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DIEN]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는 법보다 시장이 먼저 움직였다. 본지가 한국은행·금융위원회·여야 발의안과 미국 GENIUS법, EU의 MiCA, 일본 개정 자금결제법을 같은 축에서 교차 분석한 결과, 한국은 '발행 주체를 누구로 할 것인가'라는 단 한 줄의 쟁점에 발이 묶여 제도화의 출발선조차 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자산 기본법 1단계가 자리 잡은 뒤 곧바로 이어졌어야 할 2단계, 곧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자산 발행을 다루는 법안은 정부안의 국회 제출 시점을 2026년 초로 잡았다가 이미 그 시한을 넘겼다. 입법이 한 발씩 늦어지는 동안 시장의 시계는 거꾸로 빨라졌다. 그사이 국내 4대 거래소에서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거래 비중은 1년 만에 두 배로 뛰었다. 제도가 비워 둔 자리를 달러가 먼저 채우고 있다는 뜻이다. 규칙이 정해지기를 기다리는 쪽은 정부이고, 그 공백을 파고드는 쪽은 이미 글로벌 시장을 장악한 달러 코인이라는 비대칭이 점점 또렷해지고 있다.

숫자부터 보자.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2026년 4월 초 약 3,170억 달러로, 5년 전과 비교하면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만큼 불어났다. 2025년 한 해 온체인 결제 규모는 33조 달러를 넘어 글로벌 카드망의 연간 처리액을 앞질렀다는 추정까지 나온다.

스테이블코인이 더 이상 가상자산 거래소 안에서만 도는 정산 수단이 아니라, 실물 결제와 국경 간 송금의 한 축으로 옮겨 왔다는 신호다.

문제는 구성이다.

이 시장의 약 99%가 달러 연동이고, 테더(USDT)가 1,800억 달러 이상, 서클의 USDC가 750억 달러 이상으로 둘이 전체의 80%를 웃돈다.

아시아 자국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차지하는 몫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달러가 종이 지폐의 형태를 벗고 블록체인 위에서 더 빠르고 더 싸게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기축통화의 영향력은 디지털 공간에서 오히려 넓어지고 있다.

'디지털 달러'가 사실상 무관세로 통화 영토를 넓혀 가는 국면에서, 원화는 아직 출전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셈이다.

한은 '은행 51%' vs 여당,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구조 왜 멈췄나

교착의 핵심은 지분율이다.

한국은행과 여권 일부는 발행 법인의 지분을 은행이 50%+1주, 즉 51% 이상 쥐어야 한다는 '은행 중심' 구조를 고수한다.

논리는 세 갈래다.

첫째,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 예금과 결제의 경계를 허물기 때문에 통화정책 파급력을 관리하려면 한은의 감독망 안에 있는 은행이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

예금이 코인으로 빠져나가면 은행의 신용창출 기능이 흔들리고, 통화량 조절이라는 중앙은행의 본업이 헐거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그 밑에 깔려 있다.

둘째, 자금세탁방지(AML)와 고객확인(KYC) 체계가 이미 검증된 곳이 은행이라는 것.

셋째, 이창용 한은 총재가 거듭 지적해 온 우려, 곧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달러 스테이블코인과 손쉽게 교환되면 자본 유출과 환율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흥국이 한 번 겪은 외환위기의 기억이 이런 신중론의 바닥에 자리한다.

반대 진영의 시각은 다르다.

금융위원회와 일부 여당 의원들은 은행에 발행권을 몰아주면 핀테크·비은행 금융사의 진입이 사실상 봉쇄되고, 결국 혁신과 경쟁이 위축된다고 본다.

스테이블코인의 본질이 '결제 인프라'라면, 그 인프라를 가장 잘 만드는 기술 기업을 처음부터 배제하는 설계가 과연 산업 경쟁력에 맞느냐는 반문이다.

결제망의 사용자 경험과 개발 속도에서 앞선 쪽은 전통 은행이 아니라 핀테크였다는 최근 십수 년의 경험이 이런 주장에 힘을 싣는다.

양측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고, 그 결과가 지금의 입법 공백이다.

