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AI 데이터센터 전력난은 더 이상 미래의 가정이 아니라 한국 전력 인프라의 현재 좌표를 흔드는 병목으로 굳어지고 있다. 본지가 산업통상자원부의 데이터센터 전력공급 현황과 한국전력의 송전망 건설 일정, 그리고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글로벌 추계를 같은 축에 겹쳐 분석한 결과, 문제의 본질은 '전기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전기를 옮길 길이 제때 깔리지 못해서'라는 쪽에 가깝다. 발전 설비를 더 짓는 일과 그 전기를 수요지까지 실어 나르는 일은 흔히 하나로 묶여 거론되지만, 현장에서 두 과정의 시계는 전혀 다른 속도로 돈다.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는 길어야 2~3년이면 부지를 확보해 가동에 들어가지만, 그 전기를 실어 나를 765kV·HVDC 송전망은 입지 선정과 주민 동의에만 5~7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걸린다. 한쪽은 분기 단위로 움직이고 다른 한쪽은 십년 단위로 움직이니, 둘이 같은 지도 위에서 만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예정된 어긋남이다. 이 시차가 곧 한국형 전력 병목 지도의 윤곽이다.

먼저 수요의 곡선을 보자.

IEA는 지난해 발표한 'Energy and AI' 보고서에서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24년 약 415TWh(테라와트시), 전체 전력의 1.5% 수준에서 2030년 945TWh 안팎으로 두 배 가까이 늘 것으로 추산했다.

불과 6년 만에 한 나라의 연간 전력 소비에 맞먹는 수요가 새로 얹히는 셈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의 단기 전망은 더 가파르다. 2025년 447TWh에서 2026년 565TWh로, 1년 새 26%가량 뛴다는 것이다.

증가분의 80% 가까이는 미국과 중국에 몰린다.

핵심은 '가속 서버', 즉 AI 연산용 설비의 전력 소비가 연 30% 안팎으로 불어난다는 데 있다.

같은 면적의 전산실에 들어가는 전력 밀도가 과거 검색·이메일 시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반 전산 수요와는 차원이 다른 기울기다.

다만 이 숫자들은 기관마다 가정이 달라 폭이 넓다는 점은 짚어둘 필요가 있다.

모델 학습 효율이 빠르게 개선되거나 추론 비용이 떨어지면 곡선이 완만해질 여지도 있어, 945TWh든 565TWh든 '확정된 미래'가 아니라 추세를 읽는 좌표로 다뤄야 한다.

AI 데이터센터 전력난, 한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어디인가

한국의 좌표는 수요 총량보다 '쏠림'에서 위태롭다.

산업부 집계를 보면 2022년 말 기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의 70.6%가 수도권(서울·인천·경기)에 집중돼 있었다.

데이터센터가 통신망 지연을 줄이려 인구·기업이 몰린 수도권을 선호해온 데다, 부지와 인력, 금융망까지 모두 서울 인근에 쏠려 있던 사정이 그대로 전력 지도에 새겨진 결과다.

문제는 앞으로다.

신규로 전력 공급을 신청한 데이터센터의 약 86%가 다시 수도권을 택했고, 산업부는 이 비율이 2029년이면 80%대로 굳어질 것으로 본다.

본지가 확인한 산업부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에 신청된 신규 데이터센터 601곳 가운데 한전이 변전소 용량과 송전 여유를 따져 '적기에' 전력을 댈 수 있다고 본 곳은 단 40곳, 6.7%에 그쳤다.

반면 비수도권은 131개소 중 64개소, 절반가량에 제때 공급이 가능하다.

같은 나라 안에서 한쪽은 줄을 서고도 차례가 오지 않는데 다른 쪽은 자리가 비어 있는 형국이다.

전기가 부족한 게 아니라, 전기가 필요한 곳과 줄 수 있는 곳이 어긋나 있다는 뜻이다.

그 어긋남을 메워야 할 송전망의 사정은 더 답답하다.

