 소비가 방대한 산업국·개도국을 모두 합산한 값이고, 한국은 수도권 반경 40㎞ 안에 데이터센터가 촘촘히 몰린 고밀도 국가다.
국내 데이터센터의 상당수가 서울·경기 남부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국 평균 3.4%라는 숫자는 특정 계통에 국지적으로 훨씬 높은 부하가 걸린다는 사실을 오히려 가린다.
평균의 착시다.
본지 분석의 첫 번째 명제는 이것이다. 데이터센터 전력수요를 둘러싼 논쟁의 절반은 수요의 실체가 아니라 '단위와 분모의 불일치'에서 비롯된다. ㎿(용량)와 TWh(전력량)와 GW(계획 반영)를 한 표에 섞어 놓고 증감을 논하면, 8배가 폭증으로도, 절반이 과잉으로도 읽힌다. 정책 토론이 공회전하는 이유의 상당 부분이 여기에 있다.
두 번째 명제는 병목의 위치에 관한 것이다. 본지가 국내외 계통 접속 지표를 겹쳐본 결과, 진짜 제약은 발전 설비의 총량이 아니라 송전망 접속과 지역 편중이었다. 산업부·한전의 전력계통영향평가에 따르면 2024년 8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약 11개월간 전국에서 290건의 데이터센터용 전력사용 신청이 접수됐다. 문제는 이 신청이 특정 권역에 쏠렸다는 점이다. 발전소를 더 짓는다고 곧바로 해결되지 않는다. 전기를 소비지까지 실어 나를 송전선로가 제때 깔리지 않으면, 발전 용량은 지도 위에서만 존재한다.
송전망 병목은 세계 공통…연결 대기 7~10년의 벽
이 병목은 한국만의 사정이 아니다.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 밀집지인 미국 버지니아주 북부는 전력망 신규 연결에 평균 7년가량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네덜란드는 지역에 따라 10년까지 대기가 밀려 있다.
아일랜드 더블린은 계통 포화로 신규 데이터센터의 접속 신청 자체를 일정 기간 제한하는 조치까지 취했다.
IEA는 2026년 가동을 목표로 발표된 데이터센터 용량 가운데 상당 부분이 착공에 들어가지 못한 채 '발표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전 세계 프로젝트의 절반가량이 전력 확보와 계통 기자재 부족으로 지연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섯 개 대형 기술기업의 2025년 설비투자가 4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2026년 다시 75%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국면에서, 돈이 아니라 전선과 변압기가 속도를 결정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명제. 수요 곡선과 공급 곡선의 시차가 이번 국면의 본질이다. 데이터센터는 부지만 확보되면 1~2년 안에 짓지만, 초고압 송전선로 한 구간을 새로 놓는 데는 입지 선정과 주민 수용성 확보까지 통상 그 몇 배의 시간이 든다. 수요는 소프트웨어의 속도로, 공급은 토목의 속도로 움직인다. 이 시차가 접속 대기 행렬과 '온사이트(On-Site) 발전' 수요를 동시에 키운다. 최근 데이터센터 인근에서 가스터빈·연료전지 등으로 직접 전력을 조달하려는 움직임이 빠르게 늘어난 배경이 여기에 있다. 계통을 기다리느니 자가발전으로 입지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다.
정책 대응은 이미 방향을 틀었다.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2025년 3월 공포돼 같은 해 9월 시행에 들어갔다.
종전에는 송전선로 입지 선정과 보상이 개별 절차에 묶여 지연이 상시화됐다면, 이 법은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기본계획과 실시계획을 ��립하고 입지 선정·보상에 특례를 부여해 확충 속도를 끌어올리는 것을 골자로 한다.
'변경 전'이 사업자 개별 협상에 의존한 산발적 확충이었다면, '변경 후'는 국가가 계획적으로 통로를 여는 방식이다.
다만 특례가 실제 공기 단축으로 이어지는지는 시행 첫해인 만큼 아직 검증 단계에 있다.
수요는 수도권, 계통 여유는 지방…불일치를 어떻게 풀 것인가
네 번째 명제는 지역 문제다. 본지가 수요 집중도와 계통 여유를 겹쳐본 결과, 전력이 남는 곳과 데이터센터가 몰리는 곳이 정반대였다. 발전과 계통 여유는 상대적으로 지방에 있고, 수요는 수도권에 쏠린다. 이 불일치를 그대로 두면 수도권 계통 증설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지방의 유휴 전력은 놀게 된다. 데이터센터 지방 분산 유인, 계통 접속 우선순위 재설계, 지역별 요금 신호가 함께 가야 하는 이유다. 수요를 억누르는 방식이 아니라 수요의 '위치'를 옮기는 설계가 필요하다.
함의는 분명하다.
첫째, 통계를 읽을 때 단위와 시점, 분모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신청 용량과 계획 반영, 실측 소비를 구분하지 않은 비교는 논쟁만 키운다.
둘째, 병목의 병목은 발전이 아니라 송전이라는 점을 정책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셋째, 온사이트 발전과 지방 분산은 대체재가 아니라 병행 카드다.
넷째, 특별법 시행 이후의 실측 데이터—실제 연결 대기 기간이 얼마나 줄었는지—를 분기 단위로 공개해 계획의 신뢰도를 시장에 되먹여야 한다.
수요 예측이 빗나가는 것보다 위험한 것은, 서로 다른 자로 잰 숫자를 같은 자로 잰 척하는 일이다.

검증 노트
본 기사는 2026년 7월 9일 기준으로 작성됐다. 산업통상자원부·전력거래소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5년 2월 21일 확정, 데이터센터 수요 2038년 6.2GW 반영), 한국전력의 데이터센터 전기사용 신청 집계(2023년 906㎿→2027년 7343㎿), 산업부·한전 전력계통영향평가(2024년 8월~2025년 6월 290건 접수),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데이터센터 전력 전망(2025년 485TWh→2030년 약 950TWh, 2030년 세계 전력의 약 3%),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2025년 3월 공포·9월 시행) 및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 비중(2024년 약 3.4%) 통계를 교차 확인했다. 각 수치는 신청 용량(㎿)·계획 반영(GW)·실측 소비(TWh)로 측정 기준이 상이하므로 단순 비교에 유의해야 하며, 신청 용량은 중복·미착공 물량을 포함한 추정치다. 해외 계통 연결 대기 기간은 각국 규제기관·업계 발표를 종합한 추정 범위다. 1차 자료 교차 확인 결과 Faxtr verdict: VERIF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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