본지 분석에 따르면 이 대치는 단순한 부처 간 영역 다툼이 아니라, 화폐 발행이라는 국가 기능을 어느 선까지 민간에 개방할 것인가를 둘러싼 근본 질문이다.

그 질문에 어느 나라도 완성된 정답을 내놓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국만의 늑장이라 단정하기도 어렵다.

지분율 외에 걸려 있는 쟁점도 만만치 않다.

정부안은 발행액의 100% 이상을 은행 예금이나 국채 같은 고유동성 자산으로 따로 쌓도록 했고, 이용자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행위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금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자를 허용하면 코인이 사실상 예금 상품처럼 작동해 은행 예금이 대규모로 이탈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발행사의 최소 자본금을 5억 원으로 둘지, 250억 원까지 끌어올릴지를 두고도 시각차가 크다.

자본금을 낮추면 스타트업의 참여가 쉬워지지만 부실 발행사의 난립 위험이 커지고, 높이면 안정성은 올라가되 사실상 대형 금융사만 남는다.

두 숫자 사이의 간극이 곧 산업의 문턱 높이를 결정하는 셈이다.

거래소가 발행사 지분을 어디까지 가질 수 있는지, 발행과 유통 기능을 분리할지도 함께 묶여 있다.

발행과 유통을 한 회사가 겸하면 이해상충이 생긴다는 우려와, 분리하면 비용만 키운다는 반론이 팽팽하다.

어느 것 하나 가볍게 정할 수 없는 변수들이 한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는 형국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미국·EU·일본과 비교하면 어디쯤인가

같은 축으로 세 나라를 세워 보면 한국의 위치가 또렷해진다.

미국은 2025년 7월 18일 GENIUS법(공법 119-27)을 발효시키며 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을 '디지털 화폐'로 규정하고, 인가받은 발행자만 찍을 수 있게 했다.

준비자산은 단기 국채와 환매조건부채권, 은행 예금으로 1대 1 완전 적립을 요구하되, 발행 주체를 은행으로만 못 박지는 않았다.

세부 시행규칙은 2026년 7월 18일까지 마련하도록 했다.

핵심은 '누가'가 아니라 '어떻게 적립하고 상환하느냐'에 규율을 집중했다는 점이다.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디지털로 한 번 더 못 박아 두려는 전략적 계산이 이 법의 행간에 깔려 있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유럽연합은 한발 앞서 움직였다. 2023년 제정된 MiCA(규정 2023/1114)가 2024년부터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효력을 넓혀 왔고,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발행자에게는 준비자산의 약 60%를 역내 신용기관 예금으로 보유하도록 했다.

다만 유로 연동 코인은 여전히 수억 유로 규모에 그쳐, 규제는 정교하되 시장은 작은 '제도 우위·물량 열위' 상태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포괄적 규율 틀을 깔고도 자국통화 코인의 몸집은 좀처럼 불지 않은 것이다.

한국이 참고할 대목은 명확하다.

규율을 먼저 깔아도 달러의 흡인력 앞에서 자국통화 코인이 저절로 크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제도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교훈이 유로존의 경험에 담겨 있다.

가장 시사적인 건 일본이다.

일본은 2023년 개정 자금결제법에서 스��이블코인을 '통화 표시 자산'으로 정의하고 은행·자금이동업자·신탁회사에 한해 발행을 허용했다.

한국의 '은행 51%'보다 발행 주체의 문을 넓게 연 셈이다.

그 결과 한 스타트업이 자금이동업자 등록을 거쳐 2025년 10월 27일 엔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을 정식 발행했고, 향후 3년간 1조 엔(약 9조 원) 규모 발행을 목표로 내걸었다.

담보는 엔화 예금과 국채로 채운다.

은행이 아닌 신생 기업이 자국통화 코인의 첫 깃발을 꽂았다는 사실 자체가, 발행 주체를 넓힌 설계가 시장을 실제로 움직였음을 보여 준다.

'현금 왕국'으로 불리던 일본이 자국통화 디지털화에서 한국을 앞질렀다는 평가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본지가 세 사례를 나란히 놓고 내린 결론은 이렇다.

첫째, 제도화의 승패는 '발행 주체를 얼마나 좁히느냐'가 아니라 '준비자산과 상환을 얼마나 단단히 묶느냐'에서 갈린다.