동해안의 원전·화력에서 만든 전기를 수도권으로 끌어올리는 동해안~수도권 HVDC(초고압직류송전) 사업은 경북 울진에서 경기 가평까지 약 230km 구간으로, 한전이 애초 2019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잡았던 노선이다.

그러나 입지 갈등과 주민 반발로 표류를 거듭해 빨라야 2029년에야 종합준공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당초 계획 대비 10년 가까이 밀린 셈이다.

송전탑이 지나는 마을마다 경관 훼손과 건강 우려, 땅값 하락을 둘러싼 다툼이 반복됐고, 한 구간의 합의가 늦어지면 그 뒤 공구 전체가 함께 멈춰 서는 구조적 약점이 그대로 드러났다. 1단계 11개 공구 가운데 상당수가 올해 들어서야 첫 삽을 떴고, 수도권 쪽 최종 관문인 동서울변환소는 하남시의 인허가 불허로 행정심판이 진행 중이다.

노선의 마지막 매듭이 풀리지 않으면 앞선 구간을 다 깔아도 전기는 수도권 문턱에서 멈춘다.

정부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8년 최대전력 수요를 129.3GW로 보고 원전 2기·소형모듈원자로(SMR) 1기 신설과 서해안 620km 해저 '에너지고속도로'(2036년 목표) 카드를 꺼냈지만, 발전소를 더 짓는 것과 그 전기를 옮길 길을 까는 것은 전혀 다른 속도의 문제다.

발전 계획은 표 위에서 숫자를 바꾸면 되지만, 송전 계획은 수백 개 마을의 동의를 한 줄씩 받아내야 비로소 한 칸 전진한다.

아일랜드·미국 버지니아와 비교한 한국의 위치

같은 병목을 먼저 만난 나라들은 어떻게 움직였나.

비교의 첫 사례는 아일랜드다.

더블린 일대에 데이터센터가 몰리면서 2024년 기준 전국 전력 소비의 21%를 데이터센터가 가져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나라 전기의 5분의 1을 일부 산업 설비가 쓰는 상황은, 가정·병원·학교가 쓸 몫을 잠식한다는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왔다.

가정·병원·학교의 전력을 지키기 위해 사실상 2021년부터 신규 계통 연결을 막는 모라토리엄이 운영됐고, 이 빗장은 2025년 12월에야 풀렸다.

다만 조건이 달라졌다. 10MVA 이상을 끌어 쓰려는 신규 데이터센터는 자체 발전·저장설비를 갖춰 스스로 수요를 감당해야 하고('자가전력' 원칙), 1MVA 이상이면 연간 전력 수요의 80%를 신규 재생에너지로 충당했음을 입증해야 한다.

망에 부담을 주는 만큼 비용과 책임을 사업자에게 되돌리는 방향이다.

빗장을 도로 잠그는 대신, 들어오려면 스스로 전기를 마련해 오라고 문턱의 성격을 바꾼 셈이다.

두 번째는 미국 버지니아다.

'데이터센터의 수도'로 불리는 이곳에서 사업자 도미니언에너지가 2023년 한 해에만 15개 캠퍼스, 933MW를 망에 붙였을 만큼 증설 속도가 가팔랐다. 1년 새 중형 발전소 한 기에 맞먹는 부하가 한 사업자의 망에 새로 걸린 셈이다.

그러자 주 규제당국(SCC)은 2025년 11월 대형 AI 데이터센터를 겨냥한 별도 요금제를 승인했다. 2027년 1월부터 해당 고객은 계약한 송·배전 수요의 최소 85%, 발전 수요의 60%를 실제 사용량과 무관하게 부담해야 한다.

짓다 만 프로젝트가 망 보강 비용만 남기고 빠져나가는 일을 막고, 인프라 투자 비용이 일반 가정 요금으로 전가되는 것을 막으려는 장치다.

세 번째 축인 미국·중국 전체로 보면, IEA는 2030년까지 두 나라가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증가분의 약 80%를 차지하되, 미국은 가스화력, 중국은 석탄·재생 혼합으로 공급원을 빠르게 늘리는 '발전 우선' 전략을 택했다고 본다.