미국과 일본 모두 적립·상환 규율을 핵심에 두되 진입 자체는 비교적 열어 뒀다.

둘째, 은행 51% 구조는 안정성 면에서 분명한 장점이 있으나, 같은 안정성을 '100% 적립·인가·감독'이라는 다른 장치로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일본이 실증했다.

안정성을 지키는 길이 은행 지분 하나로만 통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셋째, 입법 지체의 비용은 추상적이지 않다.

국내 4대 거래소의 달러 스테이블코인 거래 비중은 2025년 1~5월 평균 7.7%에서 2026년 같은 기간 약 15%로 뛰었고, 누적 거래대금은 538억 달러에 이르렀다.

빈자리를 달러가 메우는 속도가 곧 비용이다.

망설인 1년의 대가가 이 숫자에 고스란히 찍혀 있다.

그렇다면 누가 승자인가.

본지의 결론은 '아직 승자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패자는 보인다.

지분 다툼이 길어질수록 손해를 보는 쪽은 결제 수수료를 아끼려 달러 코인으로 갈아타는 소상공인과 해외 송금 이용자, 그리고 자국통화 결제망을 깔 기회를 놓치는 한국 금융산업 전체다.

환전 수수료와 송금 시간을 줄이려는 작은 가게와 외국인 노동자일수록 달러 코인의 편익에 먼저 끌리는데, 이들이야말로 환율이 출렁일 때 가장 약한 고리이기도 하다.

통화주권을 지키자는 명분으로 시작한 신중론이, 역설적으로 달러 의존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곱씹을 대목이다.

안정성과 속도는 양자택일이 아니다.

일본은 그 둘을 동시에 쥐려 했고, 한국은 둘 다 늦추는 길로 가고 있다.

정책 함의는 세 가지로 모인다.

우선 발행 주체 논쟁을 '은행이냐 핀테크냐'의 이분법에서 끌어내려, 자본금·준비자산·상환의무·감독권한을 묶은 패키지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은행이 중심이되 비은행이 컨소시엄으로 참여하는 절충 구조, 단계적 개방의 로드맵이 현실적 대안이다.

처음에는 문턱을 높게 두고 시장이 검증되는 만큼 차차 낮추는 방식이라면 안정성과 경쟁을 함께 살릴 여지가 있다.

다음으로 달러 코인의 국내 유통에 대한 과세·신고 체계를 원화 코인 제도화와 같은 속도로 정비해야 한다.

한쪽만 규율하면 규제 차익이 곧장 달러로 흐른다.

마지막으로 자본 유출·환율 변동 우려는 막연한 금지가 아니라, 달러 코인과의 교환 한도·실시간 모니터링 같은 구체적 안전장치로 다스리는 편이 합리적이다.

우려가 크다면 차단이 아니라 계측이 먼저다.

검증 노트

본 기사는 2026년 6월 26일 기준으로 작성됐다. 디지털자산 기본법 2단계의 교착 경위와 '은행 51%' 발행 구조 쟁점, 100% 준비자산·이자 금지·자본금 논쟁은 한국은행·금융위원회 입장 보도와 입법 동향 기사를 교차 확인했다. 글로벌 시가총액(약 3,170억 달러, 2026년 4월 초)과 달러 연동 비중 약 99%, USDT·USDC 점유율은 시장 데이터 집계와 국제기구 자료로 대조했다. 미국 GENIUS법(2025년 7월 18일 발효, 공법 119-27)과 시행규칙 시한(2026년 7월 18일), EU MiCA의 준비자산 약 60% 예금 요건, 일본 개정 자금결제법(2023년)과 엔화 코인 발행(2025년 10월 27일)·1조 엔 목표는 각국 발표 및 보도로 확인했다. 국내 4대 거래소 달러 스테이블코인 비중(2025년 1~5월 평균 7.7%→2026년 동기 약 15%)과 누적 거래대금 538억 달러는 2026년 6월 보도치를 인용했으며, 일부 수치는 발표 시점 기준 추정·잠정치다. 자체 진단은 본지 교차 분석에 따른 것이다. Faxtr verdict: VERIFIED(1차 자료 및 공개 통계 교차 확인).

편집국