다만 발전을 늘려도 송전이 따라가지 못하면 같은 병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이 마주한 과제와 본질이 다르지 않다.

본지 분석의 결론은 세 가지다.

첫째, 한국의 AI 데이터센터 전력난은 발전 용량의 문제라기보다 '계통 접근권'의 문제다.

수도권 신규 수요의 93%가 적기 공급 불가 판정을 받은 현실은, 송전망 시차가 곧 산업 입지의 병목이라는 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발전기를 몇 기 더 세우느냐보다, 이미 있는 전기에 누가 언제 접속하느냐가 승부를 가른다는 의미다.

둘째, 아일랜드와 버지니아가 공통적으로 택한 길은 '사업자에게 비용·책임을 되돌리는 가격 신호'였다.

두 사례 모두 진입을 틀어막는 대신, 망에 부담을 주는 만큼 값을 치르게 해 수요 자체의 위치와 시점을 움직이려 했다.

한국은 분산에너지법과 입지 가이드라인으로 수도권 집중 완화를 시도하고 있으나, 사업자가 비수도권을 택할 만한 요금·접속 인센티브 설계는 아직 성기다.

규제로 '하지 말라'고 말하기는 쉬워도, 가격으로 '저쪽이 이득'이라고 신호를 보내는 일은 아직 손에 잡히지 않는다.

셋째, 송전망 건설을 가로막는 진짜 병목은 기술이 아니라 동의 절차다.

동해안 노선이 79개 마을 합의에 수년을 쓴 사실은, 보상·소통 체계를 손보지 않는 한 어떤 발전 확충 계획도 종이 위 숫자로 남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함의는 분명하다.

송전망 인허가에 '한 번에 끝나는 통합 절차'와 충분한 지역 보상을 결합해 5~7년 시차 자체를 줄이는 것이 첫 단추다.

부처와 지자체로 흩어진 협의 창구를 하나로 모으고, 송전탑이 지나는 지역에 돌아갈 몫을 미리 명시하는 것만으로도 갈등의 길이를 줄일 수 있다.

동시에 비수도권·전력 여유지로 데이터센터를 유도하는 차등 접속요금, 자가전력 의무, 수요 시점 분산(전력피크 회피 운영) 같은 카드를 함께 써야 한다.

이 비용을 방치하면 부담은 가장 약한 고리부터 청구된다.

망 보강 비용이 요금에 얹히면 협상력 없는 일반 가정과 소규모 사업장이 먼저 체감하고, 송전탑이 지나는 농촌 지역은 경관과 땅값 손실을 떠안는다.

그렇지 않으면 발전소는 동해안에 서고 데이터센터는 수도권에 몰리는 어긋남이 반복되고, 그 비용은 결국 일반 소비자 요금과 지역 갈등으로 청구된다.

검증 노트

본 기사는 2026년 6월 27일 기준으로 작성됐다.

글로벌 수요 추계는 IEA 'Energy and AI'(2024년 데이터센터 약 415TWh→2030년 약 945TWh)와 가트너 단기 전망(2025년 447TWh→2026년 565TWh)을 교차 확인했다.

한국 현황은 산업통상자원부 데이터센터 전력공급 현황(수도권 신청 601곳 중 적기 공급 40곳, 비수도권 131곳 중 64곳),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38년 129.3GW), 한국전력 동해안~수도권 HVDC 건설 일정(당초 2019년→2029년 준공 전망)을 1차·보도 자료로 대조했다.

해외 비교는 아일랜드 규제당국(CRU) 신규 데이터센터 접속정책(2025년 12월 모라토리엄 종료, 자가전력·재생 80% 의무)과 미국 버지니아 SCC의 대형 데이터센터 요금제(2027년 1월 시행)를 근거로 했다.

일부 미래 수치는 기관별 시나리오 차이가 있어 '추정·전망' 범위로 표기했다.

Faxtr verdict: VERIFIED(1차 자료 교차 확인).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